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 - 고고학으로 파헤친 성서의 역사
아네테 그로스본가르트.요하네스 잘츠베델 엮음, 이승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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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다. 눈은 며칠 전에 왔고, 캐럴송에 나오는 것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눈 오면 귀찮고 그렇지 뭘. 이런 걸 보면 어릴 적 낭만 따위는 이제 모두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 현실적이다.

 

몇 년 전에 읽은 슈피겔 시리즈 가운데 루터의 종교개혁에 이은 <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을 읽었다. 엉뚱하게도 기독교를 믿지도 않는 나라인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가 광화문에 등장해서 그것 참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다. 이스라엘은 엘(아마 엘로힘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의 전사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을 엮은 독일의 학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은 신앙적인 측면보다 학술적 차원에서 성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요약하자면 기존의 신화와 전승 그리고 상징으로 가득한 것이 바로 오늘날에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라는 주장이다.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서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점유를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 나는 눈에 거슬렸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슈퍼스타 아브라함 역시 메소포타미아 출신이라는 점을 모르고 그러는 건지 그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2천년 동안이나 유랑하던 민족이 열강의 국경선 긋기로 신생국을 만들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이야말로 고래로 팔레스타인의 주인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전개하는 성서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특히 다윗 왕조의 두 왕들인 다윗과 솔로몬의 경우에는 야훼/여호와에 대한 충성만 맹세한다면 이민족에 대한 학살이나 바람둥이 같이 군주로 적절하지 못한 행실도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목동에서 출발한 다윗은 연주자, 장군, 고위 관료 그리고 기존의 왕이었던 사울의 박해를 받아 광야에서 게릴라 부대 지휘관으로 떠돌다 결국 왕위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의 전형이 아니던가.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성전을 세운 왕 중의 왕으로 성서에서는 묘사되지만, 실제로 당대 유대 왕국은 초라했을 거라는 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한다. 실제 유대 왕국의 전성기는 1~2세기 뒤에 찾아 왔다고 한다.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 번역인 70인역으로 알려진 셉투아진타를 비롯해서 불가타 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언어에서 언어로 번역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오역은 또 어떤가. 그래서 위대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 상은 빛나는 빛이 아니라 뿔을 대신 달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되지 않았던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담은 공관복음서와 신비로운 성격의 요한복음에 대해서 <성서>는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지금은 유실된 Q복음과 마가복음을 전범으로 삼아 다른 복음서들이 쓰인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등장하는 않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그리고 서로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건 복음서에 담긴 여호와의 역사하심으로 봐야 하는 걸까. 신앙인들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아무래도 버겁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중세 사제들은 성서에 대한 해석을 독점했다. 아니 심지어 보통 사람들이 성서를 읽고 토론하고 것도 일체 금지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은 성서에 대한 해석이 권력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그리스도교의 기본 정신인 사랑과 평등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데올로기가 아닐 수 없다. 신의 뜻을 수행하는 사제들이 앞장서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더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정통 해석에 어긋나는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박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가.

 

그런 중세의 어둠을 끝장낸 게 바로 마르틴 루터였다. 그는 믿음보다 선한 행위를 방점을 찍고 천국에 가는 티켓(면죄부)을 양심에 거리낌 없이 팔던 중세 교회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성서의 독일어 번역이었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로 비로소 독일 민족은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당시 번창하던 인쇄술은 대중들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컨텐츠인 성서를 대량으로 인쇄해서 전파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루터는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을까.

 

20세기 들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히브리어로 된 성서의 발견과 더불어 이루어진 고고학적 성과에 대해서도 <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은 빼놓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원천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고고학적 성과는 가장 오래된 성서 필사본에 대한 갈급함을 달래기 위해 탐험에 나선 선구자들을 무대에 올린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에서 정경으로 인정받는 정전 외에도 수많은 외경과 다양한 종류의 문서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로마 시대 세계 종교가 된 기독교의 정전 채택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다루지 않아 좀 아쉬웠다.

 

마지막에 다시 성서의 슈퍼맨이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의 시조격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종교 간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질시 대신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것이 과연 종교적 관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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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4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레삭매냐 2019-12-25 14:32   좋아요 1 | URL
방문해 주셔서 축하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