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미술(대) - 미술 이론 -
|저자 노버트 린튼 | 역자 윤난지 | 출판사 예경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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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하고 교과서적인 현대미술사 서적이다. 아수파와 입체파 등 20세기 초의 모더니즘부터 1970년대까지의 미술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그 방식이 여타 대중서들처럼 피상적이거나 단순한 게 아니라 상당히 폭넓고 입체적인 접근법을 균형있게 유지하고 있어, 진중하고 정석적인 미술사 강의를 듣는 듯하다. 역자 후기가 책의 이러한 전반적인 특징을 놓치지 않고 간결히 요약해준다: "저자 노버트 린튼 교수가 미술사에 대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사를 해석하는 점 (중략) 미술 현상들을 피상적으로 드러난 양식적 속성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미술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본절적인 내용과 그 이면에 감춰진 동인을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현상과의 관련성 속에서 밝힘으로써 그 실체에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술사 자체를 각각의 경향들로 단절된 역사로 취급하지 않고 그 속에서의 지속성과 반향들을 강조함으로써 연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미술도 과거 미술과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같은 미술운동으로 묶인 작가들의 개성을 인정하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렇듯 현대미술사에서 소위 무슨무슨 주의들이 여차저차하게 발전하였다는 식으로 단선적이거나 단순화시킨 서술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양한 경향, 역사적 배경, 개별 인물들의 미술적 이력 등을 다층적으로 참조하면서 그에 저자 나름의 비평적, 해설적 관점을 더하여 복합적이고 풍부하게 20세기 미술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양과 질 양 측면에서 풍부하고 진중하다 보니 초심자가 무턱대고 읽기엔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현대미술의 각 사조에 다소 통달해 있고 여러 작가와 작품들에 있숙해 있다면, 대학생 수준의 교양을 갖춘 일반 독자층이 읽기에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알던 바를 더욱 풍부하게 갈무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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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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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장과 막장에 적어놓은 구매일자가 작년 팔월 말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고 충만되어 있던 시기였다. 처음 삼십 쪽 가량을 읽다 재미없어 포기했었다. 일 년이 훌쩍 지나고, 읽다 중단한 책들을 다시 정주행하던 중 이 책도 다시 펼쳐들었다. 재미가 없는 건 작년이나 매한가지였지만, 근래 마냥 우울하고 무의미하고 외롭게 여겨지는 시간들을 보내던 참이어서였는지, 느끼는 바가 있고 울림이 나는 구석이 있어 인상깊은 귀절마다 책장 모서리들 군데군데 접어가며 완독할 수가 있었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한 말들을 그저 이야기 형태로 풀어냈다는 인상을 계속 받긴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도 간혹은 해볼 만한 소일거리다. 서른셋 사르트르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자신의 방에서 써내려갔을 이 이야기를, 서른셋의 나는 카페에 앉아 생크림 잔뜩 올린 카페모카를 마시며 본가 내 방에 틀어박혀 우유에 탄 믹스커피를 마시며 자취방 탁자에 팔꿈치를 걸치고는 편의점에서 두 병에 만 이천 원 하는 싸구려 와인을 홀짝이며, 읽어갔다. 구토감은 느껴지지 않고, 다만 아침 거른 오전 빈속에 먹은 커피 탓에 자꾸 설사를 했다. 내가 사르트르였으면 제목을 '구토'가 아니라 '설사'로 지었을 거라. 이러든저러든 적나라한 존재를 구토로 게워낼 수도 설사로 싸질러낼 수도 없겠을 것이니, 나는 그저 여행도 모험도 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열심히 뭘 적어대지도 않고 정치적인 일에는 일체 관심도 갖지 않고 여하한 형태의 공적 사회적인 참여활동일랑 크든 작든 일절 않고 가족이든 연인이든 벗이든 누구를 만나러 멀리 뭘 타고 돌아다니지도 않고 그 아무와도 몸이든 마음이든 섞지 않은 채, 카페에서 내방에서 어디 다른 데에서 책읽고 마시고 설사하고 책읽고 마시고 설사하다 때 되면 갈 것이다ㅡ그것도 실존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게 다 읽고 난 결론이었다. 로캉탱처럼 살고 싶지도 않고 사르트르처럼 살고 싶지도 않다. 


