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묘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읽어가기가 딴은 쉽지 않기에 그 어려움에 더 빛이 나는 매력을 지닌 책일지도 모른다. 이번 책 읽기는 낯설기만 한 작가 페터 한트케를 알게 해준 책인 동시에, 상승과 하강이 난무하는 난해함의 한 가운데로 깊이 빠져들었던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언뜻 희미한 기억을 되돌리자면 언젠가 이 책을 읽고 썼던 누군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때 나는 책에 대해 새로운 호감을 품었던가 보다. 그러니 책을 구입하고 오래 묵혀 읽었던 게 아닐까.

 


처음 생각하기에는 어느 평범한 듯, 혹은 평범하지 않은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가 그녀에게, 아니 그녀가 그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을 갖춘 고백의 글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왜 그 때 그 순간 이 책을 읽고 싶어졌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어쨌든 미루고 있던 책을 읽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은 무척이나 건조함과 함께 드는 난해함이었다.

 


보통은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길 때 두 가지 방향성을 생각하곤 한다. 어느정도의 분석과 함께 생각을 적거나, 단순한 감상 위주로 글을 쓰거나 식의 두 가지 방안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작품이 주는 느낌이다. 이 느낌에 따라 두 가지 중에 한 방향을 잡아가곤 하는데 페터 한트게의 이번 소설은 사실 분석 위주의 글을 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차선의 길을 선택한다. 아니다. 슬슬 뒷걸음으로 도망가고 있으면서도 나는 또 다시 책을 분석하려 들 게 뻔하다. 어쩌면 좋을까. 긴 여정의 끝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여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한 기분이 든다.

책에는 남자 한명과 여자 둘, 그리고 어린 소녀, 그 외 주변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 여행을 떠나는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며 증오하는 애증의 복잡한 감정을 지닌 아내(유디트). 그리고 남자가 회상하는 과거의 삶 어느 순간에 인연이 닿았던 여인(클레어)과 그녀의 딸을 현재에 만나 함께 하는 순간들. 오로지 혼자가 되어 외로움 속에서 분연히 자신의 존재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들. 마지막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미워하며 증오하면서도, 화해 속에서 새로운 헤어짐을 준비하는 관계인 아내와의 만남이 이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로 따지면 마치 로드무비 같은 형식이다. 인물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호텔과 호텔을 거치며 주인공 남자의 시선은 자주 환상과 과거 속으로 옮겨간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또 다시 꿈을 꾸듯 낯선 생각 속에 몸을 숨긴다.

작품의 이해도에서 난해하다, 라는 말을 쓰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시간의 흐름이 아닌 사유의 흐름 내지는 의식의 흐름으로 그려가는 순간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바로 그 어려움이 존재하는 듯하다.

 


사실 인물이 이야기하는 순간순간이 과거인지, 환상인지, 회상인지, 현재인지. 아니면 인물이 이야기하는 책의 이야기인지 매번 잘 생각하며 읽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작가가 이러한 복잡한 요소들을 작품 안에 배치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따지고보면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불안한 요소들을 지녔다고 봐야한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남자를 끝까지 쫒아가 해하려했던 아내 유디트나, 홀로 아이를 키우며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또다른 여성 클레어. 그리고 그녀의 딸 모두 불안한 심리와 정신상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를 또 한번 곱씹어봐야 했던 순간들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은 아마도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 사랑의 감정까지 삭제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의 감정. 또는 세상 속에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이중적인 사유 속에서 되려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는 인물의 각성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지주의라는 표현을 여기에 써도 될지 모르겠다. 또 이 표현이 합당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자꾸만 그 주지주의라는 표현이 생각나는 건 무슨 까닭일까. 딱 한 가지 답답하게 다가왔던 부분이 있는데,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존 포드 감독과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때 나는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기가 불현듯 불편해졌다고 해야할까. 지루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훅 치고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었던가보다.

 

각설하고 이런 저런 생각들은 그저 그런 개인의 취향이고 책 읽기에 있어 이따금 나를 괴롭히는 고약한 변덕일 뿐이다.

 

작가가 새롭게 추구하고자했던 문학의 (개념,주의,양식?) 따위는 거론하지 않으려한다. 그런 요소를 아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색안경을 쓰게 되는 요소로 작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도했던 문학의 새로운 이론과 창작기법에 대한 정보 이해는 가장 마지막에 접해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