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뺄셈 - 버리면 행복해지는 사소한 생각들
무무 지음, 오수현 옮김 / 예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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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는 갈릴리 호수지요. 갈릴리 호수는 물이 맑아요. 물고기도 많고 사방이 푸른 들판이어서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지요. 또 다른 호수는 사해입니다. 그곳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지 못해요. 워낙 척박해서 그 주변에 사는 사람도 없고요."

그녀는 스님이 왜 그런 호수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주는지 알 수 없었다.

 

"그곳 사람들 이야기로는 흥미롭게도 두 호수의 발원지가 같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각각 그렇게 다른 호수가 되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차이는 하나뿐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물을 받아들여서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고, 사해는 받아들이기만 할 뿐 내보내지 않는다는 점이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랍니다. 버릴 줄 알아야 소중한 것을 얻게 되니까요. 끊임없이 받아들여 쌓기만 한다면 외려 풍요로운 삶에서 멀어지는 법이죠." (p.31)

 

사랑이 익어가다 보면 어느새 뺄셈의 단계에 이르게 되어 있단다. 상대에 대한 공연한 기대를 빼고 내 사랑의 이기심을 빼면서 조금 더 단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책임 있는 사랑을 하게 되는 거야. 지금은 너희들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올거야. (p.41)

 

스위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주민 카드에 그 아이가 스위스의 몇번째 국민인지를 나타내는 일련번호와 함께 이름, 성별, 출생 일자 등을 기재한다. 주민 카드에는 '재산 규모'를 적는 칸도 있는데, 갓 태어난 아이의 경우에는 이렇게 적는다고 한다.

'시간' (p.46)

 

수도사는 그제야 장님이 등불을 들고 다닌 뜻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앞길을 비춰주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앞길을 밝히는 일이었던 것이다. (p.57)

 

하지만 한계를 인정해야 비로소 자부심이 생겨난다. 자부심이란 애초부터 얼마나 큰일을 해내느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발견했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을 만난 것이다. 함정이 없는 유일한 행운 말이다. (p.110)

 

 

* 책 정보

오늘 뺄셈, 무무, 예담 출판사, 2013

(* 해당 글은 위즈덤하우스의 증정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2009년에 미국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를 선언한 적이 있다. 이미 직업적인 은퇴를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이들에게 삶에 대한 안정성, 만족감은 높았을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 납득이 가는 연구 결과다. 하지만 원래가 어른 들은 젊은 이들보다 행복하기가 쉬워진다. 나이들수록 불행할 이유가 사라지니까. 실망과 좌절을 많이 경험해본 청,장년기를 보냈을 수록, 기대할 것이 줄어드니 욕심낼 것도 줄어들고, 욕심낼 것이 줄어드니 실망할 것도 사라진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이들에게는 '비움'이 어렵다. 나만 해도 나이든 사람의 안정감을 부러워 하질 못한다. 나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고, 그래서 모르는 이유로 쓸 데 없는 것들에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그것이 쓸 데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에 긍긍하는 마음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꿈꾼다. 그래서 때로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그래서 때로는 순진하게 영원한 사랑을 믿어 보고, 그래서 때로는 환영과 비슷한 세속적 욕망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항상 더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고, 새로운 공부를 하고, 사람을 사귀고, 더 예뻐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없던 것을 갖는 것의 미덕에 익숙해지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 수록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그러니까 행복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제껏, 더하라- 는 배움 속에서 커왔는데 그래서 그동안 비우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다시 또 오늘, 뺄셈 하라니.

 

다만 이제는 비움의 가치를 알고 있다. 20년 이상을 살고, 나름 성인 대접을 받으면서 더함은 성공의 조건이었을 수 있겠지만 행복의 조건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일들이 내게 무언의 압박감과 상실감, 때로는 소외감을 줄 때 애초에 그것에 대한 욕망을 포기한다면 나는 더욱 평화롭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움의 가치는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 우리가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기대하고 기획하고 달성하려는 욕심이 삶의 동력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 뺄셈>의 가치를 슬기롭게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대신 그것은 포부에 가득차 방학 직전에 밀려버릴 방학 숙제 계획과 같은 비움은 안 된다. 실천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대신 정말 원하지 않는 어떤 것들까지 다 가지려 했던 것은 비워도 된다. 정말로 원하는 것을,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정말로 자신을 위한 것을, 정말로 사랑하는 것을, 제외하고 버리면 어떨까. 이미 이들이 너무 많은 것들을 붙들고 있지 않느냐 반문하겠지만 - 이 모두는 같은 한 가지를 말한다. 그래서 그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믿는 것.

