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주중에는 운전을 하지 않고, 주말이나 쉬는 날에 주로 운전을 합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만 타리라’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다보니 차를 운전하는 것이 꼭 필요해 어쩔 수 없이 운전을 시작한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러니, 예전과 지금의 운전 행태가 달라진 것에 대해서 조금은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세월은 지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서울 시내를 운전하다보면 놀라운 상황을 자주 접합니다. 한마디로 운전 실력이 하향평준화 됐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시내에서 앞 차와의 간격을 너무 넓게 두고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차 한, 두 대 정도는 신호를 놓치게 돼 정체가 더 심해집니다.

옆 차선과 합쳐질 때는 보통 지그재그로 갑니다. 즉 원래 차선에 있던 차 한 대가 가고, 합류하는 차선의 차가 한 대 가는 순서인데요, 이 경우도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직진 차선의 차가 절대로 순서를 안 내준다거나, 합류하는 차가 순서를 안 지켜 두 대, 세 대가 연속으로 진입하는 경우입니다.

우회전해야 하는 차량이라면 보통 제일 오른쪽 차선에서 기다립니다. 오늘 경험한 차량은, 무려 오른쪽에서 세 번째 차선에 있다가 옆 차선의 차를 가로막고 우회전을 하는 바람에, 복잡한 사거리의 긴 신호를 한 번 더 기다리게 됐습니다.

게다가 은근히 꼬리물기하는 차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동차전용 도로는 일반도로보다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차선을 바꿀 경우 뒤에서 오는 차량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변경하려는 차선의 뒤에서 오는 차량보다 같거나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하는데, 차선을 바꾼 뒤에 거북이로 가다보면 뒤에서 오는 차는 급하게 속도를 줄여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동차 전용 도로로 합류하는 길은 다소 구간이 길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달려오는 차량 앞에서는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합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길에 차를 주차해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치 한갓진 동네 일방통행 길 옆에 주차해놓듯이 한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마세라티 차량도 그 길에 주차한 경우를 봤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경우를 접했습니다만,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운전할때 결국 다른 차량을 배려하는 것이 사고를 막을 수 있어 내 차도, 내 시간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운전면허 시험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도로 주행 교육을 오래 받게 했습니다.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상식이 달라지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율주행차가 더 대중화된다면 이런 논의는 역사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될까요? 혹은 그렇더라도 속도를 좋아하는, 스스로 뭔가를 하지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속 운전을 하고 있을까요?

그저 내 차가 달리고, 나만 볼 일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게 아니라, 다른 차량을 보고 달리는 맥락을 이해하면서 운전한다면, 보다 운전하는 시간이 덜 위험하고 더 즐거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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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와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자동차는 은색이나 회색만 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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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 작가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를 읽다보니, 떠오르는 책들이 있습니다.

만화 «이별의 병동»입니다. 다양한 고독사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품정리사» 등의 책이 있지만,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시기를 담은 «이별의 병동»이 인상깊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는 «느리게 마이너노트로»를 읽으려고 먼저 보고 있습니다. 수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작가 스스로가 후기 초고령자로 접어들면서 어떤 생각들은 유지되고 어떤 생각들은 바뀌는지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2025년도에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고학력 여성들에게 싱글로 살아온 우에노 지즈코 전 도쿄대 교수이자 작가가 관심의 대상이라고 해서 알게 됐습니다. 막상 국내에 처음으로 책이 소개됐을 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연결되는 세상이 재미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보다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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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를 없애자는 캠페인은 사후에 빨리 발견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사후에 빨리 발견되는 게 아니라 살아생전에 고립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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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관리사 시바타 씨는 작가 세토치 자쿠초 씨가 인용한 겐유 소큐의 소설 『아미타바(アミターバ-無量光明)』(2003) 속 문구를 나에게 들려줬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25m 수영장을 529번 채울 만한 물도 바로 끓게 할 정도의 에너지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넘겨준다’라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의심 많은 나는 ‘그걸 어떻게 측정할 수 있지?’라며 갸우뚱했지만, 시바타 씨는 죽은 자가 넘겨주는 에너지를 남아 있는 쪽이 받지 않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은 임종을 지키려는 것이 어차피 남겨지는 사람의 고집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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