 여하간 이런 책은 심신이 맑고 활기찰 적에는 읽어도 별 소득이 없다. 한없이 우울하고 지겹고 외롭고 괴롭고 차라리 미쳐져 있었으면 싶은데 막상 미쳐지기는 또 싫고, 그렇게 사는 일이 축축하고 찌뿌둥하고 시커멓게 구겨져 있을 적에나 읽어봐야, 재미는 없어도 빠져드는 데가 있다. 건강할 적엔 달고 취하고 맛있는 것들 아무렇게나 막 먹어도 되지만, 아플 땐 역하고 쓰더라도 좀 참고 약을 먹어줘야 한다. 그래도 살아있는 입은 무장 좋고 싶다고 크림 기깔나게 올린 커피 마시고 싸구려 냄새 퐁퐁 풍기는 와인 홀짝대며 읽어갔다. 구토는 안했는데, 다만 요사이 살아있는 일이 아침 걸러 텅 빈 뱃속마냥 허해 자꾸 설사를 질렀다. 사르트르가 내 체질이어서 설사를 자주 했다면 변기에 앉았을 적이라도 글을 써내려갔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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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해석학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총서 23
이남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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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썰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상세하게 분석 및 비교하고 있는 전문 학술서적이다. 후썰의 초월론적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 간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해명한다는 목적 하에, 스무 편에 이르는 저자의 유관 논문들을 한데 모아 재구성하였다. 그럼에도 서술과 내용이 일면적이거나 파편화되어 있지 않고 통일적, 체계적이어서 저자의 뚜렷한 문제의식 하에서 진행되는 논의를 명료하고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두 인물의 현상학 간 연속성과 공통점을 추적하는 데에 천착하면서도, 그간 하이데거 철학의 입장에서 다소 일방적으로 무시되거나 왜곡되어왔던 후썰 후기 현상학의 새로운 국면을 강조하는 데에 많은 논의가 할애된다. 내용의 전문성 및 서술의 상세함으로 인해, 이미 등록된 100자평들이 말해주듯 초심자가 읽기엔 많이 버거울 것이다. 기본적인 근현대철학사는 물론이요, 후썰 현상학의 기본 개념이나 논제들 및 하이데거 전기 철학의 전체 윤곽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책의 논의를 유의미하게 따라갈 수 있을 듯하다. 사소한 단점을 지적하자면, 복수 논문들에서 핵심 내용을 추려내어 언어적 측면에서 통일적이게끔 재구하느라 그랬는지, 동일한 어구나 절들이 자꾸 반복되는 등 서술방식이 반복적이고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큰 소득이 있었던 독서였다. 우선, 이전에는 후썰 현상학의 기본 개념들 정도만 그나마도 파편적으로나 알고 있던 차였는데, 이 책을 통해 후썰 현상학 전반을 체계적으로 조감하면서 단편적으로 알던 내용을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후썰 현상학의 전체적인 구도가 조망 및 해설되는 1, 2, 4장 등에서 이러한 도움을 얻었다. 둘째로, 하이데거 철학이 어떤 점에서 현상학이며 그의 해석학이 어떤 점에서 후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인지, 그저 철학사적 지식으로 그렇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 왜 그러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항상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양자의 연속성 및 차이점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저자의 논의를 끈기 있게 따라가다 보니 그러한 궁금증이 해소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전술했듯 후썰 현상학을 좀 더 유의미하게 이해하고 나니,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에서 동원되는 여러 방법적, 개념적 장치들이 후썰 현상학의 그것들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다. 후썰과 하이데거 간 철학적 관계를 파헤치고자 하는 숙달자라면 숙독해볼 가치가 충분한 연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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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중요한 몇 가지 문제 언어와 현대사상 총서 1
조지 에드워드 무어 지음, 김지홍 옮김 / 경진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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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삽하여 도무지 잘 읽히지 않는 책이다 철학의 기초 분야들에서 주된 주제나 쟁점들을 폭넓게 살펴보는데, 어딘가 모르게 난삽하고 복잡하여 내용이 파악되지 않고 집중이 되질 않는다 번역의 문제인지, 강의록음 염두에 둔 글이라는 특성 탓인지, 무어의 철학방식이 그저 나랑 안 맞는 때문인지, 여하간 문장들이 머리에 들어오질 않아 논의가 따라가지지 않는다
