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 현대 수학으로 마주하는 수학의 본질
아다치 노리오 지음, 이인호 옮김 / 프리렉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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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학기초론의 초보적인 사안들을 간명하게 소개하고 있는 교양서이다. 연산상의 필요에 따른 수 체계의 일관된 확장, 기하학과 수론의 형식화, 집합론과 기초논리를 통한 수 정의, 무한개념에 얽힌 문제와 괴델의 정리 등의 사안들을, 고등학생도 무리 없이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고 깔끔하게 설명해준다. 저자가 저술목적으로 강조하였듯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일상적이고 막연한 직관에서 벗어나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현대수학의 관점에서 수학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이나마 키울 수 있다. 읽는이에 따라서는 교양서 <치고는> 조금 딱딱하다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다르게 보자면 이는 잡다하거나 구태의연해서 핵심을 놓치게 만드는 여타 교양서들보다 깔끔하고 간명하다는 장점일 수도 있겠다. 가령, 올 늦봄 동일한 주제를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는 유지니아 쳉, "무한을 넘어서"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보다 분량이 적고 덜 다채로워 조금 건조하지만 그런만큼 좀 더 <학술적인 교양서>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교 학부 이상의 전문적인 수학교육을 받은 게 아닌 바에야 일반적인 독자층이라면 구매소장하여 여러 번 재독하거나 필요할 적마다 활용할 가치가 있겠다. (혹여 오프라인 중고매장에서 발견한다면 주저말고 구매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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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후기현대의 철학적 논쟁
한정선 외 / 서광사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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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된 리뷰 한 편이 책의 성격을 잘 요약해주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루는 여타 많은 책들이 이론적 경향이나 개별 이론가들의 색다른 사유방식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대체로 미학적 문학적 예술사적 탈형이상학적 측면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이 책은 다소 차분하고 정돈된 자세로 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및 그 학문적 배경사를 간추려 기술(및 일부 지점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철학적 측면에서는 2장에서 리오따르와 하버마스 각각의 입장을 중심으로 해당 주제와 얽힌 쟁점을 간략히 살펴보고, 3장에서는 '현대' 개념에 대한 논의가 형성 및 변천해온 과정과 그것이 함축하는 바에 대한 20세기의 비판이 배태되어온 궤적을 신속하면서도 폭넓은 호흡으로 추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 개념이 논의되어온 역사적 과정과 배경을 살펴보는 3장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분량이 많지 않고 서술이 어렵지 않은 편이어서, 근현대 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춘 독자라면 평이하게 읽어가면서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증 논쟁에 대한 역사적 시각을 키워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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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미술(대) - 미술 이론 -
|저자 노버트 린튼 | 역자 윤난지 | 출판사 예경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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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하고 교과서적인 현대미술사 서적이다. 아수파와 입체파 등 20세기 초의 모더니즘부터 1970년대까지의 미술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그 방식이 여타 대중서들처럼 피상적이거나 단순한 게 아니라 상당히 폭넓고 입체적인 접근법을 균형있게 유지하고 있어, 진중하고 정석적인 미술사 강의를 듣는 듯하다. 역자 후기가 책의 이러한 전반적인 특징을 놓치지 않고 간결히 요약해준다: "저자 노버트 린튼 교수가 미술사에 대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사를 해석하는 점 (중략) 미술 현상들을 피상적으로 드러난 양식적 속성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미술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본절적인 내용과 그 이면에 감춰진 동인을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현상과의 관련성 속에서 밝힘으로써 그 실체에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술사 자체를 각각의 경향들로 단절된 역사로 취급하지 않고 그 속에서의 지속성과 반향들을 강조함으로써 연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미술도 과거 미술과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같은 미술운동으로 묶인 작가들의 개성을 인정하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렇듯 현대미술사에서 소위 무슨무슨 주의들이 여차저차하게 발전하였다는 식으로 단선적이거나 단순화시킨 서술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양한 경향, 역사적 배경, 개별 인물들의 미술적 이력 등을 다층적으로 참조하면서 그에 저자 나름의 비평적, 해설적 관점을 더하여 복합적이고 풍부하게 20세기 미술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양과 질 양 측면에서 풍부하고 진중하다 보니 초심자가 무턱대고 읽기엔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현대미술의 각 사조에 다소 통달해 있고 여러 작가와 작품들에 있숙해 있다면, 대학생 수준의 교양을 갖춘 일반 독자층이 읽기에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알던 바를 더욱 풍부하게 갈무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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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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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장과 막장에 적어놓은 구매일자가 작년 팔월 말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고 충만되어 있던 시기였다. 