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27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쉰 세 번째 서평.

편지1. 조르주 상드




온전한 자유, 굴레를 버리다




지만지 클래식에서 출간된 조르주 상드의 기획물이다. 책은 조르주 상드라는 한 인물 연구에 있어 평생을 바쳤던 조르주 뤼뱅에 의해 작성되었던 것을 번역가 이재희의 노력에 의해 고운 한글로 번역되어 새롭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중이다.




조르주 상드. 그녀의 호적상의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뤼실’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책 속에서 조르주 상드라는 이름보다는 오로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조르주 상드라는 인물을 두고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그 안에서 무심하게 작용하고 있는 짖궂은 생각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호기심 따위가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도 자연스런 이치가 아닐까.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조르주 상드가 비단 사람들의 가벼운 입술 언저리를 오르내리는 가십거리의 대상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존재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지루하게 또는 애매하게 그대로 계속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라는 의구심에서부터 이미 내가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조르주 상드 그녀의 이미지는 출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 맨 앞머리에 등장하는 해설 부분과 옮긴이와의 인터뷰 내용을 실은 의도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여진다. 문학사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테면 좁아진 시야를 크고 넓게 확대해 다시 태어나는 조르주 상드를 만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수순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책은 편지글의 모음이라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실존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보태거나 삭제 없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태어나서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 결혼과 양육이라는 평범한 여인의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녀 스스로가 지녔던  생각과 이념 그리고 문학적 향취까지 많은 부분을 접할 수 있는 기회임에는 분명하다.




조르주 상드는 한없이 여성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거침없는 남성적 면모를 지닌 이중적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속에서 절친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그녀는 아이처럼, 때로는 감수성에 흠뻑 젖어든 순수한 사춘기 소녀처럼 봄날 포근포근 감겨드는 아지랑이같이 부드럽기만 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의지를 표출하며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과 무엇보다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이성적인 동시에 이지적인 면모 속에 감춰진 이면의 모습은, 시대가 요구해온 여성의 굴레를 후련하게 벗어던지며 단 한번도 되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나아가는 당찬 기백이 느껴지는 이미지를 보이기도 한다.




‘고백편지’는 외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그녀가 변명처럼 남편의 사랑을 다시 쟁취하려 부단히 노력했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도 그녀 특유의 이중적인 모습이 등장하곤 한다. 기타 다른 편지 내용에 비해 비교될 만큼 장문의 편지인 이 ‘고백편지’ 속에서 그녀는 아주 솔직하면서도 대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자신의 변호를 위해서는 강직하며 작의적일 정도의 논리적인 주장을 펴기도 한다. 

통속적으로 보면 가슴에 주홍글씨라도 새겨야 할 판인데, 어쩌면 이 여인 오로르, 조르주 상드는 이다지도 할말이 많고 주장이 명확하고 논리적인가. 가련한 여인의 모습 뒤에는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당신이 알아야 해요’ 식의 치명적인 칼끝을 상대에게 돌리고 있는 것을 보인다. 그 외의 서신은 사뭇 진지하고 섬세하며 부드럽다. 




처음 책을 접했던 의도라고 할까. 목적은 조르주 상드의 문학적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책과 함께 하는 동안 그 목적을 어느정도 이뤘다고 믿고 싶어졌다. 물론 조르주 상드의 나머지 책이 남아있기에, 6권 마지막까지 어떤 독특한 마력이나 앞서 이야기한 ‘고백 편지’ 와 같은 끈끈한 끌림이 또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가지 힘들게 했던 것은 서간문이 갖는 특징이 아닐까 싶다. 잔잔한 미풍 내지는 가벼운 포말처럼 비슷비슷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까. 때로는 그 의미에 깊이 매료 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무언가 격정적인 폭풍우나 번개가 치는동시에 책 속에서부터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듣고 싶어졌었다면 개인적인 망상일지 모른다.







[덧없이 짧은 인생에 대해 숙고하면서 체념하고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위안해야 해.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너희들은 내 삶에 한없는 기쁨을 뿌려주고 있고, 나를 삶에 애착하게 한단다]83P




[그러면서도 그런 씁쓸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감추었어요. 난 모든 일이 권태로웠고, 혼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오싹 끼쳤어요.




남편이 알아주지도 않을뿐더러 내 행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재능과 지식을 얻느라고 내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이 못내 아쉬웠어요]191P




[비록 오빠가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그러기에 상대방을 일깨워 주고, 보호해 줘야 할 위치이지만, 불관용과 냉혹함만으로는 빗나간 사람을 이끌 수 없다는 말씀을 감히 드립니다. 그 빗나간 사람을 제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서는 온화함과 자상함이 더 효과적이고, 정작 정도를 벗어난 적이 없는 애매한 사람에게 상처나 슬픔을 안겨주지 않는 방법이죠] 234P

 




 자유의지. 굳어졌기에 갇혀버린 정신과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자유를 위해 일상의 평온함을 뒤로하고, 세상의 문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나왔던 여인 오로르, 조르주 상드. 아직도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는 조금 더 앉아서 그녀와 같이 생각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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