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1 - 부흐하임
발터 뫼어스 지음, 플로리안 비게 그림,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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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공룡,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래픽 노블로.

 

수년전 발터 뫼어스 작가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만났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다른 소재도 아니고, 책을 가지고 이렇게 멋진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누군가 이 판타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아마 그 전 단계인 그래픽 노블 작업으로 차모니아의 린트부름 요새 출신 미텐메츠를 재소환해냈다. 다음 단계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미텐메츠의 대부 단첼로트가 죽으면서 남긴 미스터리한 원고가 미텐메츠가 겪게 되는 모든 모험의 시원이다. 미발표 원고는 오름(신비한 창의력)으로 가득한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었다. 발터 뫼어스 저자는 모든 것의 시발점을 호기심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으로 향한 것도, 저 바다 너머 무언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전한 것도 그리고 우주로 나간 것도 모두 호기심이라는 강력한 원동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우리의 주인공 미텐메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 시 한 수조차 발표하지 않은 린트부름 출신 문청이 영원한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을 방문하면서 시작되는 온갖 모험의 유혹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부흐하임에서 소위 <황금 목록>에 오른 고서들은 우리네 세상으로 비유하자면 강남 부동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속칭 아파트 부동산 공화국에서 가장 최고로 치는 가치가 부동산이라면,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책>, <12,000가지 규칙>, <악마의 저주>, <위험한 손짓 안내서> 같이 휘귀한 책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책들이다. 문화와 음악을 사랑하는 지식인의 도시에서는 역시 고서(古書)가 그리고 투기공화국에서는 한 조각의 땅이 더 소중한 법이라는 뫼어스 식 비유가 아닐까.

 

모든 것의 시작은 우연이다. 한편, 잔혹한 책사냥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서들을 손에 넣기 위해 부흐하임 아래 지하묘지로 책사냥을 떠난다. 모두가 가질 수 있다면 고서들의 가치는 자연히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은 자고로 단가가 치솟기 마련이 아니던가. 황금 목록에 오른 전설적이 책들을 찾기 위한 경쟁은 죽음도 불사할 판이다. 역사상 최고의 책사냥꾼으로 알려진 콜로포니우스 레겐샤임의 <부흐하임 지하묘지>란 책을 얻게 된 미텐메츠의 운명은 결국 지하묘지행이다.

 

물론 서사구조에 빠질 수 없는 악당도 빠질 수가 없다. 실제로 부흐하임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악당 피스토메펠 스마이크(서적상)와 에이전트 클라우디오 하르펜슈톡(멧돼지)의 술수에 빠져 미텐메츠는 독살 위기에 내몰렸다가 결국 지하묘지로 추락하게 된다. 제천대성 손오공 일행이 서역에 가는 동안 81난을 겪었던 것처럼 미래의 영웅에게 고난이 도래할 시간이다. 그렇다면 발터 뫼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 역시 영웅서사의 전범을 따른단 말인가.

 

지하묘지의 바닥에 해당하는 운하임으로 추락한 미텐메츠는 각종 괴물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사협집행인으로 알려진 호그노의 저녁거리가 될 뻔 하기도 한다. 그리고 외눈박이 부흐링을 만나는 장면으로 이 위대한 그래픽 노블의 첫 번째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미텐메츠의 대부 단첼로트는 차모니아 문학 역사상 최고라는 익명의 저자가 남긴 원고를 대자에게 남긴다. 영웅서사의 발단이다. 독자는 이 미션을 받은 미텐메츠에게 그의 능력을 넘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들이 들이닥칠 거라는 걸 직감한다. 아마 단첼로트 대부는 미지의 원고를 연구해서 린트부름의 뛰어난 시인이 되라는 유언이 남겼지. 그렇다, 모두가 원하는 오름을 직접 경험한 선수는 비로소 지상 최강의 시인이 되어 명예와 부를 손에 거머쥘 것이라는 그런 놀라운 예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능력과 기회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냐, 절대 아니다. 숱한 난관과 장애물들이 미텐메츠 앞에서 대기 중이다. 그건 두 번째 이야기인 <지하묘지>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평범하지만, 수년 동안 단첼로트 대부 아래서 문학적 소양을 키운 훌륭한 문청이라는 게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 뛰어난 스승 밑에서 수년 동안 밥 짓고 물 긷고 빨래하는 중노동을 거쳐 인내의 진수에 도달하게 되면 비로소 강호에 나갈 준비가 된 것이리라. 그런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자만이 진정한 고수로 인정받게 된다는 전통 서사를 발터 뫼어스는 판타지 소설에도 그대로 인용한다. 비범한 사람이 성공하는 게 무슨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인가. 스토리텔링을 가진 사람이 성공해야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 마련이다.

 

이런 두터운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기상천외하지만, 책쟁이들이라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장치들로 발터 뫼어스는 우리를 유혹한다. 파닥파닥, 난 그의 밑밥에 단디 걸려 버렸네 증맬루.

 

이제 1부가 끝났을 뿐이다. 미텐메츠의 모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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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12-23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두기만 하고 안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꺼내어 읽어야 할까봐요.
어쩐지... 안 읽긴 했는데, 안 팔고 싶더라니.

레삭매냐 2019-12-23 15:00   좋아요 0 | URL
아마 가지고 계신 책은 소설인 것으로
추정되네요.

이번에 제가 만난 책은 그래픽노블이
랍니다. 금세 휘리릭 읽을 수가 있었죠.

다 읽고 나니 다시 소설을 찾아 읽어
보고 싶더라구요. 안 파시길 잘했다
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