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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다른 나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평점 :

건망증 : 험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어느 시기 동안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또는 드문드문 기억하기도 하는 기억 장애.
건망증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그러니까 건망증은 하나의 장애라는 것이다. 임현 작가의 <당신과 다른 나>는 바로 그 건망증에 대한 염려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현대인은 오만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그 중에서도 건망증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증상이 아니던가.
나의 아내 미양은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남편이 심각한 건망증 증상을 보인다고 의심한다. 소설 속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던가.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는 꼬이기 시작한다. 미양의 남편 “나”는 제약회사 연구원인가 아니면 소설가인가.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그렇게 휘말려 버린 거지.
그런데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미양과 도플갱어 같은 화자가 빚어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소화 장애에 시달리면서도 밀가루 음식을 끊지 못하는 남편. 나도 지금 막 밀크티스콘 하나를 먹어치웠다. 뻑뻑했지만 입은 즐거웠다. 천연세제를 고집해서 거품이 많이 일지 않는 게 문제라고? 설거지는 음식을 먹은 이가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물론 세제를 많이 사용하라는 잔소리는 듣기 싫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이 하면 된다. 내가 세제를 많이 쓰든 말든 관심을 꺼 주시길.
<사랑과 전쟁>에서 모름지기 전쟁은 항상 사소한 문제에서 발단이 되기 마련이다. 큰 문제 가지고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 그리고 그 순간을 넘기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더라. 한 순간을 넘기지 못하는 게 문제지.
어차피 소설의 내러티브야 종잡을 수 없으니 자꾸만 주변부에 시선이 간다. 소설 <당신과 다른 나>는 확실히 재밌다. 독서 슬럼프 탈출용으로 그만이다. 서사의 디테일에 대해 너무 밝히면 또 누군가는 거북할 것이니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어야지 싶다. 소설가가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뭘 쓸 것인가? 그리고 술자리를 그렇게 기웃거리는 것도 다 소재를 사냥하기 위함이라는 가설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는 바로 소설가의 능력일 것이다. 어느 순간, 제약회사 연구원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나”의 모습이 아주 유쾌해 보인다. 나라면 제약회사 연구원보다 소설가이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중고서점을 들락거리는 소설가의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유일한 장소였다고 했던가. 읽은 책이 없는 게 아니지만 꾸역꾸역 책을 사는 모습도 어쩌면 진짜 나와 닮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현실 속의 나도 주인공의 도플갱어 중의 하나일 지도 모르겠다.
소설가가 몰래 읽는 소설의 저자로 추정되는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우나무노의 대표작 <안개>를 중고서점에 득달같이 달려가서 샀다. 절판된 우나무노의 다른 두 책도 바로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예전에는 절판된 책을 구하려면 기약도 없이 헌책방을 순례해야 했는데 택배비 2,000원으로 발품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헌책 사러 대전까지 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지. 부디 우나무노가 소설에 등장한 예의 스페인 작가가 맞길 바랄 뿐이다. 뭐 아니어도 할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