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느 메디치의 딸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박미경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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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월은 나에게 독서 슬럼프의 달인 모양이다. 읽기 시작한 책들은 부지기수인데 마무리를 짓지 못한 너무 많다. 제시 볼의 <센서스>를 필두로 해서, <그해, 여름 손님>,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 <술꾼>, <악어와 레슬링하기> 그리고 <아일린>까지. 하지만 19세기판 막장 소설의 대가라는 알렉상드르 뒤마 선생의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을 읽으면서 슬럼프 탈출을 선언하게 되었다.

 

뒤마가 1845년에 발표한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은 1572년 뜨거웠던 8월의 프랑스를 시공의 무대로 한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파트리스 쉐로 감독이 1994년에 연출한 <여왕 마고>도 같이 보게 되었는데, 영화는 뒤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상당히 디테일까지도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9세 이자벨 아자니가 20대 초반의 마고 역할을 무난하게 해냈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다. 대니얼 오떼이유를 필두로 해서, 장 위그 앙글라드 그리고 벵상 페레 등 당대 한다하는 프랑스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16세기 대하 드라마를 연출해냈다는 점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영화의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다. 소설의 리뷰인지 아니면 영화 리뷰인지 나도 헷갈릴 정도다.

 

루터의 신교개혁이 시작되고 카톨릭의 나라 프랑스도 종교개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발루아 왕조의 여명이 다해 가던 가운데, 선대 앙리 2세는 스페인 국왕의 왕비로 자신의 딸을 보내며 마상창시합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눈을 찔려 황망하게 사망했다. 프랑스 궁정에서는 참 별 일이 다 있구나 싶을 정도다.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검은 왕비’로 알려진 카트린느는 발루아 왕조의 영속을 추구하는 권력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네이버 파워라이터 주경철 선생에 의하면 뒤마가 지나치게 카트린느 메치디에게 악녀 이미지를 뒤집어 씌운 것 같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카트린느 메디치는 구교도와 신교도의 평화를 도모했지만, 상 바틀레미의 학살로 알려진 신교도 위그노 학살에 국왕 샤를 9세와 카트린느 메디치의 책임은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앙리 2세의 뒤를 이은 장남 프랑수아 2세마저 요절하고 차남 샤를 9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 카트린느 메디치가 섭정직을 맡게 되었다. 카트린느는 나바르의 왕 앙리(신교도)와 자신의 딸 마르그리트(마고)를 결혼시켜 신교와 구교의 화합을 도모하는 동시에,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파리로 찾아온 신교도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운다. 뒤마는 구교도 대표로 카트린느와 전쟁영웅이자 그녀가 총애하는 세 번째 아들 앙주공 앙리 그리고 기즈 공작들을 배치하고, 다른 편에는 가스파르 드 꼴리니 제독과 나바르의 앙리 그리고 마고의 애인 라몰 공작을 차례로 등장시킨다.

 

상 바틀레미의 밤, 압도적 다수인 카톨릭 교도들은 국왕 샤를 9세의 묵인 하에 신교도 학살을 시작한다. 화승총과 검 그리고 창 같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무기들로 남녀노소할 것 없이 신교도들을 학살한다. 이미 카트린느가 고용한 자객 모르벨의 총에 맞은 꼴리니 제독은 창 밖으로 내던져지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즈 공작이 그를 죽인다. 한편, 나바르의 앙리는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이 살해당하는 동안 샤를 9세를 비롯한 발루아 앙굴렘 집안의 유력자들에게 호소해서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심지어 그는 카톨릭으로 개종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치적 동맹자가 되기로 결심한 마고는 가족들을 간신히 설득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제부터 훗날 살리카 법에 따라 앙리 3세(앙주공 앙리)의 뒤를 이어 부르봉 왕조의 시조가 되는 앙리의 생존기가 시작된다.

 

여느 기독교도와 달리 흑마술이나 주술에 집착하는 카트린느는 자기 가문의 최대 숙적이 나바르의 앙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사위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앙리의 애인 샤를로트의 입술에 독이 묻은 제제를 발라 죽이려는 시도부터 시작해서, 라몰의 이름이 적힌 매사냥 책까지 동원해서 앙리를 죽이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한다. 마지막 시도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아들 샤를이 희생양이 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뒤마는 상 바틀레미 학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왕비 마고>라는 걸작 소설을 창조해냈다. 소설이 프랑스 궁정에서 벌어지는 추악하기 짝이 없는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 그리고 신구교의 갈등이라는 정치적인 면모에 중점을 두었다면 영화는 라몰 백작과 마고의 로맨스에 비중을 두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치른 마고가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가 하룻밤을 지낼 남자를 찾는 장면은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난 운명적 연인들은 비극으로 치닫게 되지 않던가.

 

영화에서 샤를이 그렇게 좋아하는 사냥에서 멧돼지에게 물려 죽을 지도 모를 상황에, 앙리가 등장해서 단검으로 멧돼지의 숨통을 끊고 샤를을 구해내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소설에서는 카트린느가 매사냥 책에 바른 독 때문에 죽어가는 샤를이 자신의 사후 프랑스 섭정권을 앙리에게 넘기겠다는 결정을 카트린느에게 들려주며 갈등하는 장면도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라몰과 코코나의 우정에 대한 개연성이 영화에서는 좀 빈약하다고 생각되는데, 소설에서는 좀 더 진중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교도 코코나와 신교도 라몰이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 나중에 가서는 죽음까지도 함께 한다는 우정에 대한 뒤마식 해석이 구시대적이긴 하지만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이번에 출간된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이 완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축약본이다 보니,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는 일품이었지만 디테일에서는 좀 실망스러웠다고나 할까. 첫 페이지에 나오는 나바르 공화국이란 번역을 보고 식겁하기도 했다. 아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려면 200년도 더 있어야 하는데 왠 공화국?

 

뒤마의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은 상 바틀레미 학살이라는 당대 첨예하게 맞붙었던 신구교의 갈등은 물론이고,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제국가로 변화해 가던 프랑스 시대상을 보여준다. 인간이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설/영화는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권력에 눈이 먼 발루아 가문의 남자들과 카트린느 메디치는 온갖 추악한 방법을 동원해서 매부이자 사위인 앙리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신교도의 수장 앙리 역시 살기 위해 종교를 바꾸고, 나바르로 탈출해서는 다시 원래 신교로 그리고 다시 프랑스 국왕이 돼서는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카톨릭이 되는 팔색조 같은 변신을 거듭한다. 이렇게 다양한 군상들이 빚어내는 희비극의 드라마가 재미있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레인보우퍼블릭스에서 출간된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의 가격은 매우 착하다. 책의 판형이나 디자인도 나쁘지 않다. 다만 번역에 대한 의구심과 판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점이 아쉽다. 나중에라도 완역이 나오게 된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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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6-24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0년대에 <마고 왕비>라는 제목으로 두 권짜리 번역본이 나왔어요. 헌책방에서 산 책인데 아직 안 읽어봤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번역본도 완역인지 아닌지 의심이 드네요.. ^^;;

레삭매냐 2019-06-25 10:16   좋아요 0 | URL
아마 그 책은 완역으로 보입니다.
분량이 적잖으니 말이죠...

초역으로 생각했었는데 그전에 한 번
나온 책이었군요. 역시 싸이러스 브로
파워!!!

2019-06-24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6-25 10:17   좋아요 0 | URL
날도 덥고 하여서 그냥 이번 달에는
무리하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읽기로
했답니다.

권수가 늘어날수록 헛된 욕심을 부
리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