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과를 밭으로 끌어들인 고마운 선배들이여

세 번째 단계는 재배하기 훨씬 어려웠던 과실수-사과, 배, 서양자두, 체리 등-였다. 이 나무들은 꺾꽂이로 재배할 수 없다. 그리고 종자로 재배하려는 노력도 헛수고에 불과하다. 아무리 훌륭한 개체의 후손들도 제각기 변동이 심해서 쓸모없는 열매만 내놓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나무들은 접목법이라는 까다로운 기술로 재배해야만 했다. 이 방법은 농업이 시작되고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중국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접목법은 일단 그 원리를 알더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원리 자체도 의식적인 실험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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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도 세대를 거듭할수록 몸집이 커지는 것은 경쟁이 가져온 결과일 터.

산업혁명이 나방의 환경을 바꿔놓았던 것처럼 농경은 식물들의 환경을 변화시켰다. 채소밭은 땅을 갈고 비료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뽑아야 하는데, 건조하고 비료도 주지 않는 산비탈과는 성장 조건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작물화된 식물에게 일어났던 변화 중에는 그렇게 조건이 달라져서 그 조건에서 유리한 개체의 유형도 달라지면서 생긴 변화가 많았다. 예를 들면 농경민이 채소밭에 조밀하게 종자를 뿌린다고 했을 때 종자 사이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건조하고 척박한 산비탈에서는 종자가 많지 않아 경쟁도 덜하므로 작은 종자들이 유리했지만 채소밭에서는 좋은 조건을 이용하여 재빨리 성장할 수 있는큰 종자들이 더 유리해진다. 이처럼 식물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진 점은, 종자가 커지는 변화를 비롯하여 야생 식물이 고대 농작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변화의 주된 요인의 하나였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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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도시, 선암사

그렇다. 선암사는 건축이 아니라 작은 도시이다. 몸을 닦고 영혼을 닦는 수도자의 도시인 것이다.
늦은 봄 오후쯤 이 도시에 몸을 던져 보라. 모란과 연산홍과 자목련과 수국들이 길과 마당을 가득 채우며 도시의 풍경에 취하게 한다. 마치 극기하여 득도한 이 도시의 거주자들에게 내린 부처님의 자비처럼천지를 수놓고 있다. 아름답고 아름답다. 건축의 신비여………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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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이 일궈낸 보존이라니

#선암사

요즘 얼마나 많은 종교단체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가. 호젓하여 속세에 찌든 몸을 씻게 하던절로 가는 길을 아스팔트로 뒤엎어 차량의 소음으로 오염시키고, 불사를 중창한다며 옛 사찰의 고졸한 풍경을 지우고, 사바세계의 천민상업건물의 행태가 무색한 풍경을 만드는 오늘날의 절들을 보면 해탈은 아직 요원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선암사는 여전히 산사의 고졸한 원형을 보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위엄이 더해 가며우리에게 경건과 침묵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있다.
사실 그렇게 된 연유는 좀 다른 데 있다. 선암사는 1970년에 창종된 태고종의 본산인데 이 사찰의 재산은 조계종의 것이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사유시발된 비구승과 대처승로간의 반목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직 그 재산 분규가 결말이 나지 않아 아무리 사찰의 재정이 넉넉해도 함부로 건축물들을 건드릴 수 없는 데 기인한다.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오히려 선암사의 원형을 보전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선암사에는 인근 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괴한 중창불사, 절의 재건축도 없고 무법천지의 현대 불교건축도 없어 우리에게 옛 산사의 깊은 맛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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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안양문에 기대어 바라본 풍광의 충격이란..

부석사는 건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전통건축 중 단연 수위에 꼽히는 수작이다. 지금은 봉정사가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으로 공인 받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량수전無量壽殿은 현존하는 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었다. 착시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기둥의 가운데 부분을 굵게 만든 배흘림의 수법이며, 기둥들을 중앙을 향해 다소 기울게 만들어집전체가 뉘어 보이는 현상도 방지하는 안쏠림이나 귀올림 등의 목조구법이 여간 지혜로운 게 아니라서 무량수전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가 월등하다.
그러나 부석사의 미적 가치는 무량수전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는다. 무량수전에 안치된 불상은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가지고 서방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불인데, 그 좌정한 방향이 남향이아니라 동쪽의 사바세계를 향하고 있다. 따라서 석가모니불을 의미하는 삼층석탑은 마당에 놓여 있지 않고 동쪽에 놓여 있으며, 마당에는석등이 놓여 세계를 밝힌다. 절묘한 것은 이 석등의 위치가 무량수전의 정중앙에 놓인 게 아니라 다소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안양문을 지나서 오른 이들을 자연스레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무량수전의 동쪽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게 함으로써 아미타불과 자연스레 정면으로 대면하게 하는 놀라운 공간 연결을 만든다.
뿐만 아니다. 부석사의 배치를 이루는 축은 두 개가 있는데 이 축을 이룬 방식이 놀랍다. 천왕문과 범종각이 이루는 축과 안양문과 무량수전이 이루는 축이 약 30도의 각으로 틀어져 있다. 이 축의 향을보면 무량수전-안양문의 축은 바로 앞의 낮은 봉우리를 안산으로 하여 작은 영역을 이루지만, 범종각-천왕문의 축은 태백산에서 내려와소백산을 지나고 죽령을 이어 뻗은 도솔봉으로 향하고 있어 그 영역이 대단히 광대하다. 혹자는 도솔천으로 향하는 축은 미륵정토를 지향하며 안산의 축은 미타정토를 의미한다고 하여 불교의 다른 두 이념이 여기서 같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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