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아날로그 그림의 아름다움과 오십대의 출발을 알려준 만화 <동경일일>
- 직장인이 본 사실적 묘사를 중심으로 4 / 5


만화가와 가장 가까운 인물들

초사쿠 작가의 어시스턴트는 십수년을 함께 해왔습니다. 작가의 딸(루나)이 막 태어났을 때도 있었고 6학년인 지금도 있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것 뿐 아니라 만화가의 생활도 챙기고 주변 인물들도 챙깁니다. 비내리는 어느날, 길에 쏟아진 사과를 보며 울컥합니다. 대학 때 자격증을 딴 학예사부터 도전해보겠다고 합니다.

초사쿠의 전 부인은 온통 마음이 만화에 가있어 이혼했지만, 이혼한 남편이 행복하지 않은지 걱정합니다. 딸은 반짝반짝하지 않지만 항상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빠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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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와 출판사 담당자 사이의 팀웍과 만화가의 선택


만화가와 출판사 담당자는 한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만화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출판사 담당자는 작품, 생활, 건강 등 모든 면에서 만화가를 보살핍니다. 만화 «중쇄를 찍자»에서도 나옵니다.


먼저, 시오자와씨는 진지하고 신뢰를 주는 담당자입니다. 옷차림도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늘 어깨에 메고 다니는 커다란 비즈니스 백팩이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제5화에서 비가 쏟아지는 마감날, 막차 직전에 받은 타치바나 레이코 선생님의 원고가 젖지 않도록 ‘웃옷으로 원고를 둘둘 싸더니’ 원고 위에만 우산을 씌우고 역으로 향합니다. 이십삼년간 담당한 작가를 매주 사흘씩 방문합니다. 인기 부진, 판매 부진으로 담당이 교체된 후라도 만화가들은 시오자와씨를 높이 평가합니다.


후배 하야시씨는 똑부러지는 커리어우먼입니다. 옷차림도 세련되고, 본인이 해야할 일에 명확하게 행동하는 편입니다. 갈등을 마다하지 않고 문제를 회피하지도 않습니다. 일단 알게되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문제를 풀어냅니다. 그래서 시오자와씨에게 상의해 아오키 작가가 ‘말투도 험하고’, ‘아직은 서툴며’, ‘하지만 마음속에는 부드러운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되자 숨지 않고 본인의 문제에 직접 부딪치며 준비하도록 하는 한편, 출판사에서는 편집장에게 주장해 작가가 원하는 주간지에 연재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연재하면서 인기를 얻어 표지 그림도 그리고 단행본도 많이 팔립니다. 아오키 작가의 담당이 된 후배가 힘들다고 하자, 시오자와씨에게 들은 내용에 자신의 경험을 추가해 후배에게 조언합니다.


만화가들은 출판 담당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시오자와씨가 찾아간 궁극의 만화가들은 각자의 입장이 다양합니다만 누구도 허투로 그를 대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존중하는 관계라는 게 아주 잘 드러납니다. 그래서 만화가들의 결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만화가들은 진심으로 거절합니다. 만화가들은 고마움과 현실적인 이유를 분리합니다. 자기의 만화를 인정해주고 존중한 담당자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인기작가로 만들어준 편집자와의 관계를 배신할 수 없다며 거절한 만화가(이이다바시 마치코 작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작가들은 각자의 이유로 닫아둔 만화의 문을 두드리러 온 시오자와씨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잊고 있었던 혹은 도망쳤던 만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깨닫고 다시 만화를 그리기도 합니다. 거동이 불편해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만화가는 작화에 필요한 참고도서를 사다달라며 적극적으로 그려냅니다(네코야마 쿠모타로 작가). 가사와 부업으로 일생 생활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것을 잃어가던 작가는 수락합니다(키소 카오루코 작가). 학습 만화로 생계를 이어가며 어머니를 병간호하던 작가는 여유가 없는 현실에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수락합니다(니시오카 마코토 작가). 형제의 죽음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작가는 다시 만화를 그립니다(이와타 카에루). ‘이윤 만을 추구하는 것에 한 치의 의문도 품지 않은 편집자들에게도 절망해’ 만화계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 원고를 청탁받은 걸 좋아하면서도 연재를 거절했던 작가는 창간호가 나온 후 만화를 그리기로 합니다(아라시야마 신 작가). 그건 창간호가 보여준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겠죠.


