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TV와 언론에서 이세돌 9단이 나와 2016년 알파고 대전 이후 십년 동안 AI가 바둑에 미친 영향과 현재의 대응 방향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프로그램들이 기획되고 방영됐습니다.

그 출발을 2016년으로 봤습니다. 당시 4국을 보면서 이세돌 9단이 더 이기기를 막연하게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세돌 9단 뿐 아니라 대국을 보는 사람들도 이 대국이 얼마나 불공정한 대국아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대리로 수를 두는 사람 뒤에 최소한 몇 만 명이 동시에 상황을 파악하고 작전을 짜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알파고가 처리할 수 있는 연산의 범위에 대해 생각조차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저는 아는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이세돌의 수읽기»에서 밝힌 ‘버그를 유도해’ 4국에서 이겼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버그를 유도했던 결정적인 수는 78수가 아니라 68수라는 것도.

그리고 이렇게 불공정한 이벤트를 치르게 된 원인을 구글과 딥마인드로 생각했고, 두 회사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특히, 구글에 대해서는 그 사이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 등을 보면서 만행을 알게됐습니다.

지난 3월,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에 대한 영문 책이 출간됐습니다. 아직 앞부분을 읽고 있는데, 알파고 대전으로 가졌던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내용은 하사비스가 일론 머스크만큼 다른 사람을 잘 설득시킬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글과 결별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나와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 체스에 재능이 있어 체스 대회에 나갔었다는 것, 회사에 다니며 만들었던 게임이 철학적인 내용이었고 선과 악을 다루었다는 것, 대학에 가서 바둑에 시간을 꽤 보냈다는 것, 회사를 차려서 게임을 만들었지만 돈을 벌지 못해 다시 학교로 돌아간 것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재능이 많지만 과시를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사람을 위한 AI‘를 추구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면서 동시대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건들의 출발과 전개를 보는 것은 늘 흥미롭습니다. 언론이나 경영 업계는 제한된 정보로 자신들의 우위를 드러낼 수 있을 만큼만 공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앞으로 올 내일과 그 내일을 만들어갈 사람들을 알아보는데,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올해는 이 책을 통해 AI로 노벨상까지 받은 하사비스라는 재능이 뛰어난 인물과 그와 함께 사업을 한 구글이 세계에 끼친 영향, 사람 중심으로 AI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으로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구글과 달리 하사비스는, 딥마인드는 변질하지 않았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읽기 전에는 이 책이 꽉 찬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겠지요.

* 일론 머스크와 오픈AI간의 법적 다툼이 빠르면 이번 달 안에 결정이 난다고 합니다. 오픈 AI도 처음에는 비영리를 추그했지만, MS와 더불어 사업적으로, 영리 목적으로 AI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머스크도 초기에는 분명 AI와 같은 기술은 비영리를 목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영리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장이 왔다갔다 했다고 합니다. AI가 다스릴 세상에 대해 아주 꺼리는 입장은 그대로이겠지만, 어느 선까지는 안전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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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해 생각합니다.

멀리 떠나는 것이 여행일까요? 해외 출장은 어떤 형태일지 모르지만 비즈니스 미팅을 우선으로 해, 사전에 일정과 묵을 곳 등을 정하고 간다면 대체로 그 나라에 대해서 제한적인 경험을 할 겁니다. 패키지로 가는 여행도 진정한 여행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맞지만 보는 것과 먹는 것 등이 다를 뿐, 약자로서의 경험은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거주지에서 산다는 것은 평소에 무게중심이 꽤 분산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디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야하고, 교통카드가 있고, 등등을 익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주지가 있다면 짐을 모두 들고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됩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이 있고, 이럴 때 가기 좋은 장소를 알고 있고, 어떤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를 보려면 어느 시간대, 어느 극장이 덜 붐비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가격으로 표를 구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전시는 어디가 어떤 전시를 하고, 전시를 다 보기까지 대체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스스로를 약자로 만드는 시간입니다. 성경에 여행자들, 이방인들에게 잘 대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약자이기 때문일겁니다. 늘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 노숙인들도 모든 무게중심을 떠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요즘의 여행은 사전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대체로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실시간으로 정보를 찾거나 번역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무게중심을 일부 분산시킬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분산시킬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짐들은 맡길 데가 없어 끌고 메고 다녀야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서 차를 타야 하는지, 몇 번을 타야 하는지, 목적지는 오늘 쉬는지 안 쉬는지, 지금은 어떤 과일이 맛있는지, 어디 과일이 맛있는지 등등 모든 사소하고 별일 아니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처음 배우듯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런 여행과 패키지는 입장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편하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패키지를 선택하지만, 그로 인해 여행에서 날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버리는 셈입니다.