처음 삼십 쪽 가량을 읽다 재미없어 포기했었다. 일 년이 훌쩍 지나고, 읽다 중단한 책들을 다시 정주행하던 중 이 책도 다시 펼쳐들었다. 재미가 없는 건 작년이나 매한가지였지만, 근래 마냥 우울하고 무의미하고 외롭게 여겨지는 시간들을 보내던 참이어서였는지, 느끼는 바가 있고 울림이 나는 구석이 있어 인상깊은 귀절마다 책장 모서리들 군데군데 접어가며 완독할 수가 있었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한 말들을 그저 이야기 형태로 풀어냈다는 인상을 계속 받긴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도 간혹은 해볼 만한 소일거리다. 서른셋 사르트르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자신의 방에서 써내려갔을 이 이야기를, 서른셋의 나는 카페에 앉아 생크림 잔뜩 올린 카페모카를 마시며 본가 내 방에 틀어박혀 우유에 탄 믹스커피를 마시며 자취방 탁자에 팔꿈치를 걸치고는 편의점에서 두 병에 만 이천 원 하는 싸구려 와인을 홀짝이며, 읽어갔다. 구토감은 느껴지지 않고, 다만 아침 거른 오전 빈속에 먹은 커피 탓에 자꾸 설사를 했다. 내가 사르트르였으면 제목을 '구토'가 아니라 '설사'로 지었을 거라. 이러든저러든 적나라한 존재를 구토로 게워낼 수도 설사로 싸질러낼 수도 없겠을 것이니, 나는 그저 여행도 모험도 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열심히 뭘 적어대지도 않고 정치적인 일에는 일체 관심도 갖지 않고 여하한 형태의 공적 사회적인 참여활동일랑 크든 작든 일절 않고 가족이든 연인이든 벗이든 누구를 만나러 멀리 뭘 타고 돌아다니지도 않고 그 아무와도 몸이든 마음이든 섞지 않은 채, 카페에서 내방에서 어디 다른 데에서 책읽고 마시고 설사하고 책읽고 마시고 설사하다 때 되면 갈 것이다ㅡ그것도 실존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게 다 읽고 난 결론이었다. 로캉탱처럼 살고 싶지도 않고 사르트르처럼 살고 싶지도 않다. 


 여하간 이런 책은 심신이 맑고 활기찰 적에는 읽어도 별 소득이 없다. 한없이 우울하고 지겹고 외롭고 괴롭고 차라리 미쳐져 있었으면 싶은데 막상 미쳐지기는 또 싫고, 그렇게 사는 일이 축축하고 찌뿌둥하고 시커멓게 구겨져 있을 적에나 읽어봐야, 재미는 없어도 빠져드는 데가 있다. 건강할 적엔 달고 취하고 맛있는 것들 아무렇게나 막 먹어도 되지만, 아플 땐 역하고 쓰더라도 좀 참고 약을 먹어줘야 한다. 그래도 살아있는 입은 무장 좋고 싶다고 크림 기깔나게 올린 커피 마시고 싸구려 냄새 퐁퐁 풍기는 와인 홀짝대며 읽어갔다. 구토는 안했는데, 다만 요사이 살아있는 일이 아침 걸러 텅 빈 뱃속마냥 허해 자꾸 설사를 질렀다. 사르트르가 내 체질이어서 설사를 자주 했다면 변기에 앉았을 적이라도 글을 써내려갔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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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해석학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총서 23
이남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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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썰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상세하게 분석 및 비교하고 있는 전문 학술서적이다. 후썰의 초월론적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 간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해명한다는 목적 하에, 스무 편에 이르는 저자의 유관 논문들을 한데 모아 재구성하였다. 그럼에도 서술과 내용이 일면적이거나 파편화되어 있지 않고 통일적, 체계적이어서 저자의 뚜렷한 문제의식 하에서 진행되는 논의를 명료하고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두 인물의 현상학 간 연속성과 공통점을 추적하는 데에 천착하면서도, 그간 하이데거 철학의 입장에서 다소 일방적으로 무시되거나 왜곡되어왔던 후썰 후기 현상학의 새로운 국면을 강조하는 데에 많은 논의가 할애된다. 내용의 전문성 및 서술의 상세함으로 인해, 이미 등록된 100자평들이 말해주듯 초심자가 읽기엔 많이 버거울 것이다. 기본적인 근현대철학사는 물론이요, 후썰 현상학의 기본 개념이나 논제들 및 하이데거 전기 철학의 전체 윤곽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책의 논의를 유의미하게 따라갈 수 있을 듯하다. 사소한 단점을 지적하자면, 복수 논문들에서 핵심 내용을 추려내어 언어적 측면에서 통일적이게끔 재구하느라 그랬는지, 동일한 어구나 절들이 자꾸 반복되는 등 서술방식이 반복적이고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큰 소득이 있었던 독서였다. 우선, 이전에는 후썰 현상학의 기본 개념들 정도만 그나마도 파편적으로나 알고 있던 차였는데, 이 책을 통해 후썰 현상학 전반을 체계적으로 조감하면서 단편적으로 알던 내용을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후썰 현상학의 전체적인 구도가 조망 및 해설되는 1, 2, 4장 등에서 이러한 도움을 얻었다. 둘째로, 하이데거 철학이 어떤 점에서 현상학이며 그의 해석학이 어떤 점에서 후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인지, 그저 철학사적 지식으로 그렇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 왜 그러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항상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양자의 연속성 및 차이점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저자의 논의를 끈기 있게 따라가다 보니 그러한 궁금증이 해소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전술했듯 후썰 현상학을 좀 더 유의미하게 이해하고 나니,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에서 동원되는 여러 방법적, 개념적 장치들이 후썰 현상학의 그것들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다. 후썰과 하이데거 간 철학적 관계를 파헤치고자 하는 숙달자라면 숙독해볼 가치가 충분한 연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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