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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벚꽃 흩날리는 소리 들으며 읽고 싶은

타인의 이야기 5선

 

 

 

전은주 [1cm 플러스]

현직 카피라이터인 저자가 던지는 일상에 관한 소담한 시선들.

카피라이터만의 쉽고 간결하지만 분명한 목적성이 있는 언어로

써내려간 일상에 대한 단상들이 궁금해진다.

 

그것은 그녀가 바라보는 광고 세상 만큼이나 잔망스럽게 마음을 자극할까,

아니면 허영은 다 내려놓고 오로지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들로 위로를 줄까.

 

 

 

유인경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는, 평소에도 기자 특유의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선보다

세상과 생활에 대한 애정과 여유가 묻어나는 문체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말투는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뭐라고 말할까?

 

더 굳세어지라고? 지지말라고? 아니면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독여줄까?

 

그녀가 사회 시스템을 고발해야 할 기자이기에,

그녀가 직장인이기 이전에 한명의 여성이자 어머니이기에,

더욱 기대되는 사회생활에 관한 지침서다.

 

 

김은정 [여기, 핀란드로부터]

 

느릿느릿, 소곤소곤,

하지만 바지런한 그녀가 운영하던 카모메식당 -

 

비밀스러운 얼굴로 어딘지 사연있는 것 같은 인상을 가졌지만

순간순간에는 가장 솔직한 응대와 열린 웃음을 보여줬던 그녀가 생각이 난다.

 

핀란드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궁금한 게 아니다.

핀란드에서 체류하게 될, 피어나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우리의 여유와 낭만과 정직함이 그곳에 있을까 궁금해지는 것은 아닐까.

 

 

 

윤태진 [책상 엿보기]

 

배우 윤진서, 쇼호스트를 은퇴하고 요리사로 돌아온 배성은,

모델 송경아, 가수 나얼, <열혈강호>의 작가 양재현과 전극진,

심지어 「시사인」 의 '독설'기자 고재열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

그들의 책상이 궁금하다.

 

 

 

 

 

 

  • 피터 트라튼버그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

미국의 도스토옙스키 라는 평가를 받는 작가.

그의 자전적 에세이가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니

책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3월에 정말 좋은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4월도 그러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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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순간 : 시 -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우리가 보낸 순간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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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광안리 바닷가의 한 맥줏집에 있었습니다. 저녁 바다는 말을 걸고 싶어하는 전학생처럼 우리 발치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더군요. (중략) 눈을 감고 옛일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내게 남은 인생과, 또 다음 광안리 바다를 볼 때까지 그 인생을 가득 채울, 하지만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p.31)

 

밤하늘의 별자리들은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는 것 같지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 언제나 그대로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하늘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잊힌 별자리들도 있습니다. 나중에 별자리들을 정리할 때, 그만 탈락한 비운의 별자리들이죠. 예를 들어 고양이 자리. 고양이를 무척 사랑한 랄랑드란 사람의 추천으로 만들어졌습니다만, 지금은 사라졌어요. (애묘인들은 복원 운동이라도 벌이시길.) (중략) 보이는 세상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p.68)

 

기자는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그 조용한 시골 마을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으나, 제대로 된 부대시설과 볼거리가 없어서 대부분 마을만 둘러보고 황급히 발길을 돌린다면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하더군요. 옛 정취가 고스란히 보존됐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이 된 마을에서 부대시설과 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라니. 그렇게 고요하고 적적한 마을에 가서도 그리운 사람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고 황급히 발길을 돌려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니. 경주 양동마을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책이 시급한 것은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p.72)

 

또 몇백 년 전에는 큰 화재가 발생해 집들이 다 타버렸다는군요. 다음 날, 골목을 걸어가다가 건축 양식이 서로 다른 두 집이 빈틈없이 맞붙은 모습을 발견했어요. 두 집의 건축 시기는 몇백 년 차이 난다고 하더군요. 화재의 흔적. 그건 화재를 이겨낸 흔적이라는 뜻이더군요. 모든 상처가 그 고통을 이겨냈다는 걸 말하듯이. (p.109)

 

