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본 후, ‘환대’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그 전에는 도로시 데이 여사의 ‘환대의 집’이었습니다.
내겐 환대, 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한정희와 나>중에서
어수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때도 있었고, 이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썼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런 소설들을 되풀이해서 읽었으며, 주변에 널려 있는 제각각의 고통에 대해서, 그 무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자 노력했다. (…)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 나는 그런 글들을 여러 편 써왔다. - <한정희와 나>중에서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 - <이기호의 말>에서
오히려 그보다 더 큰 게 있었다. 그것은 고독과의 의식적인 첫 만남이었다. 그 이전에도 고독이라는 단어를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책속에서 나는 고독이라는 이상한 단어와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뜻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겠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내 나름의 느낌으로 그것이 쓸쓸하다, 외롭다 등의 느낌과 어떤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글 속에서 사용되는 그 어휘의 쓰임새로 보아 고독이란 어떤 아름다움, 품위를 간직하고 있는 듯 보였다. - <유년기의 고독 연습>(1987)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