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앞의 한 사람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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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열심히 활동하던 온라인 카페 정모에 오소희 작가가 참석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냥 작가라는 정보 정도. 나중에 아이를 데리고 여행길에 나선 대단한 작가라는 설명을 들었고, 책도 몇 권 수중에 넣었던 것 같은데 정작 책을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십년 정도가 흘러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게 됐다. 마침 독서 슬럼프에 빠져 헤매던 차에 이틀만에 가뿐하게 읽고 슬럼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아, 이 책의 원제는 <사랑바보>였다고 하는데 그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7년 전에 나온 책의 재개정판이다.

 

여행은 우리가 사는 곳과는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게 기본이다. 어쩌면 남들이 가보지 않은 비경을 찾는 것도, 파리의 에펠탑처럼 모든 이가 가보고 싶어하는 곳을 찾는 일종의 순례라고 해야 할까. 하긴 나도 처음에 에펠탑을 보러 갔을 때 심장이 다 쿵쾅거리더라. 그보다 더 흥미로운 건 여행길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사실 시간부족으로 수박겉핡기식 여행을 하는 나같은 배낭여행족에게 지긋하게 한 곳에 머물면서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삶의 이모저모를 살펴 보는 건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간적 여유를 차치하고라도 언어의 장벽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작가가 페루 여행길에 만난 목수와 석공 아저씨와 더불어 스페인어 사전을 더듬으며 나눈 대화는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물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감정이 전달될 수는 있겠지만 미묘한 소통은 어쩔 것인가.

 

작가의 라이프 스타일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왠지 작가가 여행길에서 수집한 타인과의 대화들이,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작가의 글쓰기를 위한 질료가 되는 게 아닐까하는 그런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출판하겠노라는 허락을 구했을까하고 말이다. 에세이집의 곳곳에서 보이는 감정과잉도 좀 그랬다.

 

베테랑 여행가답게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냥 넘어갈 법한 이야기도 멋지게 뽑아내는 실력은 역시나 탁월했다. 에티오피아와 발리에서 만난 제3세계 소녀들에 대한 단상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가 세계의 곳곳에서 만난 그리고 체험한 뒤에 들려주는 사랑타령은 부러웠다. 짧은 만남 긴 여운, 뭐 삶이라는 게 그런게 아니겠는가. 이제는 사랑을 주고 싶어도 거부하는 틴에이저가 되어 버린 제이비에 대한 이야기도 울림 있게 다가 오더라. 수년을 연애하고 20년에 가까운 결혼생활에서 얻은 삶의 지혜 나눔도 멋졌다. 그렇지 나 자신도 변하기 어려운 데, 타인을 내 방식대로 변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려면 우선 계획이 필요한데, 아무리 최소한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며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한 때는 그런 계획들을 세우는 게 즐거움이었지만 이젠 다 귀찮아져 버렸다. 삶에 지치다 보니 그런 힘들었지만 새로운 것을 만남에 대한 흥분이 주는 즐거움보다,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런 무위의 즐거움이 절실해졌다. 나의 마지막 장거리여행이었던 십년 전의 유럽여행 같은 기회는 이제 당분간 주어지지 않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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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5-08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외여행을 안 가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가든 말든 지들이 뭔 상관인지.. 저는 혼자서 가는 여행이 편해요.

레삭매냐 2018-05-08 13:43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려서부터 혼자 여행하다 보니 습관
이 되서 그런지 나홀로 여행이 편하더군요.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무계획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요 ㅋㅋ

2018-05-08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8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