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7, 10세 공부두뇌를 키우는 결정적 순간
하야시 나리유키 지음, 김정연 옮김 / 테이크 원(Take One)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백 마흔 여덟 번째 서평

3.7.10세 공부두뇌를 키우는 결정적 순간-하야시 나리유키

 

교감이 중요하다

 

 

  연령대별로 구분해서 뇌를 키운다는 이론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이 일본에서 40만부 판매 실적을 올리고 육아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는 광고가 한쪽 귀퉁이에서 반짝인다.

  뇌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게 없다. 의학적으로 뇌의 해부학적 구조나 그 기능에 대해서는 한두 가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다 일뿐이다. 사실 생물학 시간도 해부학 시간도 서른 여덟살 아줌마인 내게는 별천지 같은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렇게 복잡하고 신비스런 인체조직인 뇌의 기능과 두뇌 향상의 관계를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하야시 나리유키이다.

 

 

  책을 읽고 난 후의 총체적인 느낌은 조금은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존의 출간된 육아서와 큰 차이점을 획득하지 못한 듯 하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이 교육과 양육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그 접근법인데 바로 뇌와의 연계성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육아와 관련된 각종 다양한 서적은 이미 이러한 새로운 접근법에 의한 해석으로 방향을 트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독자들은 기존에 나와 있던 식상한 육아서의 해석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짬을 얻을 수 있는 반면에 작가는 독자들에게 신선한 이론과 개념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좋은 게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솔직히 큰 구미를 당기지는 못하는 듯하다. 초반에 실린 뇌구조와 발달측면에서 실린 내용은 저자 하야시 나리유키의 독특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분별력 있는 과학계라든지, 의학계 혹은 아동과 관계된 기관에서 인정받은 신빙성이 있는 이론이기 보다는, 개인적인 학설로 아직까지는 소수의 영향력 안에서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작가 하야시 나리유시의 이론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름대로 뇌의 구조에 맞게 자신의 이론을 접목시켜 나가려 하는 노력이 보인다. 그런데 딴은 어떤지 그의 이론은 그만의 세계 안에서만 생명력을 갖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론이 갖는 기본적인 체계를 풀어본다면 의외로 간단하다. 뇌의 기능은 본능과 마음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상태이며, 부정적인 아닌 긍정적 마음 상태의 유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긍정적 마음상태는 긍정적인 동시에 적극적인 욕구를 가져오고, 이러한 긍정적인 동기부여와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행동과 결과물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져온다는 이야기이다.

결론은 아동이 늘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상황에 맞게 저자가 안내하고 있는 질의 응답문이 같이 실려있긴 하지만, 그 범주가 다소 산만한 감이 느껴진다. 종합적으로는 아동에 대한 질의는 분명하다. 그러나 아동의 뇌와 관련해서 학업 측면이라기보다는, 아동의 전반적인 생활에 관한 질의와 답 차원의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외. 연령대별로 부모의 역할, 어떤 방식으로 아동을 이끌어줄 것인지, 엄마와 아버지의 역할분담, 또래와의 관계 등 등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싣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대부분 교과서적인 대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교과서적인 대답이란 그만큼 보편적이라는 뜻과 같다. 저자만의 독특한 사고가 담긴 해답을 기대했다면 기우였을까.

0-3세 아이의뇌를 단련시키는 10가지 포인트에서 ‘진지하게 시합한다’라는 소제목으로 작가는 손위 형제간의 경쟁과 결과를 두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나도록 조건을 조정하는 것이 부모의 능력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 그 속에서 각자 노력하게 해주세요.”

<p80>

 

 

  책 한권을 통해 저자의 이야기에 대부분 수긍하고 있지만, 조건을 조정한다는 작가의 말에는 동조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일종의 임의적인 동시에 비도덕적 환경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진지하게 시합한다는 명제 앞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면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고도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부분이다. 저자 역시 자신의 이론에서 “나쁜 습관 중 한가지로 ‘자신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한다’<p114>는 것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그렇다고 볼 때 상황을 조정하는 것은 그런 습관을 미루어 묵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최선을 다해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속에서 노력하게 배려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길 수 있는 환경 즉 경쟁사회에서만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경쟁이 아닌 사회에서는 자아성취감은 얻기 어려운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손위 형과 했던 시합에서 졌다면, 아이가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잘 수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차이가 크다면 큰대로 적다면 적은대로... 그만큼 아이에게 채워줄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굳이 조건을 조정하면서까지 아이에게 현실과는 다른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을까.

 

  굳이 연령대 구별을 하지 않더라도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다. 뇌를 발달시켜 성적으로 올리는 목적이라든지, 인성을 위한 차원에서 부모에게 필요로 하는 노력 따위조차도 모든 원인과 결과가 부모와 아동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것이기에 관계유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관계란 당연히 말 뿐인 관계가 아닌 친근함과 친밀함, 돈독함과 애정이 넘치는 관계를 말 할 것이다.

  주제넘게 한마디 해보자. 저자의 말을 빌려온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가?”

 

 

  그에 대한 내 대답은 ‘하야시의 뇌 이론과 연령의 구별의 특성’과는 무관하지만, 어쨌든 정리를 해보면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싶다. 끊임없이 사랑하며, 부모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해주고, 지치지 말고 아이 곁에서 늘 말 걸어주는 동시에, 내 아이를 또 다시 바라봐 주는 것이 기본이지 않을까 싶은거다. 나와 내 아이 사이의 교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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