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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해석에 관한 탐구 ㅣ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323
도널드 데이비슨 지음, 이윤일 옮김 / 나남출판 / 2011년 2월
평점 :
철학자의 1차 저술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책도 기본적으로 매우 어려운 책이며, 주제와 연관된 철학분야 일반(이 책의 경우 언어철학 일반)에 대한 선지식 및 저자의 이론에 대한 선지식이 있어야 조금이나마 아해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타르스키식의 진리론이 중심적으로 다뤄지고 프레게와 콰인의 언어철학적 논제들이 자주 등장하며, 일부 글애서는 논의가 화용론적으로 진행되기도 하기에, 이것들에 대한 선지식도 갖추고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읽히고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모두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만을 갖고있는 탓에, 데이비슨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논지는 파악했어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당화되고 논의되는지에 대한 논증적인 이해는 하지 못하였다 통일된 한 권의 책을 염두에 두고 저술된 것이 아니라, 데이비슨의 글들 증 언어철학과 연관된 것들이 취합된 저서라는 특성도 읽는 난이도를 조금 더하는 듯하다 역시 철학자들의 저서들이 으레 그렇듯이, 연관된 여타 책이나 자료들을 병행해가며 반복해서 읽어야 유의미한 수준의 이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본문에 달린 역주들과 책 말미의 역자 해설이 적당한 도움을 주는 듯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본문의 내용 중 특히나 이해하기 어렵다 싶은 부분에는 때마침 적당하고 평이한 내용 해설, 개념 설명 등이 역주에 제시되어있어 본문을 이해하는 데에 유익하다 역자 해설은 데이비슨 언어철학의 전체 얼개를 평이하고 체계적이고 압축적으로 정리해주고 있기에, 데이비슨 철학에 대한 선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이 부분을 먼저 읽고 본문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은 독서전략일 듯하다 다만 ‘적당한‘ 도움이 된다고 평하였듯이, (당연한 말이지만) 역주와 해설에 의존한다고 해서 본문을 이해하는 데에 <충분>한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철학적 지식과 논의에 다소라도 숙달한 사람에게나 유용할 것이다
번역의 경우, 원문을 읽어본 적도 없고 원문을 안 읽고도 오류를 간파해낼 만큼 데이비슨 철학에 정통란 것도 아니기에 오역 여부의 측면에 대해 합당한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문체나 스타일의 측면에서는 흠잡을 데가 크게 없는 듯하다 한 문장의 호흡이 긴 경우 직역투의 느낌이 종종 드러나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인 번역은 결코 아니며 주의깊게 찬찬히 읽어가면 그 뜻이 통한다
데이비슨의 언어철학을 처음 접했을 때 그의 자비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 책에서는 ‘관용의 원리‘로 번역되어있다)에 큰 인상을 받은 바 있다 교양 수준의 실용 논리학에서 숨겨진 전제를 드러내어 논증을 최대한 일관적이고 참이 되게끔 재구성하라는 원칙으로 원용되기도 하고, 토론에 임할 때 타인의 말에 꼬투리를 잡기보다는 그 사람의 주장을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주어야 한다는 일상적이고 소박한 원칙으로 통용되기도 하지만, 데이비슨이 말하는 자비의 원칙은 인간의 합리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하는 더욱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문제의식과 실마리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가치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그런 부분에 대한 사유를 나름대로 더욱 정련하고 다듬어나가고 싶다
사족. 나는 카르납의 ‘principle of tolerance‘에 대해 ‘관용의 원칙‘이라는 역어를 받아들이기에, 단순히 이와 구분하기 위해 데이비슨의 ‘principle of charity‘에 대한 역어로서는 ‘자비의 원칙‘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principle‘의 경우, 객관적인 법칙이나 규칙성을 환기하는 ‘원리‘보다는, 이론상의 방법론적 지도규칙, 이론정립 주체의 작업가설 등을 환기하는 ‘원칙‘을 선호하였다) 하지만 우리말의 ‘자비롭다‘, ‘자비를 베푼다‘ 등의 표현에서 ‘자비‘의 의미나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 어감 등을 감안해볼 때, 이 역어가 데이비슨의 방법론적 원칙을 잘 포착하고 있는지 조금 의문스럽다 영어에서 ‘charity‘가 우리말에서 ‘자비‘와 거의 유사하게 쓰인다면 이 의문은 일축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찰해볼 여지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자가 이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없지만, 나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었기에, 주로 선택되는 ‘자비의 원리‘가 아니라 ‘관용의 원리‘를 일부러 택한 것은 아닐까 주제넘게 짐작해보기도 하였다 데이비슨의 철학 내에서 이 단어의 번역에 대한 논의를 부분적으로라도 다류고 있는 논문이나 글이 분명 한 편 정도는 있을 법한데, 게을러서 적극적으로 찾아보진 않았다 이 책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될 때즈음 한번쯤 조사해보아야겠다 책 한 권을 읽으면 오히려 과제가 생긴다 뭔갈 배운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다만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