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궁에 대해 대답이 없다는 건 이미 무기력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일 수 있다. 곪은 상처에 대고 왜 아프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민감한 부모나 교사라면 열정, 동기, 흥미를 잃어가는 아이에게 촉수를 세우고 아이를 위한 변화를 함께 모색해가지만 대부분 어른들이 하는 일이란 무기력한 아이를 혼내는 것이다.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에게 자신의 끓어오르는 열과 화를 못 참고 실컷 혼을 낸 다음에는 아이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미 무기력해졌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른도 덩달아 무기력해져서 이제 아이를 포기해야 하나 싶어 자포자기하게 된다.
아이들이 무기력해지는 과정에 대한 민감함,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들에 대한 세심함, 이런 섬세한 배려 없이는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을 막을 수도 없고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들에 대한 변화를 만들기도 어렵다. 무기력한 아이들이 청년이 되면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삶을 되찾기 위해 정말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 어른들의 둔감함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 악순환은 현재진행중이며 아마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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