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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의 삶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평점 :

시리아 난민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전쟁, 내전 그리고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난 이들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리비아에서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난민들이 위험천만한 지중해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난민들의 주 목적지는 독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난민들을 환영할까? 천만의 말씀, 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작금의 상황은 1938년 11월 9일 그 악명높은 크리스탈나흐트(수정의 밤)로 국가사회주의 나치에게 가공할 탄압을 받게 된 유대인들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은 상황과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언제라도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이기주의와 무지, 정치적 무관심, 포스트팍티시(postfaktisch:사실에서 벗어난, 탈사실적인) 선전으로 무장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과정은 1930년대 나치의 부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 나는 두렵다. 우리는 과연 과거로부터 무슨 교훈을 배웠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7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1930년대 나치의 부상과 몰락을 지근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브룬힐데 폼젤의 <어느 독일인의 삶>이 주는 교훈은 명징하다. 다시금 야만이 득세하는 걸 그대로 용인할 것인가?
거의 한 세기를 살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브룬힐데 폼젤은 나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이자 뛰어난 능력의 속기사였다. 이 책은 그녀가 죽기 전인 2013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독일인의 삶> 촬영분을 문자로 옮긴 것이다. 폼젤의 아버지는 1차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베를린의 유복한 인테리어 업자였다. 프로이센식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은 폼젤은 복종과 성실함의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타자수로 직업전선에 나선 폼젤은 반복적으로 자신이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일 민족의 중흥을 약속하고 나선 친애하는 최고 지도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낮에는 유대인 상사의 밑에서 일하고, 밤에는 나치 당원의 회고록을 쓰는 일을 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폼젤은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그리고 1933년이 되었다. 바로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쟁취한 해 말이다. 바로 직전인 1932년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를 통해 알게 된 불프 블라이는 그녀가 제국 방송국에 취업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 이제 마침내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탄 폼젤의 화려한 시절이 시작된다. 비록 취업을 위한 방편이긴 했지만, 나치당에도 가입했다.
본인은 히틀러나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괴벨스의 계몽과 선전이 광란극이나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패전으로 엄청난 자괴감과 대공황으로 비롯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대규모 실업문제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거에 해결해준 최고 지도자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부역한 것도 사실이 아니던가. 2차세계대전 발발로 제3제국의 짧은 영광의 시대가 왔다고 착각했지만, 스탈린그라드에서의 괴멸적인 패배와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이 일상화되면서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는 폼젤. 하지만 전쟁과 상관 없이 그녀는 제국 선전부로 자리를 옮겨 더 나은 월급과 대우를 받게 된다. 자신이 선택받은 인재라는 자부심과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배급과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건 분명 부역자의 특권이 아니었을까. 칼럼니스트였던 유대인 친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 친구는 결국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폼젤의 프로이센식 복종과 성실은 소련군에게 제3제국의 심장인 베를린이 함락될 때까지 계속됐다. 가족이 피신했던 포츠담으로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폼젤은 친애하는 최고 지도자를 배신하지 않았다. 34살이나 된 여성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했다는 말은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존경해 마지 않던 선전선동의 대가 괴벨스 일가는 집단자살하고, 총통마저 벙커에서 최후를 맞은 뒤 진격해온 소련군에게 폼젤은 전쟁포로로 사로잡힌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처형당한 부헨발트 수용소로 이송되는데, 한 때 죽음의 샤워실로 불렸던 곳에서 샤워를 했다는 전언은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 가장 쇼킹한 장면이었다.

결국 브룬힐데 폼젤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회개하지 않았다. 비록 간간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후에 알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전쟁 중에 선전상의 비서이자 속기사로 수많은 정보들을 다룬 그녀가 과연 백장미단 사건이나 히틀러 암살사건 그리고 잔혹한 홀로코스트에 대해 몰랐다는 진술을 믿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생존을 위해 제국에 부역한 부역자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만약 있다면 독일 민족 전체가 뒤집어 써야 한다는 논리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다.
후기를 다룬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인 토레 한젠은 깨인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현재 유럽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난민정서의 유래에 대해 집요하게 강조한다. 독일 대안당(AfD)가 결국 지난 총선에서 독일의회에 진출한 점,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거의 극우세력이 집권할 뻔한 위기, 브렉시트, 터키의 술탄이라 불리는 에르도안의 집권 등 다양한 이슈들이 겹치면서 난민 문제는 더 이상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다. 인종주의자 히틀러는 1930년대 유대인을 국가의 적으로 상정하면서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집권하는데 성공했다. 토레 한젠은 유럽과 미국의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 난민이야말로 현대판 유대인과 같은 존재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한젠은 우리에게 절대로 브룬힐데 폼젤과 같은 이기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지난 9년 동안 어리석은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가 역진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가. 정의와 연대 대신 자신의 안위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던 과거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