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 - <이기호의 말>에서
오히려 그보다 더 큰 게 있었다. 그것은 고독과의 의식적인 첫 만남이었다. 그 이전에도 고독이라는 단어를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책속에서 나는 고독이라는 이상한 단어와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뜻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겠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내 나름의 느낌으로 그것이 쓸쓸하다, 외롭다 등의 느낌과 어떤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글 속에서 사용되는 그 어휘의 쓰임새로 보아 고독이란 어떤 아름다움, 품위를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 <유년기의 고독 연습>(1987)중에서
늘상 가깝게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오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그 생활의 풍경 속에서 사라져버릴 때, 거기엔 얼마만한 아픔이 따를 것인가.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어느 날 우리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바로 그때,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더욱 어여쁘게 살아오른다. 마치 벽 그 자체처럼 익숙해져버린 벽에 걸린 그림이 어느 날 갑자기 치워졌을 때 그 사라진 부재의 자리가 벽 그 자체보다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듯, 그렇게 잠시 멀리 떠난 이들은 비어서 더욱 또렷한 모습을, 비어서 더욱 빛나는 자취를 이룰 것이다. - <비어서 빛나는 자리>(1986)중에서
아니 어쩌면 죽음까지도 삶의 일부이며, 삶의 자장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짧은 생각들>(198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