미안해요. 하지만 실수를 오랫동안 생각하는 건 제 버릇이랍니다. 반성하고 후회해서 다음번에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놀라기 위해서. 동네를 산책하다가 잘못 들어선 길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작은 공원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지난해 여름처럼. 거기 그렇게 예쁜 공원이 있을 줄이야.... 그 공원 벤치에 앉아 어쩌면 실수가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할 때처럼. (p.115)

 

몸무게가 30g인 지느러미발좀도요는 캐나다 툰드라 지대에서 남아메리카 북부까지, 몸무게가 불과 5g인 붉은멱벌새는 미국 뉴햄프셔 숲 속에서 코스타리카까지 날아가고요. 철새들이 자기 몸으로 긋는이 세계의 경계란 이처럼 넓다고 해야할지, 좁다고 해야할지, 그렇다면 몸무게가 60kg이 넘는 나는 이 지구의 어디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다는 건지. 갑자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p.187)

 

인생은 놀이공원이야, 해볼 건 다 해보고 나가야지 본전을 건지는 거야. 우리는 자유이용권을 끊고 들어온 거예요. 그렇다면 그게 아무리 무서운 놀이기구라도, 또 아무리 오래 기다려야만 탈 수 있는 것이라도 다 타보고 나가는 게 좋겠어요. 막상 타보면 당장 토할 것처럼 어지럽기도 하고, 이제는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만큼 지치기도 하겠지만, 아직 날이 저물려면 멀었고 놀이공원 안에는 안 타본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아마 집에 가면 푹 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놀이공원 안에 있는 동안에는 잘 놀다가 갑시다. 무려 자유이용권을 가졌다고 치자구요. 그게 너무 부담스럽다면, 빅 파이브로 바꿔드릴게요. 사는 동안 다섯 가지 정도 소원은 꼭 이루도록 합시다. (p.219)

 

 

* 책 정보

 

우리가 보낸 순간 - 시」, 김연수, 마음산책

 

*

 

 소설가 김연수가 경향신문에서 '시로 여는 아침'이라는 기획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가 좋아하는 시가 있고, 그 시를 읽고 난 뒤에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이 적혀있는 구성이다. 천천히 집중해서 참을성있게 읽지 않으면 도대체 김연수가 단행본에 수록한 시들이, 김연수가 나란히 늘어놓은 이야기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읽는다면, 김연수가 시를 읽고 왜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어디서 공감해야할 지 알게 된다. 예컨대 소설가 김연수는 '눈을 깜빡일 때'라는 시를 읽고서, 눈을 깜빡이는 순간에 인생이 영겁처럼 스쳐지나갔고 앞으로도 스쳐지나갈 것 같지만 차마 헤아릴 수 없는 삶의 막연함이 느껴진다고 말할 줄 안다. (p.30 참고 ) 그리고 그런 모습은, 책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행간의 의미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같다. 선택된 단어와 심사숙고하여 다듬어진 문장들 사이에서 시가 처음부터 드러내지 않았지만 점차 특정한 의미들은 독자가 찾아줄 수 있다. 따라서 시를 유익하게 읽고 싶은 이라면, 그것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겠다. 그게 바로, 인내심이다. 빨리 지나치려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대신, 조금 느리게 읽고, 시어에 담아볼 수 있는 나만의 기억도 투영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점차 좁은 행간에 깊이 심어진 어떤 의미가 생겨난다. 삶을 시에 빗댈 수 있다면, 그것은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날에는, 페이스북 담벼락에 누군가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라며 황인숙의 '강'이라는 시를 올렸다. 시를 한번, 두번, 세번을 읽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조금 더 천천히 여러번 읽었다. 정성스럽게 쓰인 시 같기는 한데, 유명한 것도 같은데, 어찌 이것이 그대의 인생을 흔들었을까. 그녀에 대해서 생각했고, 혹시나 나도 누군가를 강물에 보내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드문 드문 기억을 헤집어봤다. 나는 그런 시간들이 시의 행간, 여백, 함의와 생략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시를 읽는 동안 조금 더 그녀를 인내심있게 바라보게 되었을까.

