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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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기자질을 하던 시절의 기백이 엿보이는 소설인지 르포르타주인지 모를 그런 책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2020년 최저임금이 발표되었는데, 경기 침체의 주범으로 최저임금을 지목하고 총공세를 편 보수 언론과 도무지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어느 당의 리더가 시대를 역행하는 기괴한 발언을 해서 얼떨떨하기도 했다. 지금이 19세기 산업혁명 시절인가 싶었다.

 

이제 곧 인구절벽의 시절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게 될 시절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동안 노동력 과잉으로 기업들은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도모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경영방식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최저임금을 무기로 다른 사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들을 강제하고 있지만 말이다. 서구 사회의 인건비가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 비싸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일에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시절이 바뀌면 사고도 바뀌어야 하는데, 여전히 무료배달의 추억이 우리의 윤리적 소비라는 발목을 잡는 게 아닌가 싶다.

 

장강명 작가는 모두 열 꼭지의 이야기들로 2019년 대한민국 노동시장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은 레알인가 아니면 픽션인가? 난 아무래도 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알바생 자르기>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유휴 인력을 줄이고,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리는 꼰대들을 저격한다. 나도 모르게 관행이라는 적폐에 젖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상대방의 권리를 무시하지는 않았나 반성해 보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로 노동자 처지에 왜 사용자 입장에 서 있던 걸까. 그만큼 관행이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난번에 읽다만 <제인스빌 이야기>에서 이미 나는 양질의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이 겪게 된 자존감의 상실과 수입 감소 그리고 가정의 붕괴라는 삼박자의 정교한 회로도를 체험한 바 있기에 <공장 밖에서>가 절절하게 다가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더 무서운 말이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일자리를 생존과 직결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처럼 일하면서 고작 1/3 밖에 안되는 급여를 받는다는 문제 제기는 또다른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다. 왜 빈번하게 억대의 연봉을 받는 무능한 경영진의 경영실패로 일한 뒷책임을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로 몸빵을 해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한 때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산 자들죽은 자들로 나뉘어 노노갈등을 벌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 같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산 자들은 자기들이라도 살기 위해 죽은 자들을 공격한다.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는 동료들이었지만 이제는 자기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일 뿐이다. 죽은 자들이 끝까지 버텨서 공장이 폐쇄된다면, 산 자들 역시 죽은 자들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폐쇄될 공장의 운명이 바뀌는 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제인스빌 이야기>를 통해 깨달았다. 다시 한 번 각자도생의 시대에 벌어지는 비극의 원형을 읽을 수가 있었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한국은 이미 그들의 세계전략에서 아웃되었다. 아무리 정부가 공장과 직원들을 볼모로 잡은 그들에게 지원을 해봐야 깨진 독에 물붓기일 따름이다. 다만 타이밍의 문제일 뿐.

 

내가 예전에 살던 곳에 이만희 빵집이라는 동네 빵집을 비롯한 서너곳의 빵집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시내 곳곳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면서 동네빵집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만희 빵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동네 빵집 몰락기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다. , 왜 작가는 치킨공화국을 다루지 않았을까? 직장에서 내몰린 퇴직자들이 너나 없이 차린다는 치킨집이야말로 자극적이면서도 그야말로 MSG 같은 이야기들을 토해냈을 텐데 말이다.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하고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대기업화된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선 이후, 빵값이 모두 올랐다. 이제 이천원대 식빵은 아예 팔지도 않는다. 이럴 줄 몰랐나?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이 사라지게 되면, 독야청청 시장을 주무르게 된 독과점기업의 횡포가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시장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자유로운 경쟁의 비밀은 바로 독과점이었다. 힐스테이크 베이커리 주인장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에 나섰지만, 온갖 현란한 마케팅으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빵집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너무 싸도, 사람들은 소비욕구를 거둔다. 시장에서 정상적인 가격에 대한 가늠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천명이 넘는 경쟁자를 제치고 아나운서가 되었다는 전설을 쫓은 <카메라 테스트>도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경쟁자였다. 이번 여름휴가 때, 강릉MBC를 지나치면서 얼마 전에 읽은 아나운서 도전기가 연상됐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보는 방송의 아나운서 자리가 그렇게 선망의 자리인 줄 누가 알았을까. 단 한 번의 실수로 다른 기회를 얻기 위해 수개월간의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도 튀어 나오더라.

 

<대외 활동의 신>에서는 열정 페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미래의 취업자들을 착취하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리포트를 만나볼 수 있었다. 견고한 학벌과 인맥 그리고 스펙이라는 삼위일체가 빚어내는 치열한 취업경쟁을 뚫고 입사한 이들의 30%1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직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만큼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크다는 것일까. 구하는 자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또 기업에서는 일할 만하면 이직하니 가르치면 뭘 하냐는 넋두리가 허공에서 충돌한다.

 

나도 그 좋아하는 책의 당일배송이 되지 않는다고 허구헌 날 불평을 토로하곤 했었는데 반성한다. 사실 그렇게 당일배송이 되도, 바로 읽지 않고 중고서점에서 읽지 않은 책을 만났을 때 얼마나 속이 아렸던가. 그냥 여기저기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요즘에는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개선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업체에 전화를 걸 때마다, 전화 상담하는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메시지가 수시로 등장한다. 내 안의 분노를 자제하고, 다스리는 것도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음악의 가격>에서도 역시나 창작이라는 각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음악이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적확하게 타격한다. 은글슬쩍 자신의 밥그릇인 책에 대한 이야기도 끼워 넣으면서 말이다. 역시나 업자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책은 낫다고 했던가. 내가 처음에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만도 카세트테이프나 레코드 판이 대세였다. 그 뒤에 CD가 등장했고 그 다음에는 MP3 파일이 나왔다. 고정적인 형태의 미디엄만 생각하도 세대에게 냅스터로 다운 받은 파일로 음악을 듣는다는 건 혁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트리밍의 시대가 됐다. 메탈리카가 자신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냅스터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지만, 이제 스트리밍이 대세가 된 시대에 아무런 의미 없는 싸움이 되었다. 그래서 메탈리카는 음원 수입 대신 돈이 되는 콘서트에 열을 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쪽에서도 티켓매스터라는 괴물이 수익을 독심하고 있다고 들었다.

 

<산 자들>을 읽는 동안, 현실이 정말로 고통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생존을 위해 꾸준하게 소비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 그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노동이라도 팔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책을 사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토바이어스 울프의 자전적 소설이 나왔다던데, 그렇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소비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노동도 해야 한다. 에라, 그지 같은 결론이네. 산 자들이여,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어떻게든 돈을 벌어라. 참으로 슬픈 현실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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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2019-07-15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우, 레삭메냐 님, 정말 박진감 있게 읽히네요. 윗글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행간에 묻어나는 배려하는 마음도요. 한데 오늘 아침 08시 05분부터 류현진 선수가 보스턴 상대로 던지는군요. 레삭메냐 님은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이신 것 같은데 마음이 좀 미묘하시겠네요. 아무튼 즐겜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레삭매냐 2019-07-15 11: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전 레드삭스 팬인지라 레드삭스가 이기길
응원했지만 다저스가 타력으로 압도하네요 :>

마인드님도 즐거운 하루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