무엇보다 이 만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초사쿠 작가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만화가 인생을 겁니다. 조건부적인 게 아니라 연재 만화를 중단하고, 껍데기만 남은 게 아니라 빛나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죽을 때까지 계속할 수 있는 연재를 끝내는 일생을 건 결정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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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아날로그 그림의 아름다움과 오십대의 출발을 알려준 만화 <동경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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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자와씨의 이름 모를 입사 동기, 현실에서 낯설지 않은 동료


18화를 보면 시오자와씨의 동기가 하는 말을 통해, 어떻게 사실이 왜곡되고 윤색되는 지가 잘 보입니다. 또, 각자의 입장을 어떻게 담아내는 지도 보입니다. 회사에서도 이런 상황을 종종 마주합니다. 처음에는 ‘그게 사실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진심으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아, 저 사람이 저렇게 받아들인다는 선언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18화에 잠시 등장하는 동기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시오자와씨의 입사 시점부터 잡지 폐간까지의 서사를 풀어놓는 동기는 이름이 없습니다. 몇 마디 하지 않는 택시 기사도 이름이 있습니다. (‘타카다’입니다.) 아마도 어느 회사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원이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합니다. 정말로 직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강하든 약하든 이런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을 해내는 역량을 가진 구성원은 언제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런 인물들에 의해 끌어내려질 험지에 있습니다. 이래저래 실력있는 사람, 그러니까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늘 견제를 당하고 뽑혀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누가봐도 명확하게 콘텐츠에 대한 실력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다는 이유가 큰 것 같아요. 동기의 욕망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관리직으로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관리직에게도 어느 정도의 콘텐츠 역량은 필수입니다. 동기는 언론사와 출판사를 같은 선상에 놓습니다. 출판사에 입사한 후에 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만화광인 시오자와씨에게 질투를 느꼈습니다. 본인이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들에 대해 ‘수완이 좋거나 득실을 따지는 데 밝은 인간이 아니’라고 하며 ‘출세가도에서 일찌감치 낙오됐’다고 합니다. 의미는 ‘관리직으로 가지 않을‘ 사람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겠지요. 같은 단어지만 맥락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물론 모든 직장이 똑같지는 않겠지만, 각 회사마다 사용하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의미가. 회사에서는 ‘탁월한 성과’라고 했을 때 ‘만들어진 성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과가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성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새로 쓰는 성과인 것이지요. 라인을 타고 이익을 공유하기로 결의한 소집단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조직 내에서 관리직으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시장에서 즉 외부를 향해 더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는 관점에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소규모 이익 집단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즉, ‘나의 생존이 회사의 생존’이라는 이유를 붙여서 대의로 만드는 경우가 아주 자주 있습니다.
동기는 오랜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삼십년 만에 기회를 잡았습니다. ‘업계 평판도 좋고’ 유관부서에서도 접자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담당자도 계속하겠다고 의지를 보이는데, 입사 동기가 끝을 냅니다. 입사 이후 차근차근 확보한 의사결정권으로 폐간하자는 의견을 내고, 굳이 거기에 반대하면서 책임을 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로부터 암묵적인 동의를 얻었을 것 같습니다. 동기에게 시오자와씨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던 겁니다. 그게 입사 시점에 느꼈던 “열등감” 때문인지, 혹은 이번 폐간을 활용해 입지를 다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시오자와씨의 존재가 상대를 기분 나쁘게 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본인보다 뭔가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스스로 더 열심히 노력하거나 혹은 상대와 일을 잘 해나가기 보다, 나를 작게 느끼도록 만드는 그 사람이 없어지는 걸 속편하게 여기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기가 <코믹 던(dawn)>을 꼼꼼하게 보고 있는 장면과 그에게 줄을 서는 후배가 나옵니다. “뭐, 창간호 매상은 축의금 같은 거니까요. 진짜 승부는 2호부터죠.”라고 동기의 기상을 읽는 대사를 합니다. 삼십년간 만화계에서 일하면서 동기에게도 이제 안목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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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아날로그 그림의 아름다움과 오십대의 출발을 알려준 만화 <동경일일>
- 직장인이 본 사실적 묘사를 중심으로 1 / 5

* 만화를 보고 쓴 글입니다. 만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겐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4화에 나오는 일본 만화를 일일이 찾아서 올려놓은 글을 보고는 정말 대단한 만화 고수들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 보지 않은 만화였어요.

