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아트 - 인상주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역사
한스 베르너 홀츠 바르트.라슬로 타셴 책임편집, 엄미정 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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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인상주의부터 동시대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미술사조 및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각 장별로 현대미술사의 한 사조를 할애하되, 첫 글로 각 사조를 전반적으로 개괄하는 글을 배치하고 이후엔 그 사조에 속할 법한 작가 내지 작품들을, 복수의 저술가들이 하나씩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구성이 특이하기에, 정석적인 미술사 서적으로 읽기엔 비교적 통일성이 부족하고, 개별 작가들 내지 사조들에 대한 해설서로 읽기엔 많이 빈약하지만, 현대미술사 및 미학이론에 다소 숙달해 있는 사람이라면 외려 그러한 점으로 인해 물러 앉아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한 사조 내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대표적인 작가들의 대표작들만을 대강 알고 있던 차에, 그에 비에 좀 더 넓으면서도 엷은 스펙트럼에 할당될 법한 작가 및 작품들(혹은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이되 대표작이 아니라 덜 조명되어 온 마이너한 작품들)을 각 사조별로 접해볼 수 있어 신선하였다. 


 책을 사면 책과 분리되는 겉표지가 있을 경우 거추장스러워 으레 걷어내어 그냥 버리고는 하는데, 먼로가 붉게 웃고 있는 이 책은 겉표지를 버리고 나니 본 책몸의 양장 표지가 새하앴다. 그 흰 배경에 붉은 색으로 쓰인 '모던아트' 네 글자 디자인이 참 괜찮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겉표지 없이 손때 묻혀가며 읽고 보니 이제는 책 모양새가 첫 샀을 때만큼은 영 꼴나지가 않는다. 혹여 책을 아껴 깔끔하게 읽어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먼로의 얼굴을 절대 버리지 말기를, 혹여 나같이 귀치않아 버리더라도, 어디 편한 데 퍼질러 앉아서는 독서대에 놓은 채 얌전히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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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분석철학 -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무어, 러셀, 카르납, 비트겐슈타인 知의 총서 4
박이문 지음 / 지와사랑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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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특수성이 장점인 책이다. 상당히 판이한 성격의 두 철학사조를 비교검토해보는 시론이기에, 두 철학 간 관계가 어떠한지를 궁금히 여겨본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어가면서 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두 철학사조의 지향점이 궁극적으로는 삶이라는 주제로 수렴된다는 저자 고유의 해석이 나름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여겨졌다. 다만 심층적인 분석이나 날카로운 논증 혹은 상세한 학술적 해설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다소 개괄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개진하는 에세이이기에,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공부를 위한 참고서로서는 적절치 않다. 그렇다고 두 사조에 대한 입문서나 교양서로 읽기에도 초심자에겐 조금 버거울 듯하다(특히 개별 철학자들의 이론이 다뤄지는 2부보다 현상학과 분석철학을 전반적으로 비교해보는 1부가 좀 더 어렵게 느껴질 듯하다). 두 사조 및 다뤄지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현상학과 분석철학이라는 큰 줄기에 대한 나름의 문제의식이나 지적 호기심을 강하게 갖고 있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음미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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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현대 기초 논리학 입문
배선복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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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형편없는 책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아주 기이하고 의심스런 책이다 우선 저자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만큼 문장력이 하냥 형편없다 사소한 오탈자는 그렇다 쳐도, 어처구니없는 비문들이 정말 계속 난무한다 무슨 <의도>로 글을 쓴 건지가 아니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글을 썼는지, 생각이라도 해가며 글을 썼는지부터가 도시 궁금할 정도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장 투성이다 ‘짱-의미합성‘ ‘도깨비 이론‘ ‘야 집합 언어‘ 등 학술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기이한 명칭을 도입하는 것도 이해를 방해한다 서술적, 학문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 현학적 문체를 부적절하고 어울리지 않게 자꾸 뒤섞는 서술방식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내용적으로도 엉망진창인 구석이 많다 명제논리를 도입하는 데에, 현대 논리학에서는 그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려운 구식 철학어인 ‘범주‘를 들먹여가며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굳이 있을가 연습문제와 해답도 갖춘바 일견 논리학 교재인 것처럼 보이나 하고자 하는 낌새를 보면 심층적인 연구서나 해설서 같기도 한데 어느 쪽이든 서술방식이 난삽하여 논지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표준적인 논리학적 사항들을 소개하면서도 그 제시방식이 엉망진창이고 기이하여 논리학 초심자든 숙달자든 얻을 바가 전무하다

