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 - 전민식 장편소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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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아베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으로 일본과 경제전쟁으로 기해년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민간의 자발적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 안사고 안가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반성과 사과가 없는 전범국가 일본과의 평화공존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326년 전,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 세기가 흐른 뒤 조종의 강토인 울릉도와 독도 지킴이에 나선 상인이자 어부 안용복의 이야기를 그린 <강치>를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건 위정자들이 아니었다. 고종이나 순종이 국권이 침탈될 때, 백성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가. 아니다. 동학운동으로 일본군에 맞서 싸운 건 농민들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또 어떠했는가. 임금이 조정을 버리고 몽진을 가자, 의병이 나서서 왜군에 맞서 싸웠다. 위민이야말로 성리학을 주창하는 선비 사대부들의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 그런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평화 시에 양반 행세를 하며 반상의 도 타령하는 게 그네들의 모습이었다.

 

팩션인 <강치>의 역사성을 알아보기 위해 국역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숙종 연간에 등장하는 소설 <강치>의 주인공 안용복은 모두 11번 숙종실록에 등장한다. 1693년 계유년 봄에 울산에서 도해금지령을 어기고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 박어둔과 안용복 2인을 꾀어 납치했다는 기록으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한다.

 

당시 39세의 외거노비 출신 상인이자 어부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를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등잔에 쓸 기름과 고기 그리고 가죽을 얻기 위해 독도에 사는 강치를 마구잡이로 살육하는 왜인들의 잔악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조국의 자원은 물론이고 조종의 강토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왜인들에게 택견으로 저항해 보기도 하지만, 동료들을 구하고자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순순히 납치되기에 이른다.

 

이어 오키섬, 요나고와 돗토리 그리고 나가사키와 쓰시마를 반년 동안 아우르는 간난신고를 겪게 된다. 그 와중에 쇼군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하고 일본인들의 울릉도와 독도 출입을 금지하는 서계를 발급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문제는 귀국길에 일본 본토를 지배하는 쇼군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쓰시마 도주의 농간으로 서계를 강탈당하고 안용복과 박어둔은 본국 초량으로 귀환한다.

 

조국의 기개를 왜국에 가서 드높인 안용복이었지만, 지역을 담당하는 동래부사에게 안용복은 도해금지령이라는 지엄한 국법을 어긴 범죄자일 뿐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충무공 이순신이 간신의 모함에 걸려 백의종군하게 되고,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 맞서 모든 것을 희생한 의병장들의 최후가 연상되지 않는가. 아무리 도해금지령이 조선의 백성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곤장 100대에 유배형까지 당하게 된 안용복의 심정이 과연 어땠을까.

 

사실 팩션 <강치>의 정점은 여기까지가 아니었을까. 쓰시마 도주의 악행에 대한 소송과 쇼군의 서계를 되찾겠다는 의지에서 실행된 두 번째 일본행은 무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소설적 밀도도 현저하게 격감되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기존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서 <강치>를 썼다고 하는데 조선 대표선수로 위장하기 위해 공직을 사칭하고, 두 번째로 도해금지령을 어기는 장면에서는 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귀국 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천민 출신으로 국법을 어기고 외교 문제를 초래한 안용복에 대한 처벌 문제로 조정은 두 파로 나뉘어 격론을 벌이는 장면은 대미를 장식할 만했다. 안용복의 사단을 일죄(사형)로 다스려야 한다는 영돈녕 윤지완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성리학적 질서를 최우선으로 하는 조선에서 국가 질서를 어지럽힌 안용복을 용서한다면 추후에 벌어질 기강문한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주장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파로 등장한 영부사 남구만은 안용복을 처형할 경우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쇼군이 내린 왜인들의 울릉도 독도 해금령이라는 쾌사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결국 주상이 두 개의 공과 실을 가감해서 안용복을 유배형에 처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를 짓는다.

 

첫 번째로 안용복이 일본에 납치되었을 때, 숱한 왜인들의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 우선 일본인 뺨치는 일본어 실력이다. 무역을 하는 상인으로 자신들과 별다를 게 없을 정도의 언어 능력을 가진 안용복이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어떨까. 탁월한 택결 실력과 사무라이들도 감탄할 만한 정상급 무술 실력을 갖춘 이가 나는 어부요라고 말하는 걸 그대로 믿는 게 더 우습지 않을까. 2차 도일에서는 사맹들과 일단의 용병들을 지휘해서 폭풍 속에서 세키부네를 맹렬하게 추격하는 리더십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 정도라면 조선 슈퍼히어로급 선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주목한 것 중의 하나는 이상룡이라는 초량 바닥에서 한다하는 행수급 토착왜구의 존재다. 왜인들의 잔악한 행동과 횡포는 그렇다 치고, 그들에게 협력해서 동래 지역 밀무역은 물론이고 살인교사와 안용복의 의붓동생 선화 납치에 가담하는 등 왜인 못지않은 악행을 일삼는다. 거상 오다에게 부역해서 돈을 벌고, 한양의 두둑한 뒷배를 둔 악당은 조정의 법망을 비웃으며 자객을 고용해서 안용복에게 보복을 실행한다. 가상의 인물 설정이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작금의 현실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가 막힌 상황들에 딱 맞아 떨어지는 모를 정도였다. 학자로서 말도 되지 않는 연구로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매국적인 선동도 문제지만, 그런 선동에 아무런 비판 없이 부화뇌동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더 걱정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소설의 제목으로 뽑은, 그렇게 일본인의 손에 멸종된 독도 강치들의 운명은 조국이 지켜줄 수 없었던 조선 민초들에 대한 비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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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8-28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레삭메냐님 제목이 더 좋아요. 또 다르게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에휴.... ㅠㅠ

레삭매냐 2019-08-28 13:05   좋아요 0 | URL
하하 ~ 제 속 마음을 읽으셨나요.

역시나 단발머리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