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학교에 혹은 집까지 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잘 왔다‘는 느낌을 주는 환대가 첫 단추다.

아이들의 등교와 귀가는 환영의 의례가 되어야 한다. 환대 여부는 환영에서 판가름이 난다. 환영받는 존재라는 느낌, 인사를 해주는 것, 잘왔다고 해주는 것이 환대의 핵심이다. 그리고 정말 아이들이 온 것은환영해줄 만한 일이다. 환영의 방식은 다양하다. 온 것을 알아주는 일부터 오늘도 잘 지내보자는 하이파이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달라는 당부, 혹시 중간에 가고 싶으면 꼭 말하라는 안내까지,
친절함은 환영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아침부터 괜히 오지 말아야할 곳에 와 있다는 느낌, 빨리 나가고 싶은 곳에 할 수 없이 얹혀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면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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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뭘 좋아하니?˝하는 질문조차 답을 찾는 데 힘겨워 하는 아이들도 있다.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고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으니까.

"지금까지 저는 엄마, 아빠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짜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였지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수학과 영어는 기본이고 피아노 미술, 발레 학원에 다녀야 했어요.
중학교 때도 그렇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학원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여전히 엄마의 계획표대로 살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잘한다, 천재다 하는 말을 듣는 게 재미있어서 했는데 지금은 제가 좋아서 하는 건지 시켜서 하는 건지 잘 모르겠고 정말로 제가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그동안 아무 색깔도 없이 그냥 맹물처럼 산 것 같아요."
‘맹물처럼 살았다‘는 이 한 마디는 아이의 현재 삶과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다. 부모의 기대가 들어올 때는 물감이 퍼지듯이 자기도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것이 탁 가라앉는 것 같다고 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서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리 내 색깔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봐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역설적이게도 자기 인생은 온통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게 만드는 과정‘이었고 그 대신 영어와 수학을 억지로 좋아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고도 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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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무기력은 마음의 굳은살이다.
발꿈치에 굳은살이 배기듯 상처처럼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상처들이 쌓여 무기력이라는 굳은살이 생긴다. 보들보들한 새살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 수분을 공급해야 한다. 굳은살을 폭력적으로 떼어내는 일은 또다른 피흘림의 과정일 뿐이다.

사랑한다는 신호가 성가시고, 믿을 수 없고, 어색해진 무기력 아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이면서 잘해보려고 해도 싫다고 도망가는 것은이미 앞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애착 관계에서 받은 좌절감이 마음에 고착돼서 관계를 맺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만이 방법이다. 혹시라도 열정적인 교사가 무턱대고 "네가 과거에 이런 경험 때문에 지금 무기력하게 지내는것 같은데 우리 잘할 수 있어. 자, 하이파이브!" 하면서 다가가면 아이는 어이없어하며 "저한테 왜 이러세요?"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갈지 모른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관계를 맺는 것, 무기력하게 지내지 않는 것이 더어색하다. 오랫동안 불행하게 지낸 사람들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면 어색하게 여기는 것처럼 누가 나를 긍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이럴 때
‘어, 잘해보자는데 얘가 뻗대네?‘ 하고 금세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면 아이는 더 움츠러들고 피하다가 아예 학교에 안 나오게 될 것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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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을 부르는 과잉보호. 과잉하지 않은 보호와 관심 사이, 바른 부모됨은 줄타기 같다.

부모의 과잉보호, 대신해주는 ‘지나친 사랑‘이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해악이 너무 크다. 아이의 정신과 감정과 능력은 가짜라서 원래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부터 성취를 시작해야 한다. 달리기로 말하면 다른 선수가 대신 뛴 것이니 실격 처리가 되었다. 이미 경주를 시작한 선수들 뒤에서 새로 뛰려니 너무 까마득해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심정과 똑같다.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자신의 체면이 중요하거나 자녀의 고통을 참지 못하는 지나친 동일시가 과잉보호를부른다. 그리고 결과는 아이의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나타난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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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지킬 아이와 동네 지킬 아이가 갈리는 중2. 그래서 중2병을 앓는다, 온 나라가.

요즘에는 상담자 가운데 중학생 때부터 애써 고달프게 살지 않으려고 서둘러 포기하고 무기력 노선을 취하는 사례가 많아서 이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까 한다. 잘 알다시피 중학교 2학년을 전후로 특목고로 진학할 것인가 일반고로 갈 것인가가 나뉘는데 많은 이들이 여기에 대해서 교사나 부모의 걱정이 아이가 하는 고민의 강도보다 셀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강도가 훨씬 세다. 나와 상담한 아이가 하는 말은 이랬다. 
"나라를 지킬 아이들과 동네를 지킬 아이들이 중학교를 기점으로 나눠진다고 해요. 특목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나라를 지키며 국가를 위해 살 아이들이고 저 같은 아이는 그냥 내 한 몸 버티고 사는 것이나 가능할지 의문이에요."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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