닐 부부의 ˝논리학의 역사˝를 참 열심히도 읽은 바 있는데, 공동 역자들 중 이 저자의 이름을 본 기억이 있다 그 챆 뿐만 아니라 공동저술된 여타 서적에서도, 혹은 한 저서의 인용서지사항에서도 간혹 본 이름이어서, 믿을 만한 학자이겠거니 하고 이 책을 구매하였다 정작 펼쳐보니 도저히 읽어내려가지 못하겠는 모양새이다 너무나 실망스럽고, 왜서 이런 물건을 저술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은이 소개를 보면 출간돨 당시인 2004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속이었다는데,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곳이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나 좌우간 여직도 이런 물건을 저술하는 사람들로 대개 구성된 곳이라면, 작금에 대한민국 정신과 문화와 학술연구가 어디로 향할지, 당최 어딘가로나 향하기는 할런지, 무척이나 저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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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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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정신현상학의 이해'이지만 그에 대한 해설서라기보다 요약서에 가깝다. 해당 저술의 내용이 저자 고유의 언어로 주해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원전에서 핵심적인 문장들이 지속적으로 인용되면서 본문에서는 그 인용된 바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언어와 개념들이 반복되어 재서술될 뿐이다. 절 말미마다 해당 절의 내용을 도식화한 것은 저자 나름대로의 주해를 도모한 유의미한 시도라 할 수 있겠으나, 원전 이해에 그다지 크게 기여한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애초에 나는 철학적 사유를 도식화하거나 요약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원전으로 도전하기엔 버겁지만 그 내용을 너무나 알고 싶어 어떻게든 접근하고자 안달난 사람이 아닌 바에야, 통상적인 독자층에게는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헤겔 철학을 탁월하게 소개하거나 평가하는 학술적 연구서나 대중적 해설서가 이미 많이 나와있다는 점에서, 구매 및 소장가치 역시 떨어진다. "정신현상학"에 도전하기에 앞서 혹은 그와 병행할 참고서로서 굳이 활용하고자 한다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일별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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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논리학 수업 - 하버드 대학교 전설적 철학 교수의 기초 논리학 강의
윌러드 밴 오먼 콰인 지음, 성소희 옮김 / 유엑스리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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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점으로 인해 아주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1. 명제논리와 양화논리 두 가지만이 다뤄지고 있는데 그 접근법이 공리적이고 구문론적이어서 다소 어렵고 자연연역법을 중심으로 삼는 작금의 일반적인 논리학 교수법 트렌드와도 이질적인 편이다. 이에 초심자가 혼자 읽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고, 논리학을 다소 아는 사람이라도 전문적인 숙달 수준을 갖추지 않은 이상 읽어나가기 어렵다. 예컨대 명제논리에서 타당성, 함축, 동치, 모순 개념 등을 설명하는 데에, 진리표 방법이 아니라 연산자 변형을 통한 연언/선언 표준형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전자는 의미론적인 것으로서 진리치를 갖는 문장/명제에 대한 방법이기에, 문장 <도식>에 대한 추상적, 구문론적인 접근법을 취하고자 한다면 후자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장/문장도식 개념 간의 구분부터가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과제인바, 논리학의 형식성과 추상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야 이러한 접근법의 필요성과 묘미를 간취해낼 수 있다. 또한 연언/선언 표준형 변형과정은 그를 위한 진리함수적 연산자들의 정의를 숙지하고 그를 통한 변형 방법을 먼저 숙달해야만 진행할 수 있는 절차이다. 논리학 초심자가 그런 방법에 익숙할 리는 만무하며, 이를 어떻게든 이해 및 연습하고자 한다면 진리치표를 활용하는 직관적인 방법에 기대는 수가 결국 최선이다. 앞 절에서 제시된 문장들을 다시 표기해주지 않고 그 번호만을 언급해가며 증명을 이어가는 방식 및, 언어요소의 전부를 기호화하지 않고 자연언어 문자와 논리상항들을 혼용하여 설명하는 방식 등, 콰인의 서술방식이 그다지 친절하거나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다. 콰인이 위대한 논리학자라는 사실이 그가 탁월한 논리학 교수라거나 저ㅓ명한 논리학 교재 저술가라는 점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제목 및 책의 외양이 비춰주는 바와는 다르게 초심자를 위한 내용은 절대 아니다. 보편화된 학습법 외의 색다른 방법을 알아보고자 하는 숙련자에게나 추천된다. 


