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떠난다
장 에슈노즈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오래 전에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퀘벡 여행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의 꿈 중의 하나는 개썰매를 타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실행에 옮기진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육중한 몸을 개들이 끄는 썰매에 올려 달리는 건 아무래도 학대가 아닐까 싶었다. 고작 기념사진 하나 찍자고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건 아무래도 아니었지 싶다. 소설 <나는 떠난다>의 주인공이 북극의 빙원을 누비는 장면에서 문득 옛 생각이 나서 끼적여 보았다.
에밀 자토펙의 일대기를 그린 <달리기>로 미니멀리스트 작가 장 에슈노즈를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에슈노즈 작가가 무려 공쿠르상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1980년대를 주름 잡았던 작가라고. 나는 그를 통해 과거를 여행한 셈이었던가 그럼. 에슈노즈 작가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 준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떠난다>를 빌려다 읽었다. 사서 읽고 싶었으나 절판된 책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새해의 두 번째 날, 50대 화랑 주인 펠릭스 페레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사랑과 전쟁을 치르던 아내 쉬잔을 곁을 영영 떠난다. 태생이 바람둥이인 페레는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런 남자로 보인다. 그도 한 때는 예술가였던가 본데, 이제는 타인이 만들어낸 예술품을 거래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왜 그렇게 창조라는 행위에 몰두하는 걸까. 그렇게 열정을 쏟은 창조행위가 돈으로 연결이 되면 좋겠지만 대다수의 창작가들이 돈벌이와는 별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창조 행위는 높이 평가하지만, 배고픈 삶은 동경하지 않는 모순적 감정이 불쑥 튀어 나왔다.
어쨌든 프랑스 화랑 경기도 썩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복잡한 회계 문제, 신진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서 시장에 소개해야 하는 역할, 자신이 관리하는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준비, 에이전트 수수료를 지나치게 많이 가져가는 게 아니냐며 불평을 쏟아내는 예술가들과 그야말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스트레스는 페레에게 일상이 된지 오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존재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소설 <나는 떠난다>에는 정말 많은 캐릭터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주인공 페레를 필두로 해서, 그가 이런저런 관계를 맺는 여성들에, 심장 문제로 그에게 건강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끊이지 않고 해대는 전문의 펠드만, 화랑의 정보원으로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들라에와 그의 애인 빅투아르, 나중에 페레가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쉬펭 형사 등등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과 퇴장을 거듭한다. 이렇게 많은 캐릭터들이 과연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가의 스타일과는 좀 차이가 있는 걸.
프랑스 파리가 페레가 활동하는 하나의 공간이라면, 다른 장소는 북극이다. 거지발싸개 같은 복장을 하고 다니는 들라에가 1950년대 북극의 모처에서 희귀 골동품을 잔뜩 싣고 난파한 이른바 보물선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우리의 주인공 페레는 위기에 몰린 사업의 타개책으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모험을 찾아 북극행에 나섰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얼마 전에 읽은 이언 매큐언의 <솔라>와 이언 맥과이어의 <얼어붙은 바다>가 연상됐다. 북극탐험이라는 남들은 평생 해볼 수 없는 그런 모험에 나서게 된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페레는 생각보다 쉽게 보물선을 찾는데 성공했다. 보물선 하니 최근에 언론매체를 통해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는 러시아 보물선 돈스코이 호에 대한 스캔들 생각이 나는구나. 후자가 뜬구름을 쫓는 이들의 허상이었다면, 전자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문제는 페레가 어렵사리 구해온 희귀 골동품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바움가르트너라는 사내가 있었다는 점이다. 심심한 로맨스 타령으로 시작된 소설은 이 지점을 통과하면서 스릴 넘치는 탐정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다. 왜 페레는 당장 보험에 들라는 감정평가사의 의견을 듣지 않았던 걸까.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자신의 전리품을 모두 털린 뒤에야 후회하는 모습에서 왠지 꼬소하다는 느낌이 다 들었다.
생각보다 용의주도한 바움가르트너는 자신의 사주를 받아 정작 절도에 나선 플레탕을 가볍게 제압하고, 남프랑스를 주유하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아니 그 자신만 그렇게 생각했는 지도 모르겠다. 이미 국제적 공조로 바움가르트너는 추격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의 생 세바스티안에서 자신을 쫓아온 원래 전리품의 주인 페레와 바움가르트너는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자, 과연 바움가르트너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페레는 잃어버린 자신의 전리품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동안 접한 다른 공쿠르 수상작과 달리 장 에슈노즈의 <나는 떠난다>는 상대적으로 읽기 쉽고 흥미진진한 스타일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 책을 공쿠르상을 받을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너무 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파격적일 수도 있는 그런 스타일들이 지금은 그냥 심드렁한 이야기란 말인가. 가장이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떠나는 설정도 그렇지 않은가. 하긴 페레 씨가 무작정 떠난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의 프랑스 파리를 떠난 이유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떠난 것이었다.
차라리 여자라면 그야말로 사족을 못 쓰는 페레 씨가 어찌하여 자신에게 굴러 들어온 행운의 여신으로 보이는 엘렌을 그대로 놓아 버렸는지 모르겠다. 같은 해 2월 의학적 사망에 가까운 심장폐색을 경험한 탓일까. 자신에게 그렇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매력적인 엘렌에게 끌리지 못했다는 점은 페레 씨의 바람기가 마침내 잡혔다고 봐도 무방할 걸까. 꼬박 1년이 걸린 펠릭스 페레 씨(이름이 무려 ‘행운아’라니 대단하다)의 모험은 흥미진진했다. 그나저나 여전히 <나는 떠난다>가 공쿠르상을 받을 정도의 수작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