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커버 에디션)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비가 오는 날들이 이어진다. 유난히도 힘들게 지나가는 장마다. 비척이면서도 허우적거리는 이 공기가 너무나 무겁다. 시간 또한 이렇게 지루하게 질척이며 막 지나가는 중인가 싶다. 한동안 책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소소하게나마 나름대로 써오던 것들의 일시적 중단을 외쳤던 시일이 생각보다 좀 길어진 것 같기도 하다.

왜 길어졌던 것일까. 후후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을 선택한 것은 행운이었을까. 열권의 책 중에서 제일 먼저 이 책을 집어든 까닭은 단지 몰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책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기록을 남기려한다.

가볍게 가자. 약속된 글이어야 하는 부담도 없으니 마음 편히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오늘 종일 커다란 덩치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완벽한 타인들은 무슨 의미일까. 완벽이란 말은 어떤 의미에서 쓰인 것일까를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책 속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이웃들은 전혀 완벽하지 않은 인물군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 무엇을 완벽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완벽이라니.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기준이 아닌가.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 완벽이라는 기준과 틀에 갇혀버린 사람들. 그렇게 이들은 때론 고개를 숙이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타인들’이라는 의미에서는 더더욱 완벽할 수밖에 없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휴식을 원했고, 상담을 원했으며, 치유를 원했던 사람들이었다. 건강휴양지 프로그램으로 통해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완벽한 타인이라는 관계에서 다시 완벽하게 친근한 서로의 이웃과 특별한 관계로 변모하게 된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 어느 로맨스 작가, 역시 과거 유명한 운동선수였지만 잊혀져가는 중년의 남자,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고 상처받은 가족, 복권에 당첨되고 벼락부자가 된 어린 부부,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실감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여인, 유년의 상처로 진정한 가정을 두려워하는 변호인. 그리고 이들에게 새로운 모습, 새로운 인식으로의 변화된 삶을 소개하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아들이 계속 질문을 했었다. 그 책이 재미있는가? 나는 쉽게 말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어떤 재미를 의미하는지를 생각했다. 유머러스한 재미를 말하는 거니? 아니면 심취할 정도의 흥미진진한 재미를 말하는 거니? 돌연 들이대는 내 질문에 아이는 멈칫 뒤로 물러났다. 그때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독히도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들의 힘겨운 삶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지나온 내 삶의 순간도 돌아봐야 하는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해준 것 같다. 아들은 이해하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속으로 또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까지. 어지간히 몰입했던 것일까.

 

이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했지만 헤어져야만 하고, 인생이란 늘 찬란하지 않으며, 상처와 슬픔 그리고 상실, 좌절과 우울, 나이들고 늙어감에서 오는 방황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낭패감 등. 다양하고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인물에 개성에 따라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원했던 엔딩 스토리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가치가 있으며 각각의 삶은 그 나름대로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듯싶다. 어려움 속(지하에 갇히게 된다)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전환점과 대면하게 되는 아홉 명의 이야기는, 어느 추리물에서 보았을 법한 잠깐의 시니컬한 전개와 함께 따뜻한 관계속의 이야기로 적잖은 울림을 만들어준다.

594페이지에 제법 두툼한 분량의 책이지만 속도감을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 까닭에 이제 다시 아들이 같은 질문을 해온다면, 나는 시간을 두지 않고 말해줄 생각이다. 재미있어. 너도 한번 읽어보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