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말이 없었다
하인리히 뵐 지음, 안인길 옮김 / 대학출판사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W.G. 제발트는 <캄포 산토>에서 독일 문학의 각성을 촉구했다. 시류에 영합한 문학이 아닌 진정한 전쟁에 대한 반성과 ‘문학적 증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문학은 기억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폐허문학을 실천에 옮기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하인리히 뵐을 꼽았다. 독일 출신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지만, 우리에게 소개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제발트의 책에서 알게 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는 오래 전에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그런 책이 되었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에 23년 전인 1995년에 출간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가 있어서 빌려서 읽을 수가 있었다.

 

하인리히 뵐이 죽은 뒤 미발표 원고로 발표된 <천사는 말이 없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탈영병이다. 탈영병이라는 신분 덕분에, 독일 민족과 수많은 유럽의 생명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한스는 도망자 신세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가짜 신분증을 요구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의사는 한스에게 가짜 신분증을 주는 대신 돈을 달란다.

 

히틀러와 나치 일당이 통치하는 시간은 끝났지만, 이제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존이라는 좀 더 엄혹한 시절이 도래했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빵과 담배가 필요하다. 전자가 삶의 직접적인 실체하고 한다면, 후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 누릴 수 있는 기호식품을 대변한다고 해야 할까. 하인리히 뵐이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서 구사하는 폐허문학의 정수는 전쟁의 참혹함이라기 보다, 살아남은 이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모든 자신이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으로 환산되는 전후 독일에 대한 치밀한 묘사야말로 작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레기나 웅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보유한 모든 물건들을 내다 판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삶의 공간에 스며든 한스 슈니츨러를 위해 귀한 카메라를 판 돈으로 신분증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한스는 5월의 추위를 덜어내기 위해 석탄 훔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 베를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5월의 베를린 날씨가 어떤지 모를 지도 모르겠다. 너무 추워서 아무 매장에나 들어가 5유로하는 싸구려 스웨터를 사입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레기나는 매혈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때 세계를 제패하던 게르만 민족의 자긍심은 어디로 가 버리고, 자국을 점령한 연합군의 호의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가 넘쳐나는 소설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신도 막을 수 없었던 전쟁이 끝난 뒤, 뒤치다꺼리를 맡은 이들이 신이나 천사가 아닌 인간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신부와 수녀들이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보살피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천사는 말이 없었다>에 같이 실린 단편 <하얀 천사>와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가 좀 더 전쟁 자체에 대한 고발처럼 다가왔다. 뻔히 지는 전쟁인 줄 알면서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순간에 대해 고민하는 장군의 모습을 보라. 그 명령을 거부하면, 군법에 따라 장군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럴 바에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스스로 뛰어 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까. 어떤 의미도 없이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전쟁의 부속품 같은 존재인 병사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인리히 뵐은 자신이 전장에서 직접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말미에 패퇴하는 병사들 앞에 흰옷을 입고 등장해서 포도주와 빵을 나눠주던 여성이야말로 ‘하얀 천사’가 아니냐는 서술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천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에서는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봐도 포주인 신병 야크가 등장한다. 병사들을 집어삼키는 참호전에 투입된 야크는 베테랑 후베르트의 총탄이 빗발치는 청음초에서 대화가 주를 이룬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선에 투입된 신병의 최후는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사는 말이 없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전쟁 전에 서점직원이었다고 하는데, 야크란 친구는 세 명의 창녀에게 손님들을 끌어 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포주조차 전장에 투입할 정도로 제3제국의 처지가 곤궁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야크가 전쟁터에서 병사로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의미 없이 소모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저자가 구사하는 반전 메시지는 탁월하다. 사실 내가 예상했던 폐허문학의 리얼리즘에는 좀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라 그런지 좀 더 애착을 갖고 읽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요즘 번역과는 다른 스타일이나 표기법도 독서 진도를 원하는 대로 나가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녹색의 집>도 읽고 있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책이라 그런 걸까 싶다. 출판사에서 새롭게 번역해 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진 않다.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만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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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8-10-29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90년대에 안인길 교수가 뵐의 작품을 싹쓸이(?) 할 정도로 많이 번역 했죠.제가 뵐을 좋아해 거의 소장하고 있네요.밤을 새워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ㅎㅎ

레삭매냐 2018-10-29 21:35   좋아요 0 | URL
그랬었군요 :> 미처 몰랐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예전 작품들을 만나려니
쉽지가 않네요.

일단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책부터 하나씩
읽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