 

모든 것을 비워버리고 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위한 비움이라는 것에 수긍하는 것으로 뺄셈을 실천해 보고 싶다. 참, 31페이지에서는 우리가 뺄셈의 미학을 실천하지 못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 지 그 최후를 언급하는 구절이 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갈릴리 호수의 발원지에서는 다른 하나의 호수도 발원하는데, 그것은 뺄셈의 미학을 실천하지 못한 탓에 같은 데서 죽음의 상징, 사해란다다. 죽은 바다. 많은 것을 끌어 안고 버리지 못해서 썩히게 되는 최후라니. 끔찍하다.

 

하이고, 뭐부터 버려야 하지?

 

 

 

 

* 추천하기 전에

 

힐링 키워드에 정직하게 편승하는 책. 하지만 의외로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어딘가 쑥스럽고 오글거리고 많이 들어본 얘기 같지만 - , 한동안 우리들이 잊었던 이야기를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써내려 갔다. 어쨌든 이런 책이 여전히 읽을만 하다고 생각 되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책은 예전에도 있어왔지만 우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c)forested-islan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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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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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둥글다. 비탈에서 공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굴러간 뒤에도 훨씬 더 먼 거리를 굴러간다. 그건 중력 때문이니 공의 잘못이 아니다. (p.06)


19세기 중반의 농민항쟁에서 시작하면, 한반도는 1백 년 가까이 전쟁 상태였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건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하는 어떤 행위를 뜻한다. 전후에 태어난 우리는 모든 싸움은 이겨야만 한다고 배웠다. 패배자가 되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경험했다. (p.07)

 

그날 이후로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외로워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됐을까 아마도 "너를 안다. 정말 잘 안다. 네가 무슨 속셈으로 그러는지 다 알고 있다. 네가 틀렸다는 것을 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옳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밤들을 여러 번 보낸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p.45)


나는 그 캠프에 설치한 게르에서 혼자 잠들었다. 문을 열고 게르로 들어가면 완벽한 어둠이, 다시 문을 열고 나오면 당장이라도 밤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너무 많이 매달린 별들이 있었다. 나는 캠프 사무소 앞 벤치에 누워서 밤새 그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결엔가 이 우주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그 순간 나는 고독을 경험했다.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p.65)

 

달리는 말에 채찍을 때리는 종족과 같은 하늘에서 살 수 없는 종족이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는 자들이다. 어떻게든 말은 달리겠지만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는 사람들은 당근을 줄 때 말이 더 잘 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p.89)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이유는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기 때문에. 20대가 사는 세상은 아직 탄생한 지 30년도 지나지 않은 세상이다. 지속 시간이 짧으니 삶에는 인과보다는 우연이 더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60대가 사는 세계는 벌써 70년 가까이 지속된 세계다. 젊은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담배를 피운다고 폐암에 걸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늙은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수두룩하다. 그러니 두 세계가 다를 수밖에. (p.89)

 

눈이라는 말이 들었을 때, 내리는 눈이 아니라 쌓인 눈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어른이 되는 듯 하다. (p.148)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영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 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그때 그러고 보면 박경리 선생의 상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분의 어떤 일들을 추억하는 사람들이었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p.161)


대개 어른들이 그런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일 위주로 생활하면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p.164)


20대가 지난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건 정말 어렵지만,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매일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쓴 최고의 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최고의 작가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최고의 글을 썼다.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결혼이 아니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결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낌없이 사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그건 내 쪽에 달린 문제니까. (p.204)


존경하거나 사랑하거나 친밀한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로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없다고 생각한다. (p.234)


뉴질랜드의 유명한 코치인 아서 리디어드는 "운동장을 뺑뺑 도는 것만큼 지루하고 신물이 나는 건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래서 언덕 훈련 같은 것을 병행하라는 얘기지만, 이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고를 끄덕인다. 한없이 미워해 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것도 한결같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경우는 필경 둘 중의 하나다. 사랑하지 않거나 죽었거나. (p.277)

