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기에 너무 사소한 일은 없다.

우리의 깨진 인생을 고치시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해 가시는 하나님께 "이건 시시합니다", "그건 너무사소한 일이에요"."좀 더 중요한 일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큰 잘못이다. 중요한 것은 일의 크기가 아니라 순종하려는 마음의 깊이다. 우리가 끝까지 거부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대부분 이런 ‘작은 일‘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자신에게 하는 말을 바꿔 말하면 이렇다. "이건 시시해. 내 문제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라면 마땅히 모든 것의 주님이 되셔야 한다.
나는 상담 사역을 하면서 일부 내담자들이 이런 형태의 만약 ~만 했더라면‘을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하나님을 탓하는 구실로 사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매일매일 조용히 들려주시는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으면서 굉장한 계시(표적과 기사)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정말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어. 하나님이 더 분명히 보여 주셨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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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직면하게 하는 사랑.

세 번째 사람은 경우가 다르다. 그는 예수님이 전에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에 대해 물었던 부자 청년 관원 말이다. 마가는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라고 썼다. 패기 있 는 인상, 뭔가를 추구하는 마음, 영적 잠재력을 본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셨는가? 그의 좋은 자질을 칭찬하셨는가? 아니다. 이 청년이 갖추지 못한 점을 그 자리에서 지적하심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 10:21).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여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듣기 좋은 말만 하실 수는 없었다. 책임을 직면하게 만들려다가 젊은이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각오하실 만큼 그를 사랑하셨다.

브레넌 매닝은 "예수님의 엄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고, C. S. 루이스도 영적 스승인 조지 맥도널드에게서 빌려 온 ‘하나님의 냉정한 사랑‘이라는 인상적 표현을 종종 사용했다. 행동으로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인자와 긍휼이 풍성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사랑이다. 상대의 심각 한 도덕적 문제를 못 본 체 외면하는 사랑은 참된 아가페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알맹이 없는 사랑이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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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예수의 고난을 잔인하리만큼 낱낱이 적어 놓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애슐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렇게 깊은 상처와 분노에도 불구하고 애슐리는 그런 원한이나 미움이 자기 마음속에 집을 짓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으니 정말 기적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 주님도 배반당했고, 버림받았고, 짓지도 않은 죄를 추궁당했으며, 고통 가운데서 절규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마다 마음에 되새겼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애슐리의 감정을 아신다는 것, 그분과 함께라면 어떤 감정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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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자들과 한몸이 되신, 그러나 부활과 동행의 약속이 되신 예수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은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은 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깊다. 그러나 궁극적이고 가장 깊은 동일시 사건은 예수님이 백성에게 멸시와 외면을 받고 제자들에게 부인당하 고 버림받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그분께 철저히 버림받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통스러운 절규였건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하늘은 침묵을 지켰을 뿐 아니라 마치 텅 빈 듯 보였다(막 15:33-34).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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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탓해본 이들과 한몸이 돼주신, 그리고 구원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와 온전히 동일시하기 위해서 피해자가 되셔야 했다. 각기 모양은 달라도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않은 선택, 내가 일으키지 않은 사고,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유전자 결손, 내가 회피할 수 없었던 정서적 역기능, 내가 초래하지 않은 영적 문제, 내가 감당할 몫이 아닌 심판 등의 결과로 인해 우리 모두 고통당하고 있다. 우리 대다수는, 우리 내면의 저 깊고 어두운 곳에서, 이른바 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그러면서도 사랑이 충만하다는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셨는지 고통스럽게 절규해 본 적이 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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