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실점으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가장 어두운 페이지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 그를 지탱한 것은 두 개의 테이프였다. 하나는 <겨울 나그네>에 녹음된 소리들. 다른 하나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한 편씩 빌려 보던 비디오테이프였다. 어느 정도 영화들을 보고 나니, 그녀와 자신 사이에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인류가 수없이 되풀이해온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이야기.
<풍화에 대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