* 맨 처음 <동경일일>을 보고 감탄했던 건 안경 그림자였습니다. 안경테를 수리한 테이프와 못마땅할 때 미간에 잡히는 주름, 각자 다른 모양의 눈썹 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과 질감도 다시 볼 때마다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프로(Afro) 혹은 심한 곱슬머리를 두둥실 구름처럼 수채화로 질감을 표현한 것도 재밌었습니다. 삼층 건물을 한 컷으로, 때로는 땅에서 하늘까지를 삼단으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들도 좋았습니다. 디지털로 작화가 이루어지는 요즘에는 어떤 웹툰들은 색채나 그림과 구도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정성들인 펜선을 느낄 수 있는 그림과 독특한 구도와 구성에 눈이 머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읽을 때마다 내용과 인물을 조금 더 알게 됐습니다.


시오자와씨를 응원하며

시오자와씨는 틀림없는 사람이자 동료입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스승님이 알려주신 직장인의 두 가지 덕목은 “예측 가능하고 Predictable”하고 “일관되어야 Consistent”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란 업무를 하기위해 사람들과 만나는 곳인데도,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느라 회사 사람들을 자연인으로서 인간적인 관계에서 바라보기도 했던 시절에 해주신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업무를 하다보면 일어나는 일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기에, 기본적인 덕목에 대해서 알려주셨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시오자와 씨는 매우 좋은 동료입니다. 누구도 그의 특성과 특징에 대해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신입 시절부터 두드러지는 존재였습니다. 만화 잡지와 단행본을 출간하는 출판사에 취직했는데, 만화광인 그는 동기 누구보다 만화에 대한 전문지식도 높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삼십년동안 꾸준하게 다니던 직장을 제발로 걸어나오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덕업일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시오자와씨에게 만화 편집자로서의 삶은 ‘덕업일치의 삶’이었겠지요. ‘일신 상의 사유’로 사표를 냈고 수리가 됐습니다. 몇 차례 직장을 옮길 때 사표에 ‘일신 상의 사유로 사직을 희망합니다’라는 형식적인 문구를 썼습니다. 초기에는 뭔가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내는 게 구차해보이기도 했고, 나중에는 해볼 만큼 해봤고 말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안 맞는 사람이 떠나는 게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월급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직장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동의할 수 없는 회사의 의사결정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돈을 버는 것과 참아낼 수 있는 문화를 분리하고 싶었습니다.

30년간 다니며 전력을 다해 맡고 있던 일이 회사에 적자를 끼쳤다고 했을 때, 모두 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올까요 혹은 나와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30년간 한 직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명확한 업무를 하며 다녔다는 것은 그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것이고, 잡지를 맡겼다는 것은 그의 전문성과 역량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만화책을 만드는 일을 한 적은 없어 월 혹은 연간 얼마짜리 예산이 들어가는 업무를 맡겼는지는 모릅니다만,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시오자와씨의 역량을 높이 샀기 때문에 그 일을 맡겼겠지요. 그리고, 잡지를 내기로 결정한 것도, 그에게 맡긴 것도 회사이니, 책임도 회사에서 지는 게 맞겠지요. 회사 전체의 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다면, 통상 이런 경우에는 흑자를 보는 어떤 사업(잡지, 단행본)과 적자를 보는 어떤 사업(잡지, 단행본) 사이에서 정리를 하게 됩니다. 적자를 안고 사업을 계속할 지, 혹은 접을 지에 대해서요. 회사의 존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실패한 어떤 일은 정치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의미있는 시도가 되어 새로운 시도를 한 탁월하고 용기있는 사람으로, 어떤 경우에는 보복성으로 무능력한 사람으로 정리가 되겠지요.

