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생각을 나눌 어른이 없어서 방황하는 것.. 누가 어떻게 다가가 말을 건넬 텐가

무기력한 아이들의 공허감은 의미 있는 관계를 통해 자기 세계에서 삶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데서 심화된다. 아이들의 세계에는 놀아주는 친구를 제외하고 상담해줄 만한 타인이 부족하다. 나와 함께 세계와 미래를 논하고 나를 상처주지 않으며 거울에 비쳐줄 수 있는 대상의 결핍으로 인해 아이들은 공허 속에 계속 머물러있어야 한다. 부모가 채워주던 세계를 벗어나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야하는 전환기에 이 결핍은 허무와 부재로 남는다. 라캉이 ‘나는 너다‘라고 한 것처럼 한 사람의 정체성은 타인인 수많은 ‘너‘를 경험하며 ‘나‘를 형성하는데 정말 중요한 ‘너‘의 기근으로 인해 아이들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청소년기에 멘토나 은인은 ‘너‘를 일깨우는 중요한 대상이자 사다리다. 현명한 어른이라면 아이들에게 좋은 멘토를 만날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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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말 걸어주는 믿을 만한 단 한 사람의 어른. 우리 시대의 문제는 그 한 사람의 결핍이다.


많은 아이들이 무기력해진 이유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크고 작은 역경을 이겨내지 못해서거나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에 대한 또 다른 연구는 아이를 도와서 위기를 이겨낸 과정에 대한 내용인데 특히 위기를 이겨낸 아이들에 대한 연구는 지난 몇 십 년간 지속되어 왔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에미 베르너 Emmy E. Werner와 루스 스미스Ruth S. Smith의 연구인데 그들이 제시한 ‘위기를 이겨낸 사람들의 7가지 보호 인자‘ 가운데는 주변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즉, 책임 있는 보호자가 한 명 있고, 지지적인 관계망이 주변에 뻗어 있으며, 관심을 보인 어른이 가족 말고도 있었다. 또 행복한 결혼생활과 만족스러운 직업, 신앙생활 등이 회복탄력에 기여한 요인들이었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관계망, 특히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어주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나도 진료실에서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너를 따뜻하게 해주는 어른, 의지하고 싶은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니?"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아이가 없다고 대답한다. 엄마는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거나 자기보다 더 힘들어해서 의지하기 어렵고, 아버지는 잘해주기는 하지만 친밀한 사이가 아니고, 학교 선생님들은 너무 멀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 말은 곧 현재 무기력한 아이들은 주변에 따뜻한 한 명의 어른이 없다는 말이다. 부모를 포함해서 아이들 주변에 있는 사람은 온통 차가운 어른들뿐이고 학교나 종교·지역 단체에서 찾기도 힘든 실정이다. 아이들의 생활은 극히 단조로워서 집, 학교, 학원의 삼각 포스트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결국 만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위기를 이겨낼 자원이 없어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쉽게 무기력 상태로 진입할 수밖에 없어진다. 아이들 말대로 인터넷과 친구가 유일한 에너지 보급원인데 근근이 버틸 수는 있지만 힘차게 차고 일어날 정도의 힘은 되지 못 한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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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학교에 혹은 집까지 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잘 왔다‘는 느낌을 주는 환대가 첫 단추다.

아이들의 등교와 귀가는 환영의 의례가 되어야 한다. 환대 여부는 환영에서 판가름이 난다. 환영받는 존재라는 느낌, 인사를 해주는 것, 잘왔다고 해주는 것이 환대의 핵심이다. 그리고 정말 아이들이 온 것은환영해줄 만한 일이다. 환영의 방식은 다양하다. 온 것을 알아주는 일부터 오늘도 잘 지내보자는 하이파이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달라는 당부, 혹시 중간에 가고 싶으면 꼭 말하라는 안내까지,
친절함은 환영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아침부터 괜히 오지 말아야할 곳에 와 있다는 느낌, 빨리 나가고 싶은 곳에 할 수 없이 얹혀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면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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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뭘 좋아하니?˝하는 질문조차 답을 찾는 데 힘겨워 하는 아이들도 있다.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고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으니까.

"지금까지 저는 엄마, 아빠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짜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였지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수학과 영어는 기본이고 피아노 미술, 발레 학원에 다녀야 했어요.
중학교 때도 그렇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학원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여전히 엄마의 계획표대로 살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잘한다, 천재다 하는 말을 듣는 게 재미있어서 했는데 지금은 제가 좋아서 하는 건지 시켜서 하는 건지 잘 모르겠고 정말로 제가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그동안 아무 색깔도 없이 그냥 맹물처럼 산 것 같아요."
‘맹물처럼 살았다‘는 이 한 마디는 아이의 현재 삶과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다. 부모의 기대가 들어올 때는 물감이 퍼지듯이 자기도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것이 탁 가라앉는 것 같다고 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서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리 내 색깔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봐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역설적이게도 자기 인생은 온통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게 만드는 과정‘이었고 그 대신 영어와 수학을 억지로 좋아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고도 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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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무기력은 마음의 굳은살이다.
발꿈치에 굳은살이 배기듯 상처처럼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상처들이 쌓여 무기력이라는 굳은살이 생긴다. 보들보들한 새살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 수분을 공급해야 한다. 굳은살을 폭력적으로 떼어내는 일은 또다른 피흘림의 과정일 뿐이다.

사랑한다는 신호가 성가시고, 믿을 수 없고, 어색해진 무기력 아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이면서 잘해보려고 해도 싫다고 도망가는 것은이미 앞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애착 관계에서 받은 좌절감이 마음에 고착돼서 관계를 맺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만이 방법이다. 혹시라도 열정적인 교사가 무턱대고 "네가 과거에 이런 경험 때문에 지금 무기력하게 지내는것 같은데 우리 잘할 수 있어. 자, 하이파이브!" 하면서 다가가면 아이는 어이없어하며 "저한테 왜 이러세요?"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갈지 모른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관계를 맺는 것, 무기력하게 지내지 않는 것이 더어색하다. 오랫동안 불행하게 지낸 사람들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면 어색하게 여기는 것처럼 누가 나를 긍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이럴 때
‘어, 잘해보자는데 얘가 뻗대네?‘ 하고 금세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면 아이는 더 움츠러들고 피하다가 아예 학교에 안 나오게 될 것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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