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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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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둥글다. 비탈에서 공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굴러간 뒤에도 훨씬 더 먼 거리를 굴러간다. 그건 중력 때문이니 공의 잘못이 아니다. (p.06)
19세기 중반의 농민항쟁에서 시작하면, 한반도는 1백 년 가까이 전쟁 상태였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건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하는 어떤 행위를 뜻한다. 전후에 태어난 우리는 모든 싸움은 이겨야만 한다고 배웠다. 패배자가 되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경험했다. (p.07)
그날 이후로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외로워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됐을까 아마도 "너를 안다. 정말 잘 안다. 네가 무슨 속셈으로 그러는지 다 알고 있다. 네가 틀렸다는 것을 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옳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밤들을 여러 번 보낸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p.45)
나는 그 캠프에 설치한 게르에서 혼자 잠들었다. 문을 열고 게르로 들어가면 완벽한 어둠이, 다시 문을 열고 나오면 당장이라도 밤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너무 많이 매달린 별들이 있었다. 나는 캠프 사무소 앞 벤치에 누워서 밤새 그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이 우주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그 순간 나는 고독을 경험했다.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p.65)
달리는 말에 채찍을 때리는 종족과 같은 하늘에서 살 수 없는 종족이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는 자들이다. 어떻게든 말은 달리겠지만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는 사람들은 당근을 줄 때 말이 더 잘 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p.89)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이유는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기 때문에. 20대가 사는 세상은 아직 탄생한 지 30년도 지나지 않은 세상이다. 지속 시간이 짧으니 삶에는 인과보다는 우연이 더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60대가 사는 세계는 벌써 70년 가까이 지속된 세계다. 젊은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담배를 피운다고 폐암에 걸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늙은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수두룩하다. 그러니 두 세계가 다를 수밖에. (p.89)
눈이라는 말이 들었을 때, 내리는 눈이 아니라 쌓인 눈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어른이 되는 듯 하다. (p.148)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영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 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그때 그러고 보면 박경리 선생의 상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분의 어떤 일들을 추억하는 사람들이었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p.161)
대개 어른들이 그런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일 위주로 생활하면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p.164)
20대가 지난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건 정말 어렵지만,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매일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쓴 최고의 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최고의 작가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최고의 글을 썼다.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결혼이 아니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결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낌없이 사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그건 내 쪽에 달린 문제니까. (p.204)
존경하거나 사랑하거나 친밀한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로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없다고 생각한다. (p.234)
뉴질랜드의 유명한 코치인 아서 리디어드는 "운동장을 뺑뺑 도는 것만큼 지루하고 신물이 나는 건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래서 언덕 훈련 같은 것을 병행하라는 얘기지만, 이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고를 끄덕인다. 한없이 미워해 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것도 한결같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경우는 필경 둘 중의 하나다. 사랑하지 않거나 죽었거나.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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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학생인지라 보통 책을 빌려읽기 때문에, 책을 깨끗이 읽는 편이다. 대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발견하면 형광색 테이프를 붙여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노트에 손으로 옮겨 적었다가 다시 컴퓨터에 적어서 기억해두려 애쓴다. 그래, '애'쓴다고 해야한다. 텍스트 힘으로 일상의 동력을 얻길 좋아하는 나는, 그 책에서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하고 궁금해 지는 순간 이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그렇다. 그 다음에 테이프를 떼서 도서관에 반납하면 나는 다시 새로운 책을 빌린다.
이 사이에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형광색 테이프를 떼기 전이다. 테이프가 얼마나 붙었는가에 따라, 그리고 단 하나의 테이프라도 그 테이프가 얼마나 자주 들썩이느냐에 따라 나는 내 돈 주고 구입할 책을 결정한다. 그런 책이라면 언제라도 다시 보고싶은, 아니 읽지 않더라도 표지만 봐도 기분이 들뜰 것을 아니까 반드시 늦게라도 사게 된다. <지지 않는 다는 말>도 그 중 하나였다. 위에 꼽은 이 많은 책갈피들을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달리기'라는 행위에 빗대어 <지지 않는 다는 말>이라는 산문집을 낳았다. 아마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내가 꼽은 책갈피들을 맨 처음부터 가장 아래 것까지 훑는 동안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부터 중요하다. 공이 비탈길을 굴러가는 것을 둥근 공 탓이 아니라 중력 탓이라고 말할 줄 아는 저자는, 스스로의 둥근 몸을 원망하지도 않지만, 중력을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불공평함과 한계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달리기'와 '삶'에 대한 사색을 전한다.
대신 오히려 종국에 이르러 우주를 향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을 바꿔보면 어떨까라고 말한다. 우주의 힘을 그래도 믿어보자고 말하는 작가의 마음은 뜻 밖의 굳은 힘을 전한다. 세상 살이의 쉽지 않음을, 지난함을 작가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는 대신 그것을 자조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그런 세상에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소원을 빌어보자고 말한다. 세상이 바뀌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어떤 것을 빌어보자고.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결혼이 아니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결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낌없이 사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그건 내 쪽에 달린 문제니까. (p.204)
다만 '지지 않는 다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 세상에 대항하는 거대한 어떤 것이나, 타인이 봤을 때 근사한 어떤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한 자기 안의 목소리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만의 힘으로 버텨낼 것을 다짐하는 것은 달콤한 위로도 아니고, 환영같은 자위도 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떤 것을 꾸준히 해낸 다는 것, 내일의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스스로보다 나은 어떤 것에 몰두했다는 것은 그가 매일같이 글을 쓰고, 달리기에 몰두했다는 '사실'로 존재한다.
'지지 않는 다는 말의 사실'의 증명하는 일은 그래서 '승리 한다는 말의 사실'을 증명하는 일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사람은 고독함에 약한 법이니까. 어쨌거나 이것은 단순히 참고 버티면 다 지나간다는 단내나는 위로가 아니고, 세상은 원래가 이상하다는 염세주의가 아닌 대신에,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버텨보라는 건강한 존재의지를 부여하는 이야기다. 그래 이기는 것은 내게 달린 문제가 아니지만, '지지 않는 다는 것'은 내게 달린 문제일텐데, 그런 의미라면 정말 지는 건 하고 싶지 않으니까.
* 추천하기 전에
'지지않는다는 말'은 김연수 작가의 생을 관통하는 키워드 같다. 이는 <청춘의 문장들> 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우리가 보낸 순간>에서 무수히 고찰하고 흠모했던 취향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유명한 사람들은 이기려고 하지 말고 버티라는 말을 많이했다. 가수 윤종신도 버티라고 했고, 평론가 허지웅도 버티라고 했다. 물론 항상 이겨야 한다고 외치는 유명한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들의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