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을 옮길 때 모 기업의 신문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직원들과 봉사활동을 한 사진이 모 일간지 1면 하단 광고로 실린 것을 보면서, ‘광고할 돈으로 더 많은 곳에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을텐데‘하며 그 기업을 낮게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왔던 모기업의 ‘의인상‘도 떠올랐습니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 ‘의‘를 실행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 감당해야 할 몫으로 편치않을 때,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아는 대기업에서 와서 ‘감사하다‘라고 건네는 인사가 당사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응원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신문에 짤막하게 기사가 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다른 대기업도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고, 기사에 나옵니다.
어르신의 삶을 보면서 ‘선한 선순환‘은 비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행함에서 나온다는 걸 새월의 힘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의인이시지 않을까요?
* 갑자기 한 달여 마음 속에 있던 노여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잊어버리자.˝
생존과 얽히는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쏟았던 시간과 마음에 대해
본전 생각이 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것까지만. 이제 놓으려고 합니다.
지금은 지금의 할 일을 하려고 합니다.
** ‘형평운동‘은 김장하 어르신에 대해 접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취지를 가진 운동이었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포괄하고 있는 다양한 불평등에 대해
자각하고 없애나가야 한다는 것에 공감이 됩니다.
*** 진주 뿐 아니라 다른 지역 문화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뜬금없지만, ‘진주난봉가‘에 나오는 인물은
어느 한 사람일까요?
공통된 모습이 반영된 걸까요?
‘진주난봉가‘로 인해 진주의 문화에 대해
별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아요.
기방 문화로 인해 발달했던
냉면과 육전에 대해서는 들어봤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가 봉사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봉사를 할 것인가를 느끼게 해 줍니다. 요새 만 원 어치 봉사를 하면서 고아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백만원어치 피알(PR)을 한다든지, 그 봉사의 가치를 되받으려 한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고 봉사를 한다든지, 이런 봉사의 개념에서는 정말 맞지 않는 이 스님의 이야기를 우리는 떠올려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김장하 선생, 2008년 9월 25일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회 녹취록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