기업의 총수들, C레벨들도 이런 여행을 다녀보기를 권합니다. 누군가 다 정해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장소만 옮겨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일 뿐, 그 나라의 교통체계가 어떤지, 유통 체계는 어떤지 등을 체험하기 어려운 만큼 또다시 추려진 정보만 접하게 될 뿐이니까요. 약자가 되면 모든 감각이 열리는, 동시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낯설고 무능력한 존재인가라는 한시적인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을 혹은 꽤 오랜동안 경험해보지 못했을 시간일겁니다.

* 옛날 임금들 중에 암행을 다녔던 이야가도 종종 듣습니다. 라이트노벨이 원작인 만화 <약사의 혼잣말>에는 환관으로 알려진 권세있는 인물이 저잣거리에 나갈 때, 저잣거리에서 살았던 궁녀가 지적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아무리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향기와 머릿결이 다르다는 겁니다.

* 몇 차례 현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다고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그래도 이 나라가, 이 도시가 어떻게 체계를 갖추고 운영되는지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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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책 한권을 끝까지 보지 못합니다. 일책은 특히 더 그렇고, 개인 책도 그렇습니다.

읽다보면 흥미가 떨어져 자연스럽게 다른 데로 관심사가 옮겨가거나, 혹은 재미있지만 시간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멈췄다가 읽고 있었다는 걸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읽으려고 챙겨둔 책을 잊는 건 종종 일어납니다.

어쩌다보니, 올해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다른 활동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카페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고, 이런 글귀 저런 글귀도 끄적거리는 한가한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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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은 하이닉스가 만든 개념이 아닙니다. AMD가 게임에서 그래픽의 한계를 넘기 위해 고안한 설계였죠. 당시에는 시장이 작아 돈이 안되는 기술이었습니다. 라인 투자 대비 수익조차 불확실했어요. 하지만 하이닉스에게는 기회가 됐습니다. AMD와 협업 자체가 전략적인 모멘텀이었기 때문입니다.
리사 수 AMD CEO와는 여러 아젠다를 공유했습니다. 저는 급성장하는 중국에서 GPU 시장을 뚫어보자고 리사 수 CEO에게 제안했습니다. 정치• 정책적 솔루션을 만들어 새 시장을 노려보자는 전략이었어요. 결국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AMD가 가장 강력하게 밀었던 아젠다는 HBM 개발이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큰 수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파트너사의 요구가 있었고 만약 시장이 생기면 먹힐 만한 기술이라는 판단은 있어서 개발을 이어갔습니다. AMD도 일정 수요를 유지해 줬습니다. HBM 개발이 죽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던 데는 이 협력 관계도 동인이었죠.

- <최태원 노트: 우리는 길목에 서 있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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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CEO는 병목을 풀기 위해 ‘쿠다 CUDA‘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지만 AI 가속기의 퍼포먼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엔비디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병목이 두 가지 있습니다. HBM 칩과 패키지입니다. 칩도 스스로 개발할 수 있고, 패키지도 할 수 있겠지만 이 복잡한 칩을 양산이 가능한 70% 이상의 수율로 만들어낼 수 없어요. HBM도 대역폭 성능과 수율을 동시에 맞춰야 합니다. 엔비디아 가속기의 두 병목을 없애는 건 아직까지는 하이닉스와 TSMC만이 해줄 수 있습니다.
셋 중 어느 한 쪽이라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AI는 지금의 퍼포먼스를 낼 수 없었습니다. 단언할 수 있는 이야기에요. AI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자리에 세 회사가 있었고, 솔루션을 만들었기에 AI 시장이 탄생했습니다. 박자가 서로 맞았고 모두 나름의 베네핏 benefit (이득)을 얻었습니다. 하이닉스가 해내지 못했다면 엔비디아도, TSMC도 지금의 위치에 있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엔비디아는 2~3년에 걸쳐 칩을 개발하다가 이제는 추격이 불가능하도록 매년 새로운 칩을 내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데 그 속도로 따라와 줄 수 있는 회사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이닉스-엔비디아-TSMC의 삼각 구도는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AI 기술이 워낙 빠르게 확장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십이 생겨나거나 협력의 폭을 넓힐 수도 있죠.

- <최태원 노트: 우리는 길목에 서 있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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