2. 사실 1에서 지적한 사항은 책 자체적인 단점이라기보다는 책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상대적 단점이다. 기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이 책의 전체적인 만듦새와 그에서 비춰지는 출판사의 기만적인 행태였다. 일단 나는 이런 식으로 팔아먹기 좋은 형태로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하버드', '전설적인' 이라는 거창한 단어들까지 달고 나오는 이런 류의 책들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콰인의 이 책을 이런 모양새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원서에 대한 종합적인 무지와 비검토를 방증해준다는 점이다. 책 어느 내용을 읽어 봐도 이런 모양새로 논리학 초심자들을 홀릴 만한 내용이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현실의 논리/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그 누구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강도 높은 지식들이다. 그런데도 전문 서적이 아니라 마치 교양 수준이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듯한 만듦새로 외양만 번드르하게 꾸며놓은 채, 활자 크기와 줄 간격과 본문 외 여백을 대빵만하게 키워놓고는, 그렇게 해놓고도 쪽수가 300쪽 남짓으로 뽑힌 이 작은 책을 이만 오천 원에 팔아먹고 있다. 원저자의 80년 판 서문을 보면 마땅한 논리학 교재가 없는 당시 실정에서 본인이 활용키 위해 6주 간 이 "얇은"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 말이 암시하기도 하듯 실제 내용을 읽어보면 이 책은 혼자 읽어나가며 숙달하는 목적보다는 전문가의 지도 하에 활용되는 교재 내지 부교재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쓰인 저서라는 느낌이 강하다. 책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지도 않은 채 이런 식으로 책을 기획, 출판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질타받아야 할 구석이다. 편집자나 검수자가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을지마저 의심스럽다. 일례로 n개의 요소명제로 구성된 복합명제의 진리치표에서, 가능한 진리치의 배열을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가로행의 개수는 2n개가 아니라 2^n개임에도, 153쪽에는 두 번이나 '2n'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소한 오식이든 역자의 오역이든 어느 쪽이나 한심스럽기는 불문가지다. 하기사 'extensionalist'를 '외연주의자'가 아닌 '확장주의자'로 번역하는 마당에 뭘 더 기대할 바가 있겠는가. 기획자든 역자든 편집자든 검수자든, 이 책이 만들어지는 데에 개입한 그 누구도 이 책의 특성과 원저자의 이론이라곤 일절 모른 채 탄생한 대환장 콜라보나 다름없다. 수준이 변변치 못하게 탄생한 이런 물건이 하바드 전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이만 오천원에 세상에 나왔다. 혐오스럽기 그지없고, 작고한 콰인에게 일개 독자인 내가 감히 민망할 정도이다. 


3. 열 한두 해 전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불었다. 철학사 한 권 안 읽어본 독자층들이 '하버드 강의'라는 수식어에 혹해 많이들 이 책을 샀을 테고, 많이들 읽다가 내팽겨쳤을 테고, 그렇게 많은 책들이 방치되었을 테다. 지금도 알라딘 중고매장에 가면 갈 적마다 이 책은 낱장 하나 해진 데 없이 말끔한 상태로 한두 권씩 꼭 비치되어 있다. 이제 독자층들은 원체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닌 바에야 책의 겉모양과 출판사의 상술에만 혹해 이런 책들을 사는 수준을 점차 벗어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책"이라 해서 콰인의 이 책이나 샌델의 그 책이 좋지 않은 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철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문학이든 장르소설이든, 어떤 분야의 유명한 저서나 저자에 대한 그럴 듯한 꾸밈새만으로 책을 팔아먹을 수 있는 시대는 곧 지나갈 것이라는 말이다. 책을 즐기며 꾸준히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관심하는 분야에서 무엇이 양서인지 무엇이 자신에게 필요한 책인지를 알아보는 안목을 점차 키워갈 것이다. 그에 따라 이런 책들과 이런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출판사는 롱런하지 못할 것이다. 콰인에겐 안타깝지만 이 출판사에서 나온 그의 이 책은 곧 절판될 것이고, 그 넓은 여백에 증명 절차 하나 메모되어있지 않은 깔끔한 상태로 알라딘 중고매장에 몇 권 돌아다니게 될 테다. 

 

4. 다만 나는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 아니면 적어도 <견실하게 만들어진 책>을 알아보는 안목이 여전히 많이 부족한가보다. 콰인이라는 논리학 대가가 쓴 논리학 저서는 도대체 어떤 모양새일까 그것만이 궁금하여 섣불리 책을 사버렸다. 논리학에 더 충분히 숙달한 뒤에 다시 도전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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