 

  그래서 누군가는 시를 읽는 일을 참 사랑하는 것 같다. 시 읽기는 세상을 천천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준다. 비교적 적은 개수의 단어들이, 비교적 짧은 운율의 옷을 입고서 어떤 문양 처럼 한장의 종이를 장식하고있는데 그것의 의미를 기다려주고 헤아려주는 특별한 시간을 독자가 선물받는 것이다. 시를 읽는 일이 행간을 천천히 지나, 네 의미를 묻고, 내 의미를 묻어내는 것이라면 산다는 것도 그러하다. 글을 읽는 일도, 밥을 먹는 일도,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는 일도. 잠들기 전에 낮에는 이해 못한 네 말을 곱씹어보는 일도 그러하다.

 

 끝으로, 이 책에 수록된 시는 아니지만 - 본 포스팅에서 언급되었던 황인숙의 시, '강'을 소개해본다.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시 속의 화자가 아무리 강으로 가라 소리친다하더라도,

 

나는 누군가의 행간을 읽어주고 싶다.

아무리 그대의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이 지긋지긋하다 해도.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두고 누군가와 눈도 마주칠 수 없다 하여도,

 

삶의 행간을 읽어주기 위해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고 싶다.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인내심있게.

 

 

 

 

* 추천하기 전에

 

  그러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야한다. 다른 책에 비하면 소장가치가 높은 책은 아니지만, 김연수를 특별히 좋아하는 독자라면 「우리가 보낸 순간 - 소설」 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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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하고 따뜻하게
이시은 지음 / 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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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동창회
인생의 정답은 여러 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마다의 길, 아름답게


시세이도 기업피알 TV광고 (p.18)


여기가 아닌 어딘가는
어디에도 없을지도 모른다

 

니카이도


술을 마시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잊어버리고싶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카이도 (술) (p.90)

 

 

바다는 푸른 정도가 딱 좋다
하늘은 별이 보일 정도가 딱 좋다
아버지는 무서운 정도가 딱 좋다
어머니는 많이 자상한 정도가 딱 좋다
친기는 귀찮은 정도가 딱 좋다
청춘은 바보스러운 정도가 딱 좋다
거짓말은 서툰 정도가 딱 좋다
고마움은 많은 정도가 딱 좋다

티비는 뒹굴면서 보는 정도가 딱 좋다

 

have your measure
계기는 후지테레비

 

후지테레비 (p.94)

 

 

 

저 사람도 한잔해보면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마시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놀라지 않아
'좀 그래.' 라고 생각하고 마셨는데
좋은 사람이었다면 기쁘지


세상엔 그런 일이 꽤 있는 듯해

 

산토리(술)
인생에는 생각보다 무수히 많은 반전이 있습니다. (p.112)

 


 

지금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힘내, 기운내. 라는 말보다
나라면 이런 곳에 데려오고 싶나고 생각합니다.

 

봄이 이리도 꼭

찾아오는 나라라서

다행이야

 

그래 교토에 가자

 

JR토카이 

(p.116)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람은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빠이롯트 (p.214)

 

 

* 책 정보

 

「짜릿하고 따뜻하게」이시은, 출판사 달, 출판일 2011.04.15

 

 

*

  20세기를 풍미한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좋은 광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최고의 광고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광고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일본의 명광고 카피를 소개하고 있는 이시은의 에세이 '짜릿하고 따뜻하게' 는 참 좋은 광고들을 소개하는 책인 것 같다. 그녀가 소개한 일본의 광고 카피들은 유난히 '우리 참 힘들지? 그래도 힘내 보자!'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참 힘들지?' 의 태도가, 격려하는 선배나 영웅이 아니라 함께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동지의 느낌을 준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22 페이지에 있는 조지아 커피 광고가 그렇다. '내일은 있다'라는 카피로 유명한 광고인데, 다양한 시리즈로 제작이 되어서 2000년대 초반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고 한다. 광고는, 잘난 친구 앞에서 주눅들지 말라고 가장의 무게 때문에 무기력해지지 말라고 말할 줄 안다. 생활 곳곳에서 힘들어지고야 마는 '내'마음을 눈치채준 광고를 본 사람들이, 상품 진열대에 놓인 '조지아' 커피를 보고서 한번 더 웃음을 짓고, 조지아 커피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주관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종종 일본 소설이나 일본 에세이를 볼 때마다 은연중에 느낀 것인데, 일본어는 보통 '상담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상담자의 언어'가 전문적인 명칭은 아닌지만, 학교 다닐적에 교내상담센터에서 재학생 상담자로 활동하기 위해서 심리교육과 상담교육을 받으면서 상담시에 구사하면 좋은 언어 방식을 배운 적이 있었다. 타인에게 가장 경계심을 주지 않고 편안한 대화체는 '너는 - 하다.' 라는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 '나는 - 한 것 같다.' 라는 '나 중심 언어'라는 것이고, 결국에 이 '나 중심 언어'가 타인의 생각의 동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상담자의 언어'다.

