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 J. M. 쿳시 자전소설 3부작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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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201910월의 넷째 주는 쿳시 읽기 주간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달궁 독서모임 책이었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고 난 다음, 그동안 모아 두었던 쿳시 책들 도장깨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문학적 성취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사실 기대하지 않았던 <서머타임>은 베일에 싸인 개인으로서의 쿳시에 대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독서모임에서 쿳시의 초상에 대한 방점을 찍을 수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쿳시가 죽었다는 전제다. 그리고 전기작가 빈센트는 쿳시의 삶과 관련된 다섯 명의 인물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의 실체를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첫 번째 주자는 줄리아로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삼십대 초반의 쿳시를 무능력한 지식인으로 묘사한다. 아니 그렇게 인터뷰어가 드라이브를 걸었던가. 내가 예전에 포커스 그룹 스터디를 하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인터뷰가 어쩌면 그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의 의중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이십대 줄리아는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쿳시와 바람을 피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직장도 없고 가난한 쿳시와 미래를 설계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 실제 쿳시는 이 나이 즈음해서 자식도 둘이나 있었지만, 전기소설의 작가는 독신으로 묘사해서 쿳시의 찌질함을 한층 더 강조한다. 아버지 역시 변화사일을 그만 두고, 작은 상점의 부기원으로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로서 어떤 대성할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을 사랑할 줄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남자가 바로 쿳시였다.

 

다음 주자인 사촌 마르곳(마기)는 전형적인 아프리카너로 쿳시에게 사랑을 알려준 사촌이라고 했던가. 고집쟁이 남자는 아버지를 데리고 케이프에서 땅값이 산 곳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 전 에피소드에서 습기를 막기 위해 직접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 장면도 나왔었지. 남아프리카에서 노동이 천대받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마기와의 에피소드는 둘이서 쿳시의 고물 트럭을 타고 나갔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들판에서 발이 묶이는 컷이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걸까? 트럭이 고장나기 전에 손을 봐야한다고 말했음에도 굳이 고집을 부리다가 이 사단이 난 게 아닌가 말이다. 이렇다할 사건 없이 돌아온 마기는 농장주인 남편과 호텔 일을 하며 고단한 자신의 일상을 이어간다.

 

<서머타임>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바로 브라질 출신 미래의 과부 아드리아나다. 그녀는 매력적인 자신의 둘째딸 마리아 헤지나의 영어 교육을 위해 개인교수를 쿳시에게 부탁한다. 문제는 그가 영국 출신도 아니고 아프리카너 출신의 교사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이 장면에서 나는 얼마 전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스카이 캐슬>이 떠올랐다. 아 자식 교육에 극성인 부모들은 한국이나 남아프리카 혹은 브라질도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런 개인교수 문제가 아니라 쿳시가 딸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지도 모른다는 아드리아나의 노파심이었다. 그리고 보면 쿳시의 소설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라는 설정의 근원이기도 하지 않은가. 전기작가 빈센트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은 쿳시는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건 모두 그저 문학적 설정일 따름이라는. 상황을 더 재밌게 만드는 건, 쿳시의 관심은 정작 무용수인 아드리아나 당사자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무뚝뚝한 아프리카너 남자는 짝사랑에 빠진 나머지 막대기 같은 몸뚱이를 흔들며 댄스 교습소 출입을 시도한다.

 

나머지 인터뷰이 마틴과 소피는 쿳시의 대학시절 동료들이었다. 학생들과의 관계에 대해 묻는 빈센트의 도발적인 질문에 마틴이 그런 일도 없었고,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알려 줄 수 없다는 말은 동료를 지키기 위한 지원사격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똑같이 그 질문이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자기방어용 전략이었는지 말이다. 소피는 아니나 다를까 쿳시와 불륜의 상대이기도 한 프랑스 출신 교수였다. 그녀는 백인들이 아프리카 문학에 대해 강의하는 아이러니를 친절하게도 설명해준다. 그리고 좀 더 쿳시 초기작들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들이 오고간다.

 

흥미로운 지점 중의 하나는 상대방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주를 부려야하는 빈센트라는 캐릭터의 존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적 관계가 출판되거나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인터뷰가 정리되어 완성되면 자신에게 허락을 받으라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역시나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철저한 서구적인 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나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주 오래 전에 누가 술자리에서 나눈 사담을 글로 쓰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그런 부탁을 하더라. 문득 내가 사관이 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서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서머타임>은 어쨌든 미국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홀로되신 아버지와 살며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던 어느 지식인에 대한 세밀한 초상화로 내가 다가왔다. 이 멋진 전기소설의 어떤 질료들은 사실일 것이고 또 어떤 것은 허구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작가가 쓰는 것들이 오롯하게 모두 작가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쿳시는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물론 다 믿는다는 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순진한 독자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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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0-31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장깨기!!! 호이잇~격파소리가 들립니다 진짜 쿳시 도장깨기입니다 저는 한참뒤에나 따라갈듯 말 듯...ㅎㅎㅎ

레삭매냐 2019-11-01 10:49   좋아요 1 | URL
쿳시 읽기 응원합니다.

전 이제 남은 두 달 동안 읽다만 책들
그리고 그동안 숙제 같이 따라다닌
책 읽기에 전념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