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을 부르는 과잉보호. 과잉하지 않은 보호와 관심 사이, 바른 부모됨은 줄타기 같다.

부모의 과잉보호, 대신해주는 ‘지나친 사랑‘이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해악이 너무 크다. 아이의 정신과 감정과 능력은 가짜라서 원래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부터 성취를 시작해야 한다. 달리기로 말하면 다른 선수가 대신 뛴 것이니 실격 처리가 되었다. 이미 경주를 시작한 선수들 뒤에서 새로 뛰려니 너무 까마득해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심정과 똑같다.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자신의 체면이 중요하거나 자녀의 고통을 참지 못하는 지나친 동일시가 과잉보호를부른다. 그리고 결과는 아이의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나타난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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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지킬 아이와 동네 지킬 아이가 갈리는 중2. 그래서 중2병을 앓는다, 온 나라가.

요즘에는 상담자 가운데 중학생 때부터 애써 고달프게 살지 않으려고 서둘러 포기하고 무기력 노선을 취하는 사례가 많아서 이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까 한다. 잘 알다시피 중학교 2학년을 전후로 특목고로 진학할 것인가 일반고로 갈 것인가가 나뉘는데 많은 이들이 여기에 대해서 교사나 부모의 걱정이 아이가 하는 고민의 강도보다 셀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강도가 훨씬 세다. 나와 상담한 아이가 하는 말은 이랬다. 
"나라를 지킬 아이들과 동네를 지킬 아이들이 중학교를 기점으로 나눠진다고 해요. 특목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나라를 지키며 국가를 위해 살 아이들이고 저 같은 아이는 그냥 내 한 몸 버티고 사는 것이나 가능할지 의문이에요."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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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드러날까봐 더 아이를 몰아붙이지는 않았나.

바라는 것은 많고 뜻대로 되지 않음을 고백하는 어른들이 내는 화는 과연 그 과녁이 어디일까?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위니캇은 이렇게 말했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어른들은 사실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어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다층적일 수 있다. 첫째, 무기력한 아이들을 변화시킬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데서 생기는 화, 즉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에 화를 내는 것이다. 둘째, 아이들에게 결핍해 있는 희망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화, 현재 무기력한 아이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아이가 포기하거나 하고 싶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하나의 길 말고는 알고 있는 것이 없으며 그 길을 벗어난 새로운 길에 대해서는 한없는 공포심을 갖는다. 셋째, 무기력한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있는데 그 두려움에 대한 화. 체면, 생존, 부담에 대한 회피일 수도 있다. 조금 편하게 살고 싶은데 끝 없는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힐 일에 대한 화이기도 한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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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을 걷어내야 기적도 벌어질 수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래들 사이에서, 사회적 영향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이른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기적처럼 "당장 일어나 걸어!"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벌떡 일어난다거나 차갑게 식었던 심장이 뜨겁게 뛰지는 않는다. 결과로서 나타난 무기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면 우리는 아무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조바심은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채찍이 되어 더 무기력한 상태를 만들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분한 마음으로 심사숙고하면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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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고 혼나느니 안 하고 혼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그들에게는 그게 합리적인 결론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

"저한테는 할 만한 힘이 없다니까요."
"할 만한 힘이 없다는 게 무슨 소리야? 뭐, 영양실조에라도 걸렸어?"
"저는 지금 인생을 살아갈 힘이 없다고요."
이 말은 살아갈 힘, 인생을 헤쳐나갈 힘이 없다는 뜻이다. 도대체 상황과 현실이 어떻기에 고등학교 1학년짜리가 살아갈 힘이 없다고 말하는 걸까? 그런데 우울감에 빠진 만성적 무기력 아이들에게서는 이런 감정이 흔하게 나타나고 대체로 결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기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은 백이면 백, 했는데 잘못해서 혼나는 것과 끝까지 안 하겠다고 하다가 혼나는 것 가운데 후자가 상처를 덜 받는다고 말한다.
차라리 안 하고서 혼나는 게 상처를 덜 받는다니 얼마나 가여운 일인가. "오늘 내가 왜 선생님한테 안 한다고 했다가 혼난 줄 알아? 그건 내가 기분이 나빠서 안 하기로 했기 때문이야." "오늘 내가 혼난 이유는 내가 못했기 때문이야." 두 가지 이유 가운데 아이들은 후자, 하고도 잘 못해서 혼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즉, 무기력한 아이들은 대체로 "선생님, 저 못해요"보다 "전에 해봤는데 지금은 하기 싫어서 안 할래요"를 선택한다.
다 같은 무기력이라고 해도 아이들이 지닌 근본적인 원인에 따라 문제도 나타나는 현상도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아이가 무기력해진 사연을 잘 듣고 원인이나 과정이 어땠는지를 파악하고 나서 어떤 아이는 계단을 놓아주거나 힘을 실어줌으로써, 또 어떤 아이는 평가하지 않는 방식이나 평가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적용해서 불안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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