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쉰번 째 서평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김형경

 

 

 

 

사랑에게 묻는다.

 

 

 

거의 한 달을 들고 다니던 책을 오늘에서야 내려놓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을까 싶으면서도, 오랜 시간과 많은 생각과 그 생각들의 조화가 필요했던 책이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김형경. 나는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번인가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당시에 살던 집을 내놓고, 세계일주를 할 생각이라 했던 그 말 하나는 아직 기억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무사히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국했는지, 물론 그랬으니 새로운 책도 내고, 이렇게 다시 한권의 책으로 내가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까닭이 아닌가.

 

그녀의 처녀시집 ‘모든 절망은 다르다’는 한 시절 늘 가방 속에서 동고동락하던 귀한 친구였다. 김형경의 시집에서 머물다가 기형도와 허수경의 시집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사이 전혜린의 사상과 세계관에 푹 빠져 있곤 했다.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는 <성에>로 출간되었던 작품을 다시 새로운 제목으로 출간한 경우다. 이 작품이 <성에>라는 제목을 등에 지고 세간에 나왔을 때 나는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때문에 <성에>라는 제목이었을 때와, 지금의<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다가왔을 때 차이점이 있다면 그 점을 간파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다만 이상하게도 김형경 그녀가 다시 새로 지어준 이름인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를 중얼거리다보면 언제나 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걸 깨닫는다.

 

 

기형도 시인의 시 <빈집>이 생각이 나더란 말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무슨 연유에서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 했던 기형도의 시와,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가 동시에 머릿속에서 맴을 도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은 어쩌면 김형경의 이번 소설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도와 같은 선상에서 해석할만한 이야기일 듯싶다.

 

 

한 편의 소설이 있다. 전체적인 플롯과 같은 형식적인 면을 떠나서 들여다보더라도 이 작품은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개개인의 수용적인 면도 과히 가볍지 않아 보인다. 사랑와 열망, 인간의 이중적이면서도 가장 순수하며 숭고한 감정인 사랑과 애정을 구체화함에 있어 작가는 끝을 알 수 없이 깊고 어두운 나락으로 작가 자신과 함께 이 글을 읽는 이들 모두를 함께 떨어뜨린다. 떨어지는 순간은 찰나겠으나, 그 추락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스스로에게, 혹은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각자의 정해진 길을 외면하고 서로의 눈앞에 있는 이성에게 이끌려 길을 떠나는 두 사람. 세종과 연희라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은 두 인물의 이야기와 함께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묘한 동거와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동시에 보여줌으로 해서 인간의 가장 내밀한 곳에 잠자고 있는 본성과 애욕을 풀어낸다.

소설은 바람, 청설모, 박새, 참나무와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대자연의 시점에서 은밀하면서도 기괴하기까지 한 한명의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를 묘사한다. 자연의 생명체를 소재로 가져와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상황을 자연의 눈으로 바라보는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어쩌면 작가의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 시선이 따라와야 하는데 작가는 그러한 요소를 자연에서 가져왔던 것 같다.

다분히 자연의 주인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인간들의 사랑과 애정과 모든 복잡한 심상 따위는 그저 생존에 의한, 생존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이 사실을 작가는 바람과 참나무 박새와 청솔모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그렇게 본다면 인간이 느끼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인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의 감정적 요소로 그 가치를 살짝 하락할 수도 있을 법 하다.

 

작가가 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랑이란... 참...오묘한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이란 참 이율배반적인 불온한 것이라고 말하려 했던 것일까.

김형경의 소설을 접하면서 나는 사랑에 대해, 그 사랑을 만들어가고, 추구해가는 인간들의 내면에 대한 잡다한 생각을 오래도록 놓을 수가 없었다.

 

사랑이란 무거운 것인 동시에 두려운 것이 아닐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인간을 어떤 나락으로 내몰기도 하는 양극단의 힘을 지닌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의 실체가 바로 사랑이라는 느낌이자 감흥이다.

문득 이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랑과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랑 사이에는 골이 존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골을 얼마나 잘 덮어가는 가에 따라, 인간의 사랑은, 아니 모든 생명체의 이성, 즉 다른 성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조절은 환희인 동시에 상처일 수도 있을 법하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 그것을 생각하는 일. 그것을 하느라고, 그것을 다시 곱씹어 생각하느라고 내가 김형경의 소설을 쉽게 놓지 못하는가. 다시 묻는다. 사랑에게. 사랑이 무엇인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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