 

 

 

 

 

 

 

*

 

가난한 학생인지라 보통 책을 빌려읽기 때문에, 책을 깨끗이 읽는 편이다. 대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발견하면 형광색 테이프를 붙여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노트에 손으로 옮겨 적었다가 다시 컴퓨터에 적어서 기억해두려 애쓴다. 그래, '애'쓴다고 해야한다. 텍스트 힘으로 일상의 동력을 얻길 좋아하는 나는, 그 책에서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하고 궁금해 지는 순간 이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그렇다. 그 다음에 테이프를 떼서 도서관에 반납하면 나는 다시 새로운 책을 빌린다.

 

 

이 사이에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형광색 테이프를 떼기 전이다. 테이프가 얼마나 붙었는가에 따라, 그리고 단 하나의 테이프라도 그 테이프가 얼마나 자주 들썩이느냐에 따라 나는 내 돈 주고 구입할 책을 결정한다. 그런 책이라면 언제라도 다시 보고싶은, 아니 읽지 않더라도 표지만 봐도 기분이 들뜰 것을 아니까 반드시 늦게라도 사게 된다. <지지 않는 다는 말>도 그 중 하나였다. 위에 꼽은 이 많은 책갈피들을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달리기'라는 행위에 빗대어 <지지 않는 다는 말>이라는 산문집을 낳았다. 아마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내가 꼽은 책갈피들을 맨 처음부터 가장 아래 것까지 훑는 동안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부터 중요하다. 공이 비탈길을 굴러가는 것을 둥근 공 탓이 아니라 중력 탓이라고 말할 줄 아는 저자는, 스스로의 둥근 몸을 원망하지도 않지만, 중력을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불공평함과 한계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달리기'와 '삶'에 대한 사색을 전한다.

 

 

대신 오히려 종국에 이르러 우주를 향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을 바꿔보면 어떨까라고 말한다. 우주의 힘을 그래도 믿어보자고 말하는 작가의 마음은 뜻 밖의 굳은 힘을 전한다. 세상 살이의 쉽지 않음을, 지난함을 작가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는 대신 그것을 자조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그런 세상에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소원을 빌어보자고 말한다. 세상이 바뀌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어떤 것을 빌어보자고.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결혼이 아니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결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낌없이 사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그건 내 쪽에 달린 문제니까. (p.204)

 

 

 

 

 

 

 

다만 '지지 않는 다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 세상에 대항하는 거대한 어떤 것이나, 타인이 봤을 때 근사한 어떤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한 자기 안의 목소리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만의 힘으로 버텨낼 것을 다짐하는 것은 달콤한 위로도 아니고, 환영같은 자위도 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떤 것을 꾸준히 해낸 다는 것, 내일의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스스로보다 나은 어떤 것에 몰두했다는 것은 그가 매일같이 글을 쓰고, 달리기에 몰두했다는 '사실'로 존재한다.

 

 

'지지 않는 다는 말의 사실'의 증명하는 일은 그래서 '승리 한다는 말의 사실'을 증명하는 일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사람은 고독함에 약한 법이니까. 어쨌거나 이것은 단순히 참고 버티면 다 지나간다는 단내나는 위로가 아니고, 세상은 원래가 이상하다는 염세주의가 아닌 대신에,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버텨보라는 건강한 존재의지를 부여하는 이야기다. 그래 이기는 것은 내게 달린 문제가 아니지만, '지지 않는 다는 것'은 내게 달린 문제일텐데, 그런 의미라면 정말 지는 건 하고 싶지 않으니까.

 

 

 

 

* 추천하기 전에

 

'지지않는다는 말'은 김연수 작가의 생을 관통하는 키워드 같다. 이는 <청춘의 문장들> 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우리가 보낸 순간>에서 무수히 고찰하고 흠모했던 취향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유명한 사람들은 이기려고 하지 말고 버티라는 말을 많이했다. 가수 윤종신도 버티라고 했고, 평론가 허지웅도 버티라고 했다. 물론 항상 이겨야 한다고 외치는 유명한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들의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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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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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쳐, 혹은 컬쳐 이즈 사이언스 *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다양한 분야에서 중시되던 것이었다. 조금 가깝게 보자면, 다양한 기술의 탄생에서 인문학을 결합시키자는 슬로건도 한 예다. 하지만 우리는 '인문학을 해야 합니다. 인문학을 알아야 합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지식의 유희 이상의 실질적인 가르침이나 생산성을 가져다 주는 지는 모른다. 우리가 보는 즐거움을 위해서 누리는 춤은 어떤 심리 치유적 의미가 있는가? 듣는 즐거움을 위해서 향유하는 음악은 인간의 어떤 물리적 진보를 야기하고 반영하는가? 영 상관없어 보이는 일련의 활동들이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넓어진다.