더욱 눈에 띄는 단점은 역자의 과도한 개입이다 역주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제시되는데 양정으로만 과하고 무분별하여 본문을 읽어나가는 데에 방해만 된다 거의 90%는 철학적 내용이 아니라 자연과학 언어학 뇌과학 국어학 어휘론 등의 지식들을 담고 있는데, 본문과 무관하거나 피상적으로만 연관되는 것들이어서 본문을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기여하는 바가 전무하다 나머지 10%의 철학적 내용들도 본문의 주된 논의흐름과는 무관한 쌩뚱맞은 철학적 지식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진리치 담지자에 관한 논리철학적 논의에서 갑자기 오스틴의 화행론으로 넘어간다든가, 실재개념을 분석하다가 희한한 사유과정을 거쳐 불교철학이나 주역을 논하기에 이르는 등, 역시 본문을 철학적으로 적절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데에 일조하는 바가 거의 없다 널리 쓰이는 인명을 무시하고 뤄쓸 뷧건슈타인 프롸이어 등으로 표기하는 것도 사소하지만 읽는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철학책이지 한글 표기법에 관한 책이 아니다
사정이 아러하니, 유사한 주제와 내용을 더욱 깔끔한 형식과 문장력으로 전달하고 잇는 여타 교양 수준의 철학서들이 많다는 점에서,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무어의 상식철학에 강하게 관심하는 바가 아닌 이상 일반 독자층에게는 전혀 권하고 싶지 않다 혹여 읽기를 시도하더라도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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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분석철학
M.K.뮤니츠 지음, 박영태 옮김 / 서광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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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하고 상세한 서술이 장점인 동시에 약간의 단점일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철학사 서적이다. 분석철학 초중기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선별해 한 장씩 할애하여 그 이론들 일부를 다루는데, 역자 서언과 원저자 서언이 말해주듯이 내용이 주로 논리철학, 언어철학적인 분야에 치중해 있어서 분석철학에서 또 다른 큰 줄기인 과학철학,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등의 분야는 매우 적은 비중으로만 다뤄지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역자가 언급하듯이 다뤄지는 인물들의 1차문헌이 다량으로 풍부하게 인용되고 있어서, 원서나 학술논문을 통한 전문적인 접근이 어려운 일반 독자층이 조금이나마 더 원전에 기대어 탐구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다.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과 서술방식도 상세하고 풍부한바, 생산성 없는 단순 반복적인 설명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점층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설명하고 있어서 철학사의 통시적 흐름과 그 세세한 얼개 양자를 알차게 조감 및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양적, 질적인 풍부함은 분석철학에 다소 숙달해 있는 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으나, 초심자에게는 (그자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번역과 함께) 되려 난해함과 지루함을 가중시킬 우려가 다소 있는 듯하다. 인용된 원전의 양은 분명 풍부하지만 그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불충분하거나 따로 노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경우가 간혹 있었다. 책의 구성 측면에서도 사소한 어려움이 기인하는데, 장 내 절들이 대체로 그 이상 구분되어 있지 않아 한 절 전체의 호흡이 길다보니, 초심자라면 논의되는 논제나 이론 전체를 끝내 파악하지 못한 채 길을 잃을 공산이 커보인다. 다만 전술했듯 저자의 반복설명이 생산적이고 상세한 편이므로, 서술의 긴 호흡을 잘 따라갈 끈기와 독서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어쨌든 초심자도 능히 읽어낼 수 있을 법한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다. 


 실제로 나의 경우 대학시절 언어철학을 처음 수강할 적에 강의를 따라가기가 벅차던 차에 이 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바 있다. 학기 초 도서관 서가를 물색하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분량에 겁먹지 않고 큰 맘 먹고 구매하였다. 언어철학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어떻게든 강의를 따라가야겠다는 욕심에 바쳐 무작정 읽어나갔는데, 당시 분석철학사라곤 일절 모르던 상태였음에도 끈기 있게 읽다보니,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큰 도움을 받으면서 분석철학사 전체를 나름대로 정리해낼 수 있었다. 내용이 워낙 상세하여 이후에도 밑줄 긋고 메모해가며 재독해온 것이 이번이 대충 여남은 번째임에도, 여전히 건져내고 추려내고 정리할 것들이 산재해 있었다. 양적인 부담감 및 직역투의 번역으로 인한 번잡함을 감내할 자신이 있다면 분석철학사에 관심하는 누구에게든 구매소장을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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