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 마젤란펭귄과 철부지 교사의 우연한 동거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존재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책 소개 글을 통해 알게 됐다. 네 컷의 동영상을 통해 펼쳐지는 개략적인 소개에 그만 빠져 버렸다. 당장 사거나 빌려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은 예약판매 중이고 도서관에는 모두 빌려가서 없더라. 그런데 왜 하필 펭귄이었을까? 우리집 테라스에 멍멍이나 야옹이가 사는 이야기를 썼다면 아마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펭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보기 쉬운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간 거다. 그런 점에서 톰 미첼 작가의 홍보 전략과 타이틀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잘 모르는 작가라면 독자를 낚을 수 있는 타이틀이 중요한 법이니까.

 

영국 출신 나는 뼛속까지 제국주의자였던 러디어드 키플링의 모험담을 듣고 자라났다. 나의 어머니는 한 때 악어를 키우기도 하셨다고 한다. 젊은 날, 저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기숙학교 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말할 필요 없이 모험을 향해 떠날 수가 있었다. 군 출신 페론 대통령이 통치하던 당시 아르헨티나의 정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거리에서는 폭력 시위가 넘쳐났고, 납치와 유괴가 횡행하던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저자는 친구의 호의로 이웃나라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 아파트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그 때 바닷가에서 청어 떼를 쫓는 펭귄들을 목격한다. 얼마 뒤, 충격적이고 비통한 장면을 목격한다. 기름 때에 절어 죽은 수천 마리의 펭귄 사체더미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북새통에 살아남은 마젤란 펭귄 후안 살바도르를 만나게 된다.

 

타르로 그냥 놔두면 죽을 펭귄을 숙소로 데려와 잘 씻긴 다음, 다시 바닷가로 돌려보내려 하는 작가의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결국 녀석을 데리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야 했다. 저자는 버스에서 만난 가브리엘라에게 오해를 받아 가며(녀석의 실례 때문에), 군사쿠데타로 가뜩이나 예민한 아르헨티나 세관원의 뇌물 공여 요청을 거부해 가면서 후안 살바도르를 무사히 자신이 근무하는 세인트 조지 학교로 데려 오는데 성공한다. 녀석은 청어를 좋아하는 타고난 사냥꾼이자, 사람들의 애정을 한 눈에 앗아가는 너그러운 성직자 같은 모습과 매력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저자 톰 미첼은 이야기의 다른 한 축에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실정을 배치한다. 영국인들은 포클랜드로 그리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말비나스라고 부르며 전쟁까지도 불사한 바 있는 예민한 정치적 주제를 거론했다가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싸우게 된 일화는 물론이고, 가히 살인적인 당시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진술한다. 군부는 정치권력을 장악했을지는 몰라도 역시나 민간 부분인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누군가 손해를 보면, 누군가에는 득을 보지 않았던가. 세인트 조지에서 산타 마리아라 불리는 친절한 세탁 담당 아주머니 같은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 받고, 대신 대지주와 자본가들만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고 저자는 조용하게 알려준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후안 살바도르를 자연에 풀어 주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광활한 황무지를 선배 체 게바라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누비다 맞닥뜨리게 되는 장면을 이 소설 최고의 한 컷으로 꼽고 싶다. 초반에 마젤란 펭귄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이유가 환경오염과 무분별한 남획이라고 했던가. 저자는 아르헨티나 동물원에 후안을 데려다 주려던 계획은 인간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동물들의 실태를 보고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세인트 조지에서 후안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낫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여행 중에 볼리비아 포토시를 찾은 경험담도 인상적이다. 소매치기를 당해 하는 수 없이 지역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다지 아마. 돈 몇 푼에 기꺼이 잠자지를 내주는 호의에는 감사했지만, 자신과 그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나는 냄새 때문에 도저히 같이 잠을 자지 못하고 한데서 잠을 자려다가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는, 언젠가 들은 미국 출신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다른 건 몰라도 물 부족으로 마음대로 샤워를 하지 못해 결국 선교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모든 게 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핑귀노 후안은 저자가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그만 죽었다고 한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무언가 끝내주는 특별한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그런 건 사실 없었다. 23살의 젊은이 눈에 비친 테러와 폭력이 백주대낮에 횡행하는 불안한 아르헨티나 정정에 대한 기술도 깊이는 없었고, 피상적인 관찰이 주를 이룬다. 혹독한 군부독재에 대한 상세한 리포트를 기대했는데 좀 아쉬웠다. 예상한 대로 마젤란 핑귀노 후안 살바도르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었더라는 이야기 블라 블라. 이십대 영국 출신 젊은이가 무언가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찾아 제3세계를 찾았다가 만난 마젤란 펭귄과의 스토리는 과연 책으로 엮어낼 만한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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