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 에게해에서 만난 인류의 스승 클래식 클라우드 9
조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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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인가.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의 스승 그리고 플라톤과 함께 서양 철학의 시조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조대호 작가의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면서 좀 더 다층적인 위대한 지성의 면면을 접할 수가 있었다.

 

우선 책 표지의 등장하는 돌고래를 보자. 아테네의 플라톤 스쿨 아카데미아에서 근 이십년간을 보낸 아리스토텔레스가 레스보스 섬에 가서는 식물학과 동물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지.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레스보스 섬은 서양 생물학의 탄생지가 되었다. 철학자로만 알고 있던 천재적 지성의 알려지지 않은 면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 컷이 아니었을까.

 

현재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 근처 스타게이라에서 기원전 384년에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궁정의 시의로 활동한 아버지 니코마코스 슬하에서 자랐다. 아테네 시민도, 마케도니아 왕국의 신민도 아니었던 아리스토텔레스 경계인 인생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에 대해 저자는 책벌레였다는 말로 위대한 지성을 표현한다. 아마 그는 열정적 독서가였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동양의 종이가 전래되지 않았으니 아마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끼고 산 모양이다. 태생적 배경으로 그는 평생 친마케도니아 인사 취급을 받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스승의 플라톤 사망 직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반마케도니아 정서를 넘쳐나던 아테네를 떠났다. 아카데미아에서 학생으로 10년 그리고 강의자로 교육과 연구를 위해 10년을 보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처럼 자진 망명길에 오른 것이다. 스승이 그리스 세계의 서쪽 끝으로 갔다면, 제자는 동쪽 끝을 선택했다. 제자 시절부터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이데아를 추구하는 철학적 사변을 비판한 제자는 구체적 자연 현상에 대한 관찰을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소스의 참주였던 헤르마이오스에게 의탁해서 후원을 받았다. 2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속적인 학문 연구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아무런 대가 없는 후원이라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자금을 대는 후원자도 연구자 못지 않게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 3.0 시대에 후원은 언제나 경제적 이득을 겨냥한 일종의 투자가 아니었던가.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르마이오스의 딸인지 조카인지 모를 퓌티아스와 결혼해서 부인의 이름과 동명의 딸을 낳았다고 한다.

 

사포의 고향으로 유명한 레스보스 섬에 머무르는 동안 500종에 달하는 동물들을 관찰하고, 철새의 이동과 태생 상어 같이 특별한 생물들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생명체의 사다리 모델 같은 현재 생물학과 견줄 만한 기록들을 남겼다. 물론 혼자 힘이 아닌 조력자 테오프라스토스(자신과 같은 거류민)의 도움을 받았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족적을 추적하는 과정 가운데, 그리스 부도 사태와 시리아 난민 그리고 지진 같은 일단의 사태들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특히 우연히 만난 이들에게서 그들 자신도 그리스-터키 전쟁 당시 난민이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는데, 그 점이야말로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난민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론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뭐니뭐니 해도 아리스토텔레스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세계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였던 시절이 아닐까 싶다. 격정적 선동가 데모스테네스, 자연 현상의 탐구자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전제주의 국가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삼총사가 빚어내는 정치 드라마는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데모스테네스는 어떻게 해서든 아테네의 헬라스 세계의 맹주 자리를 되찾기 위해 전력투구했고, 대척점에 서 있던 필립포스는 마케도니아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헬라스 세계를 꿈꿨다. 그 꿈은 아들은 알렉산드로스가 이루게 되는데, 더 나아가 젊은 정복자는 오랜 기간 동안 헬라스 세계를 압박하던 동방의 페르시아 제국을 징벌하기 위한 대원정에 나서게 된다.

 

그전에 앞서 알렉산드로스는 사사건건 마케도니아에 반기를 드는 테베와 아테네를 정벌하고, 스파르타는 고립시키는 작전을 구사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한편 스승 플라톤이 추구하던 철인정치는 무력으로 패권장악을 기도하던 당시의 정치상황과는 전혀 맞지가 않았다. 게다가 세계정복자를 꿈꾸던 알렉산드로스에게 그런 여유작작한 이상적 정치론이 받아들여졌을 리가 없다. <호메로스>로 대변되는 그리스 영웅주의 핵심에 매료된 젊은 정복자에게 현명한 스승은 올바른 명예를 추구하는 방향 제시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은 실패로 귀결됐다. 끝없는 정복전쟁에 염증을 느낀 그리스 병사들의 항명은 알렉산드로스의 첫 번째 실패였다. 그가 추구한 동화정책 역시 그리스 동포들에게는 먹히지 않는 원대한 이상이었다. 천재적 전략가가 추구한 미래의 원대한 꿈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짧은 기간에 이룩된 제국은 그만큼의 속도로 붕괴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명 역시 전도유망했던 제자의 때이른 죽음과 함께 몰락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몇 권의 알렉산드로스의 전기 혹은 평전을 읽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니 기억들이 다 휘발해 버린 느낌이다. 왜 이렇게 새로운 거지.

 

솔직히 말해서 저자가 공들여 다룬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4원인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좀 더 탐구가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타인의 이해가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로부터 비롯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철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할 말은 많지만, 나의 일천한 철학적 지식으로 분석하고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느낌 뿐이다. 인간 행동의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아레테와 그렇게 확립된 목적을 실천하기 위한 실천적 지혜라니... 가까이 하기엔 아직 내겐 너무 먼 당신, 아리스토텔레스여.

 

서양 철학을 필두로 해서 과학과 정치학, 윤리학 거의 모든 학문의 시조로 추앙받는 위대한 지성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이 책을 저술한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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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6-10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리스토텔레스가 레스보스 섬에 갔다니 흥미로운 사실인데요. 레스보스 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가 있던 곳, 레즈비언들의 섬이거든요.. ^^;;

레삭매냐 2019-06-10 17:13   좋아요 0 | URL
저자도 레스보스 섬의 레즈비언 축제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래스보스 섬이 서양 생물학의 탄생지라는 점
을 조대호 선생은 강조하더군요. 다양한 생물
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네요.

뒷북소녀 2019-07-07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처음에 표지에 돌고래 있어서 어떤 이유인가 했더니.

레삭매냐 2019-07-09 11:33   좋아요 1 | URL
철학 입문서로 아주 좋다는 평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네요.

전 철학에는 문외한인지라,,, 인물
위주로 읽었답니다.

뒷북소녀 2019-07-09 12:52   좋아요 1 | URL
우선 맛이나 보려고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어요.
읽어보고 괜찮으면 저도 소장해야겠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