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중반의 분석철학계를 풍미했던 주요 철학자들의 철학을 논증적으로 파헤치는 전문서이다. 무어와 러셀의 철학에서 시작해 초기 비트겐슈타인과 논리실증주의를 거쳐 '두 독단' 시키의 콰인까지 다루는데, 책 내 배치 순서 등 외양에서 비춰지는 바와는 달리 정통적인 스타일의 철학사 서적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연대순으로 진행되는 논증적 논쟁적 스타일의 저술이다. 책의 통일적인 세부구성에서도 그러한바, 각 철학자들의 이론 내에서 구분될 법한 큰 줄기를 따라 서넛의 장이 할당되고, 각 장 초입에서 해당 테마에 대한 해당 철학자의 논증(혹은 그 철학자의 입장에서 제시될 법한 논증적 재구성)을 기술한 뒤, 이를 저자 나름대로 논증적으로 분석 및 평가한다. 기술적 해설적 부분보다는 논증적 평가적 부분이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해당 철학자의 입장을 기술 및 재구성할 때든 그것을 평가하거나 반박하는 저자 고유의 논증을 시도할 때든 약간 준형식적인 언어로 상당히 세세하고 정교하고 복잡하게 논의가 진행된다. 이렇듯 역사적이기보다는 주제적이고 해설적이기보다는 논증적인데다가 논의 수준도 상당히 밀도 높고 복잡하기에, 초심자는 물론이요 일반 독자층이 무턱대고 읽기란 전연 불가능하며, 저자가 겨냥한 대로 철학과 학부생 3, 4학년 내지 대학원 초입생 및 그 정도의 수준을 갖춘 독자층이어야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전문서라 하겠다. 각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폭넓고 심층적인 배경지식과, 철학의 전통적 하위분야(인식론 존재론 윤리학 등) 및 주제별 하위분야(논리철학 언어철학 과학철학 등)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갖춘 채, 분석철학적 경향에서 대체로 드러나는 준형식적 논증스타일을 기죽지 않고 따라갈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고 숙고해가며 읽어낼 수 있겠다.
책의 존재를 검색으로 처음 알고 난 뒤 큰 기대감에 곧바로 무턱대고 주문했다. 큰 어려움 없이 읽어갈 수 있으리라 만만히 여긴 대가를 초독 시에 톡톡이 치렀던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논증들 중 비교적 익숙해 있다고 여긴 테마에서마저 온전히 이해하고 소화해낸 것이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내용은 제대로 파악 못한 채 우격다짐으로 글자만 읽어내려가던 것이, 2권은 끝내 그 글자만 읽는 일마저도 완독을 못하고는 크립키에서 중도 포기했다. 내용과 의미를 못 따라가니 당연한 결말이었다. 네 달이 지나 밀린 숙제 끝낸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도해보았다. 어렵고 복잡하고 숨쉴 틈 없다고 여겨진 건 여전했지만, 초독 시보다 더 가다듬은 호흡으로 집중해서 읽어가다보니 저자의 논의스타일을 따라가며 논증의 골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책에 덤빌 때는 정제된 철학적 지식 자체를 전달하기보다는 그 지식을 전문적 논증적으로 파헤치는 성격의 저서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문적인 철학논문 한 편 마저도 제대로 읽어낼 줄 아는 학술적 소양이 없던 나로서는, 읽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그 실패를 통해 조금이나마 더 거듭나게 해줄 책이었던 셈이다. 차후에도 몇 년에 걸쳐 너덧 번 더 재독할 물건으로 남겠다(물론 나에겐 모든 책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국내 철학책에서는 마주칠 기회가 참 적은 무어의 철학이 상세하게 다뤄진다는 점과, 아무리 정교하고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철학적 이론이라도 그것이 우리가 지닌바 先이론적 先철학적 일상적 직관 내지 확신과 배치될 경우 의심의 눈초리는 전자에게로 돌려져야 한다는 무어의 메타철학적 방법론, 그리고 그 방법론이 저자에 의해 곳곳에서 간접적으로 원용되고 있다는 점 등이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