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루션 맨 -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
로이 루이스 지음, 호조 그림, 이승준 옮김 / 코쿤아우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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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홍적세 시대에 에드워드란 이름의 원시인 과학자가 인류의 발원지로 알려진 아프리카 초원에 살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호모 사피엔스 부족은 맹수들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았다. 아직까지 그들은 불을 사용할 줄도 몰랐고, 다른 맹수들에 비해 나을 것도 없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인류의 앞날이 아주 어두웠다.

 

이야기는 다양한 발명과 시도로 인류 발전에 이바지한 에드워드의 두 번째 아들 어니스트의 시선으로 전달된다. 알파벳도 없던 시절에 에드워드니 어니스트니 하는 이름들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단박에 눈치 빠른 독자들은 눈치 챘겠지만, 원시인들의 삶에 대한 현대적 접근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바로 그 지점이 이 소설을 흥미롭고 재밌게 만드는 킬포다.

 

인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불을 얻는 것이었다. 불을 이용하게 되면서 날고기를 섭취하면서 만성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인류는 부드러운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이 말은 곧 많은 열량을 섭취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예언이었으며, 인류의 뇌는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더 많은 사유를 하게 되면서 생존을 위한 사냥 외에 다양한 문화 예술 그리고 발명 활동이 가능해졌다.

 

수렵으로 살던 시절에 사냥꾼의 목소리가 가장 컸을 것이다. 부족원들에게 안정적인 먹이를 공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을까. 하지만 불의 사용과 다양한 도구의 발명은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공동체 생활에 다양한 방식으로 공헌할 수 있게 되면서 나름 민주적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랜 진화의 결과물인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놀라운 속도로 진행 중인 비인간화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발명가 에드워드가 지속적으로 주창하는 대로, 과학문명(물질문명)과 사회과학의 발전은 동면의 양면 같은 게 아닌가 싶다. 물질문명의 발전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분배를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니까 말이다.

 

또 한편으로 불의 사용 같은 기술의 진보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교훈도 제시된다. 에드워드가 화산에서 건져온 불이 먹이를 찾아 초원을 홀랑 태우고, 에드워드 가족마저 삼킬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는 이 책이 발표될 당시 세계를 위협하던 핵전쟁에 대한 신랄한 경고라고 생각된다. 원시인의 부싯돌에서 발화된 초원을 태우는 불길과 지구별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핵전쟁 버튼이 갖는 함의는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흥미로운 비교가 아닐 수 없다.

 

원시인이 사유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에드워드는 네 명의 아들들에게 더 이상 근친결혼을 하는 대신, 족외혼을 강권하는 장면은 또 하나의 문명의 진보에 대한 저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발해서 사하라와 지중해를 건너 자바를 거쳐 저우커우디엔의 북경원인들과 접촉에 성공한 이안 삼촌의 존재는 여전히 나무 위의 삶을 고집하는 보수주의자 바냐 삼촌의 그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인류는 호기심에서 나무에서 내려와, 저 초원 너머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촉발한 모험으로 세상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혁신에 대한 추구가 결국 인류를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소설의 전개 방식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주었다.

 

한편 에드워드 집단의 갈등은 구세대와 신세대 간에 벌어진 발명의 인류 공헌에 대한 상이한 견해에서 촉발된다. 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된 진취적 사고의 보유자이자 과학자 에드워드는 다른 인류들에게 불의 사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지만, 어니스트로 대변되는 자식 세대는 해당 발명에 대한 특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에드워드의 설득 작전에 다른 구성원들이 넘어가나 싶었으나, 어니스트의 교란 작전이 효과를 거두는 순간 봉합된 갈등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그리고 홍적세 시대에는 이른 활의 발명이라는 획기적인 시도가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 것으로 원시 서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위대한 발명을 돈벌이나 상업화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이바지해야 한다는 발명가 에드워드의 생각은 자본주의 3.0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그런 이상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로이 루이스 작가는 홍적세의 원시인보다도 못한 현대 발명가들의 생각을 저격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불치병에 대한 독점적 발명 권리를 바탕으로 해서 수익을 내는 다국적 의학기업의 횡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자본주의 논리가 원시인 에드워드의 그것만도 못하다는 점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읽어낼 수가 있었다.

 

흥미진진한 <에볼루션 맨>을 읽으면서 1992년에 발표된 브랜던 프레이저 주연의 <엔시노 맨>이 떠올랐다. 어쩌면 과거에서 현대 캘리포니아에 온 원시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엔시노 맨>의 제작자들은 32년 전에 발표된 이 코믹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니었을까. 참고로 이 소설의 부제는 <나는 어떻게 아빠를 먹었는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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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1-29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감사해요. 읽어보고 싶은데요.

레삭매냐 2019-11-29 14:04   좋아요 0 | URL
아주 재밌더라구요.

어제 저녁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단박에 몽땅 읽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