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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요즘 도서관을 애용하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집에 포화상태가 책들을 감당할 수도 없게 된 게 가장 큰 이유겠지. 그래도 어쩌랴 계속해서 쏟아지는 신간들을 외면할 수 없으니. 그리하야 도서관에 한 달에 두 권씩 신청할 수 있는 희망도서 신청도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이기호 작가의 신간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소설집을 빌렸고 주말 동안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표제작에서 교회오빠 강민호가 무슨 죽을 죄라도 지었나 하는 일종의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아싸라한 정보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냥 심심한 평양냉면 같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관광지에서 모스크를 찾았다가 독실한 무슬림 신자로 변신해서 히잡을 쓰고 출근하고, 회식자리의 단골 메뉴인 삼겹살을 삼가는 선생님이 된 이야기. 진라면이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유일한 라면이라는 것도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됐다. 나중에라도 진라면을 할랄 푸드라고 소개해 주어야 하나.
나는 오히려 다른 이야기에 더 끌렸다. 항상 작가와 소설 속의 페르소나는 분리해서 읽어야 한다는 노래를 들었건만 난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분명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자신의 책을 중고나라에 올려서 덤으로 팔아먹겠다는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분명하다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박형서는 진짜 그 소설 작가 박형서 씨가 맞는가? 왜 누구의 책은 적게라도 돈을 받고 팔고, 누구의 책은 여러권 사면 덤으로 끼어 주는 책이 되었단 말인가? 초기 단계의 윤리적 이슈들이 스물스물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작전에 투입될 뻔한 크레인 기사가 나오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의 신산한 삶에 대한 스케치보다 열몇 시간을 운전하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취재하겠다는 소설가에게 돼지숯불구이와 떡갈비 그리고 비냉까지 얻어먹고는 자기 허락 없이 녹취를 했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란. 어느 것 하나 내가 가진 도덕률에 반하는 삶을 살지 않겠노라는 결심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야 할 것 같다. 과적 차량으로 지목되어 한강 다리를 건너지 못한 원인제공자 크레인 기사 아저씨 때문에 벌어지지 않아도 될 용산참사가 벌어졌다는 상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오래전 예의 뉴스를 출근길에서 듣고는 잠시 멍했던 기억이 난다. 망루에 올라 생존을 외칠 뻔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일 수도 있었다는 그런 동조감 때문이었을까.
이중 지급된 빚 700만원 받아내기 위해 소소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결국 마을 사람들은 선의로 십시일반해서 그 남자가 받아내고자 그렇게 노력하던 돈을 갹출해서 마련하기에 이른다. 그가 그 돈을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절대 아닐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그를 위해서 어려운 가운데 돈을 만들어냈지만, 남자가 받은 모욕과 수치스러운 감정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그런 윤리적 문제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사실 어떤 결론이 나도 모두에게 만족스럽진 않았을 것 같다. 지방대학 강사님이 대표로 나서서 멱살잡이를 하는 장면은 다수 착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게 아니었을까.
누가 착하다는 타인에 대한 평가가 김숙희 씨만큼 적용되는 케이스는 또 어떨까. 동정과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은 결혼으로 해결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한다는 상황 설정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어린 아내의 고백에 무심코 막힌 하수구 구멍을 뚫어 구정물이 솟아 오르는 장면이 감정해소로 단계로 전환되는가 하면 당연히 그것도 아니었다. 피곤하니 다음에 이야기하자? 아내가 원했던 남자의 리액션은 아마도 그게 아니었겠지.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하면서 악다구니를 하며 쌓인 감정, 수치스럽다는 그런 감정을 거하게 쏟아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또 아무 것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여자의 고백은 공범에 가까웠던 남자를 14년 전의 해당 사건에서 당당하게 소환해낸다. 그의 이름은 정재민이었지 아마. 제주도 가족여행에서 고기와 새우를 굽다가 느닷없이 서울의 경찰서로 임의동행해온 남자는 이제는 다 잊고 싶은 과거사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다. 자기가 현재 가진 것을 하나도 잃지 않으면서, 여자가 고백한 것으로부터 최대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처연하기만 하다. 역시 이기호 작가가 단계마다 그런 감정들을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할 것만 같다.
다시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는 듯한 아내의 연줄에서 딸려 나온 한정희 이야기로 소설집은 대망의 마무리르 짓는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지은 채무는 언젠가 되갚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재경 오빠의 딸 정희를 맡아 기르게 된 소설가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 어느날 그에게 학폭위에 참가하라는 통지가 날아오면서, 관계는 위기로 치닫는다. 다른 가해자들의 학부모가 고용한 학폭 전문 변호사의 눈부신 활약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되지만, 소설가는 정희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물론 원인제공자는 어디까지나 정희였다), 여느 때처럼 후회는 차곡차곡 적립된다.
그런데 진짜 내가 혹했던 이야기는 소설가가 눈길에서 낸 교통사고를 처리하게 되는 후기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다. 피해자의 부상이 전치 10주가 넘어가면서 합의금이 문제가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거론되는 와중에 나의 아이덴티티나 그동안 내가 고수해왔던 소중한 윤리 혹은 도덕률 따위들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단박에 나는 배우가 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정말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모름지기 소설가, 지식인 그리고 학자라면 이러이러한 삶의 준칙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윤리의식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확실히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재밌는 소설이다. 소재 선정이나 수치스러운 삶을 계속 감내해내야 하는 우리네 삶에 대한 타전 역시 좋았다. 다만 무언가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부디 다음에는 더 쎈 걸로 한 방 부탁해요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