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을 걷어내야 기적도 벌어질 수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래들 사이에서, 사회적 영향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이른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기적처럼 "당장 일어나 걸어!"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벌떡 일어난다거나 차갑게 식었던 심장이 뜨겁게 뛰지는 않는다. 결과로서 나타난 무기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면 우리는 아무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조바심은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채찍이 되어 더 무기력한 상태를 만들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분한 마음으로 심사숙고하면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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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고 혼나느니 안 하고 혼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그들에게는 그게 합리적인 결론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

"저한테는 할 만한 힘이 없다니까요."
"할 만한 힘이 없다는 게 무슨 소리야? 뭐, 영양실조에라도 걸렸어?"
"저는 지금 인생을 살아갈 힘이 없다고요."
이 말은 살아갈 힘, 인생을 헤쳐나갈 힘이 없다는 뜻이다. 도대체 상황과 현실이 어떻기에 고등학교 1학년짜리가 살아갈 힘이 없다고 말하는 걸까? 그런데 우울감에 빠진 만성적 무기력 아이들에게서는 이런 감정이 흔하게 나타나고 대체로 결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기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은 백이면 백, 했는데 잘못해서 혼나는 것과 끝까지 안 하겠다고 하다가 혼나는 것 가운데 후자가 상처를 덜 받는다고 말한다.
차라리 안 하고서 혼나는 게 상처를 덜 받는다니 얼마나 가여운 일인가. "오늘 내가 왜 선생님한테 안 한다고 했다가 혼난 줄 알아? 그건 내가 기분이 나빠서 안 하기로 했기 때문이야." "오늘 내가 혼난 이유는 내가 못했기 때문이야." 두 가지 이유 가운데 아이들은 후자, 하고도 잘 못해서 혼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즉, 무기력한 아이들은 대체로 "선생님, 저 못해요"보다 "전에 해봤는데 지금은 하기 싫어서 안 할래요"를 선택한다.
다 같은 무기력이라고 해도 아이들이 지닌 근본적인 원인에 따라 문제도 나타나는 현상도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아이가 무기력해진 사연을 잘 듣고 원인이나 과정이 어땠는지를 파악하고 나서 어떤 아이는 계단을 놓아주거나 힘을 실어줌으로써, 또 어떤 아이는 평가하지 않는 방식이나 평가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적용해서 불안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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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궁에 대해 대답이 없다는 건 이미 무기력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일 수 있다. 곪은 상처에 대고 왜 아프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민감한 부모나 교사라면 열정, 동기, 흥미를 잃어가는 아이에게 촉수를 세우고 아이를 위한 변화를 함께 모색해가지만 대부분 어른들이 하는 일이란 무기력한 아이를 혼내는 것이다.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에게 자신의 끓어오르는 열과 화를 못 참고 실컷 혼을 낸 다음에는 아이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미 무기력해졌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른도 덩달아 무기력해져서 이제 아이를 포기해야 하나 싶어 자포자기하게 된다.
아이들이 무기력해지는 과정에 대한 민감함,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들에 대한 세심함, 이런 섬세한 배려 없이는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을 막을 수도 없고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들에 대한 변화를 만들기도 어렵다. 무기력한 아이들이 청년이 되면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삶을 되찾기 위해 정말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 어른들의 둔감함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 악순환은 현재진행중이며 아마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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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은 소리 없는 비명. 소리가 없기에 눈으로, 관심으로 들어야 한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다 싫어."
"나 좀 그냥 내버려둬."

이런 이야기를 자녀나 학생들에게 들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가끔씩 툭툭 내던지는지, 그것도 아니면 매일 입에 달고 사는지? 그렇다면 응급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명이요, 무기력한 아이들의 침묵은 더 큰 마음의 목소리다. 희망없음 hopeless,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helpless임을, 자신을 포기하고 싶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듣고 있나? 불복종으로 들리는가? 게으름을 허락해달라는 투정으로 들리는가? 회피하고 싶다는 비겁함으로 느껴지나?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라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고 있나? 그럼 숨은 왜 쉬고 먹기는 왜 먹느냐고 할 것인가?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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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입시 시스템. 그것만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납득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입학한 아이들에게만 기회와 관심, 사랑을 주는 시스템이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채 이어지고 있다. 아니, 더 가속화하고 심원해졌다고 할 수 있다(경제학자 및 사회학자들은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이런 현상의 가속화에 더욱 불을 붙였다고 주장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만 학교 독서실을 이용할 수 있는가 하면 전교 1등부터 50등까지만 햇살이 잘 드는 교실에 앉아 온갖 서비스를 받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성적에 따라급식 순서를 달리하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이 혹독한 차별과 경쟁은 헝거 게임과 다름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살아남는 자만이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승자는 승자대로 불행해지고 다수의 패자는 패자이기에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다수가 패자의 위치, 성공의 뒤안길에서 도태당한 느낌에 빠져 지낸다. 어찌 보면 참 식상한 이야기 같지만 그 결과 상당수 아이들과 청년들은 현재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지금 사회의 방식은 바로 무기력 시스템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 을 시작하는 첫 번째 화두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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