 

 상담자의 언어는 마치 혼잣말과도 같은 것인데, 청자에게 불편한 말일 지라도, '너는 조금 성질이 급해' 라는 말보다 '나는 너가 성질이 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라는 말이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짜릿하고 따뜻하게'를 읽으면서, 어쩐지 일본어투는 아무리 번역해도 뭔가 특유의 느낌이 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나 중심 언어' 처럼 쓰여진 일본어투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카피를 보더라도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

 

 예를들면 시세이도 광고 카피에서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자. 카피의 어투는 상당히 주관적이다.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습니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 덕분에, 카피의 화자는, 광고의 청자와 동격으로 느껴진다. 광고 처럼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의 색깔을 존중받고 싶은 청자에게 '카피'의 화자가 어떤 동지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인생의 정답은 여러개가 있습니다' 라는 말보다 덜 교조적인 것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깊이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일본어 자체가 '나 중심 언어' 혹은 '상담자의 언어'와 그 문체가 닮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장기 불황에 '힘' 을 주고 싶었던 일본 광고 카피들의 전략은 '나 중심 언어' 즉 '상담자의 언어' 와 비슷해 보인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한국 광고 카피가 아니라, 일본 광고 카피에 위로를 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평소에는 많은 광고들이 실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보다는, '내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을 때가 많아서 공감 보다는, 소유욕을 자극했던 것 같다. 광고의 목적은 '구매 행위'를 자극 하는 것이니까, 당연한 얘기이긴 하다.

 

   물론 아무리 따뜻한 광고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광고일지라도, 그것이 결국에는 소비를 설득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잔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소외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나은 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우리가 매매의 세계에서 분리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고보면 이 책의 제목 짜릿하고 따뜻하게. 참 잘 지었다. 짜릿하면서도 따뜻한 한마디야 말로, 설득의 비결이라는 생각이다. 꼭 두가지가 함께 해야한다. 짜릿하고 따뜻한 말. 짜릿하고 따뜻한 연애. 짜릿하고 따뜻한 환희. 짜릿하고 따뜻한 추억. 짜릿하고 따뜻한 삶. (둘 중에 하나만 가져야 한다면 '따뜻한'만 남겨도 좋겠지만.)

 

짜릿하고 따뜻한 삶, 좋은걸.

 

 

 

 

* 추천하기 전에

 

리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카피와 함께 곁들어진 작가 이시은의 수필들도 읽어볼만하다. 그녀의 문체도 본인의 직업이 카피라이터인 만큼 매력적인 모습이다. 전문의 수식어들이 군더더기가 많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기자 문체처럼 딱딱하지도 않으며, 자기계발서 작가들처럼 무심하게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딱. 곱씹으며 읽기 좋다. 음미하기 좋다는 말은, 이 책의 담백함에 곁들여주기엔 좀 느끼한 표현 같다.

 

하긴, 원래 출판사 달의 책들이 그렇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감성적인데, 어쩐지 청승맞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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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투게더'의 저자 세넷이 강조하는 '협력'의 가치는 굳이 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중요하다, 가치있다, 소중하다 말해오니 그에 대한 자각심이 무뎌지는 부작용까지 있을 정도다.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는 각종 문제와 해결 이슈들이 개인의 역량을 벗어난지 오래일때, '투게더'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그런데 이 '투게더'의 '협력'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제국주의의 잔혹한 이민족 말살주의와 식민주의 정책의 착오는 물론이고 공산주의의 실패는 말할 것도 없다. 미성년자들도 피할 수 없는 따돌림의 세계, 각종 사회의 가치기준을 벗어난 자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들. 이 순간에도 그칠 줄 모르는 종교 전쟁은 어디 손 댈 엄두라도 남았는가? 모두 '투게더'의 가치를 말해오면서도 그것의 방법론의 실수 혹은 오류로 쌓아온 얼룩진 흔적들이라 해야한다.

