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지즈코 작가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를 읽다보니, 떠오르는 책들이 있습니다.

만화 «이별의 병동»입니다. 다양한 고독사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품정리사» 등의 책이 있지만,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시기를 담은 «이별의 병동»이 인상깊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는 «느리게 마이너노트로»를 읽으려고 먼저 보고 있습니다. 수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작가 스스로가 후기 초고령자로 접어들면서 어떤 생각들은 유지되고 어떤 생각들은 바뀌는지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2025년도에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고학력 여성들에게 싱글로 살아온 우에노 지즈코 전 도쿄대 교수이자 작가가 관심의 대상이라고 해서 알게 됐습니다. 막상 국내에 처음으로 책이 소개됐을 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연결되는 세상이 재미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보다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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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를 없애자는 캠페인은 사후에 빨리 발견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사후에 빨리 발견되는 게 아니라 살아생전에 고립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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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관리사 시바타 씨는 작가 세토치 자쿠초 씨가 인용한 겐유 소큐의 소설 『아미타바(アミターバ-無量光明)』(2003) 속 문구를 나에게 들려줬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25m 수영장을 529번 채울 만한 물도 바로 끓게 할 정도의 에너지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넘겨준다’라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의심 많은 나는 ‘그걸 어떻게 측정할 수 있지?’라며 갸우뚱했지만, 시바타 씨는 죽은 자가 넘겨주는 에너지를 남아 있는 쪽이 받지 않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은 임종을 지키려는 것이 어차피 남겨지는 사람의 고집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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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면 오가사와라 씨는 "사람은 죽을 때를 고른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손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죽는다든지, 가장 좋아하는 요양보호사가 지켜볼 때 숨이 끊어지는, 정말 실화일까 싶은 에피소드를 수없이 들었다. "어떻게든 장남이 올 때까지 버텨달라"는 가족의 강력한 요구에 무리하게 연명 처치를 하는 일도 있다. 오가사와라 씨는 그동안 혼자 사는 사람을 수없이 간호했지만 혼자서 죽는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오가사와라 클리닉에서 혼자 사는 사람을 간호한 사례가 적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는 사례가 많이 쌓여서 세 자릿수에 달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는 사람도 있긴 하죠?"라고 물으니 "그렇죠, 이제 다양해요"라고 했다. 아무렴 그렇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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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자치 단체가 지킴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는 이유는 고독사라는 불명예스러운 보도를 피하고 싶어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또한 이 지킴 네트워크에는 함정도 있다. 지방 자치 단체는 1인 고령 가구를 대상으로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고독사는 2건 모두 1인 가구가 아니었다. 하나는 고령의 자매가 함께 실내에서 죽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고령의 어머니와 노년의 장애인 아들이 함께 죽어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먼저 쓰러지자 돌봄을 받지 못한 아들이 병고 끝에 죽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행정의 지킴 대상은 혼자 사는 고령자뿐이었다. 위 사례는 ‘가족이 있으면 안심’이라는 맹점을 찌른 경우다. 가족이 있어도 가족 전체가 지역에서 고립된 경우가 종종 있다. 정의상 1인 가구의 재택사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는 과연 고독사 통계에 집계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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