사표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시오자와씨가 받은 월급보다 회사에 벌어다 준 돈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기 작가로 연재를 하고 있는 초사쿠 씨를 발굴하고 23년 동안 담당을 했으며, 신인 아키오 작가도 가능성을 알아보고 담당을 하면서 책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키오 작가는 나중에 후배 히카리가 담당하면서 <은빛텐트>라는 히트작을 내게 됩니다.) 담당했던 기간에 인기를 얻을 수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의 안목으로 돈이 되는 작가로 성장한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안목은 이미 높은 경지에 있다고 직장 내에서 인정받았을 겁니다.

하나 더 언급한다면, 폐간된 잡지 <코믹 밤(夜)>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창간을 준비하면서 편집장인 ‘시오자와 씨가 거의 대부분 설득해서 따낸 연재 작품들이 실려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라인업이 더 없이 훌륭했고, 작품은 더더욱 좋았겠지요. 그런 구성으로 잡지를 낼 수 있는 편집장은 아마도 시오자와 씨 말고는 없었겠지요. 출판사 내에서 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도요. 출판사에서도 그런 상징적인 잡지를 지속적으로 발간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최종 폐간하기로 결정이 났고, 육개월 후 시오자와 씨는 사표를 냅니다.

마지막 출근하는 날, 시오자와씨는 이십삼년간 일주일에 사흘씩 만나온 초사쿠 작가를 만나 사표 낸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힘써주신 작가분들께 큰 폐를 끼치고 말았어요… 이게 제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고. 분명 거짓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이게 정말 다였을까요?

실제 시오자와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삼십년간 다닌 회사에서 관리직 트랙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만화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만은 누구보다 인정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담당했을 때 인기를 얻는 단행본도 있고, 인기를 얻지 못하는 단행본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며 회사 내에서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겁니다. 회사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지만, 동의할 수 없었을 겁니다.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에 부딪쳤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아마도 만화가와 함께 책을 만드는 현역의 즐거움이지 않았을까요? 늘 책을 만들어오던 사람이었으니까요.후배 편집자 히카리 씨와 아오키 작가가 대립하는 초기에 자신에게 SOS를 치는 두 사람을 보며 존재감을 느끼기도 하고, 한편 현역들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선배로서 후배가 상담을 해오고, 실무에 대한 조언을 할 수 있을 때는 왠지 기쁜 마음에 공감했습니다.

‘폐간의 쓴맛을 봤던 건, 제가 독자와의 괴리를 인식하지 못한 탓입니다.’라고 했지만, 결국 창간한 <코믹 던(dawn)>도 별로 달랐을 것 같지는 않아요. 좋은 작가가 그리는 좋은 작품은 독자들에게 닿을 거라는 믿음이 변치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코믹 밤(夜)>보다도 더 타협하지 않고, 독자와의 괴리를 인식하기보다 좋은 작품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하는 궁극의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코믹 던(dawn)>을 창간하니까요.

시오자와씨는 아마도 현실에서는 희귀해진 편집자가 아닐까 합니다. 만화가의 입장에서는 아주 귀한 존재이겠지요. 작품 고유의 색깔을 기억하고, 좋은 점과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 정확하게 짚어내고, 예의바르지만 때론 부딪치면서 전달할 줄도 아니까요. 그러면서도 만화가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동료가 있다면, 지켜주고 싶을 것 같습니다. (마츠모토 타이요 작가에게 시오자와씨와 같은 편집자가 있었는지, 혹은 이런 편집자가 있었으면 하는 상상인지는 나중에 만난다면 물어보고 싶습니다.)

미디어에서 회자되듯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개업하거나 투자를 하지않고, 정말로 좋아하는 만화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잡지를 창간하면서 현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퇴직 후의 삶이 부럽기도 합니다. 뻔한, 다시 말하면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가는 시오자와씨의 제 2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시오자와씨가 새로 시작한 퇴직 후의 삶이 다른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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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읽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인물이 개성있어 유쾌하게 읽는 편입니다. 추리 소설을 계속 쓸거라고 하니, 후편이 기다려집니다.

«시선으로부터»,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을 읽었고, «아라의 소설»과 «옥상에서 만나요»는 읽다가 중단한 상태입니디.

* 정세랑 작가의 추천 덕분에 찬호께이 작가의 «13•67»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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