 

*

 

 그렇다면, 우리가 저질러온 실수의 맹점은 무엇이었을까?

 

 유명한 소설가 김연수는 한 사람의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문장에서 느껴지는 염세주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그리하여 더,'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너의 다른 점을 포용하고 존중하겠다로 나아간다고 강조한다. 투게더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협력의 시도들이 간과한 가치가 바로 이런 자세가 아닐까.

 

 이상적인 사회의 변혁을 외치는 도서, '투게더'를 읽으며 우리가 견지해야할 것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힘든, 아니 불가능한 일이므로' 라는 전제로 시작하되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 결론 맺을 수 있다면 일보 전진한 성과가 아닐까.

 

 나는 그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그대와 나는 절대 동일해 질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보폭과 생의 속도는 같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한번 더 그대의 안부를 묻고, 따라잡고 싶다고 손을 내밀며, 다른 점에 대해 그리 놀라하지 않고, 그대와 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것에 무한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테니. 

 

 

+ 본 리뷰는 알라딘 신간 평가단의 투표로 선정된 도서를 제공받아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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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몸젠의 로마사 1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몸젠의 로마사 1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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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 사이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독파하면 거의 영웅으로 추대되다 시피 했다. 이렇게 말하고보니 내가 다녔던 학교의 학생들이 꽤나 학구열도 높고 다독하는 것처럼 묘사가 되긴 하지만 굳이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2000년 초중반에 '로마인 이야기'는 정복욕을 느끼게 하는 교양 역사서가 분명했다.

 

로마의 역사는 얼마나 방대하고 무한하길래, 붉은 책장이 역시 두꺼운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끝을 모르고 출간되는 것일까. 결국 그즈음의 나도 도전을 하였으나 10년 가까이 10권에 도달하질 못했으니 로마의 역사를 읽기란 결코 쉬운 일이라 할 수는 없겠다.

 

당시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단순히 로마의 역사를 총망라했다는 데서 의의가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로마인들이 살아있던 시대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작가 특유의 감성과 연민이 실제 역사를 해치치 않는 선에서 살아있는 분위기를 사람들은 더욱 좋아했다. 굳이 생활에 필요한 정보도 아닌 '로마인의 역사'가 어쩐지 탐닉하고 싶은 하나의 장편 스토리로 와닿는 것은 그런 작가의 색채 덕분이었을 터.

 

 

***

 

몸젠의 이야기를 하면서 괜한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가 길었다.

 

몸젠의 로마사 1편을 읽고나서, 역시 이 역사서도 그 시리즈가 독자에게 정복욕을 일으키겠군, 하고 생각했던 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다. '로마인 이야기'도 어떤 신화나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몸젠의 로마사가 훨씬 건조하고 실증주의적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렇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로마의 단편적이면서도 다각적인 실제 사료를 접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몸젠의 로마사를 집어들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책 속에는 몸젠 스스로가 실증주의를 중시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글귀들을 찾을 수 있다. 신화를 신뢰하지 않는 그의 어투는, 실제로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추측성' 멘트를 날리지 않으며 없던 사실을 연민하거나 탄식하는 투의 진보적인 역사관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로마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과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몸젠의 로마사에는 역시 난해하고 딱딱하며 복잡해 보이는 옛 로마 시대의 명칭들이 다수 등장한다. 역사서를 읽으며 감내해야 하는 정보의 피로도가 높아지지만 이것은 동시에 독자에게 지적 포만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몸젠의 로마사는 어쩐지 보수적이고 차분하며 때로는 엄격한 어투로 역사의 사료들을 읊어주는 것 같다. 2편을 기대해본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우수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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