 

그래서 이 책의 발간은 반갑다. 이 책은, 서로 다른 각자의 전문 분야를 뚜렷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같은 현상에 대해 공통 분모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된 사회의 관심사에 대해 논의하는 융합의 장이다. 서로 다른 분야 출신의 학자들의 대화록은 형이상학적인 모습을 취하면서도 우리에게 사회와 현상을 이해하는 현실적인 사고력을 제공한다.

 

 

무슨 이유로 인간 정신에 내재하는 공감 능력이 밖으로 확장되었을까요?

여기에 대한 한 가지 답은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우리를 끌어다놓는 매체입니다.

이를테면 언론, 역사, 리얼리즘 픽션 등이죠. (p.51)

 

 

특히 두번째 챕터인 <의식의 문제>는 가장 흥미로운 챕터다. 일단 가장 쉬운 분야를 다룬다. 드라마, 영화, 설화, 만화 처럼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를 논의한다. 각각 소설가이자 심리학자인 서로 다른 분야의 석학은 스토리텔링에서 두 분야가 함께 바라보는 세계의 접점을 찾는다. 내용은 이렇다. <의식의 문제>에 관한 대화에 참여한 심리학자 핑커는 스토리텔링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일을 통해 도덕성을 발달시켜왔다는 의의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우리가 드라마를 왜 많이 보는가? 왜 좋아하는가? 이것은 유용한 일인가? 에 대한 추적이다. 문학 독자나 텔레비전 시청자들인 우리들이 주인공의 삶을 이야기를 통해 대리체험하기 때문에 타인을 더욱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도덕심을 획득한다는 이야기는 '이야기 콘텐트'를 즐기는 내게도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해당 챕터를 벗어나서도 책은 여전히 흥미롭다.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전방위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수십명의 석학을 한 권에 모아놓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 한권을 손에 쥐고도 다양한 분야를 한번에 훑어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한가지 현상을 한가지 관점으로만 보지 않아도 된다. 예컨대 하나의 챕터에 등장한 석학들은 다른 주제를 논의하는 다른 학자에 의해 거론되기도 한다.<의식의 문제>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픽션의 '도덕성 기여도' 에 대해 논의했던 핑커의 이름이 어느 챕터의 학자에게서는 반대하는 학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관점에 따라 현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사이언스 이즈 컬쳐>는 단지 예술이나 인문학과 과학을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학과 현실 정치학, 혹은 경영학의 만남도 주선한다. 예를 들면 기후의 정치학 같은 챕터에서는, 환경 보호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현대 사회의 효율성을 빌려올 것을 제안하였다. 휘발유 값을 올리는 것은 환경 보호를 위한 일이 될 수는 있지만 연비가 나쁠 수 밖에 없는 구식 차를 모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부담이 된다. 이 둘을 해결하는 것은 바우처 제도다. 바우처라는 사회 서비스 이용 권 제공을 통해 소비자에게는 구매력을, 휘발유 값 인상 정책에는 실효성을 제공하는 일석 이조의 영리한 제도다. 유명 석학들의 대화는 대부분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담론에서 그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이렇게 현실적이고 적용 가능한 대안을 발굴하게 만들어 유용하다.

 

물론 다양한 현상에 대한 우리의 고민은 항상 완전하게 마무리되지는 못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어느 챕터에서도 '시간' 이나 '음악'이라는 대화의 주제에 관해 결론을 맺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상의 이치란 그렇다. 아무리 세계 석학들이 모인다 하더라도, 과학이 새로운 것을 증명해 준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정확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가 다르기 마련이고 과거의 증명은 수차례 전복될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이 어떤 앎의 완결, 융합의 완성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적어도 <사이언스 이즈 컬처>가 독자와 대중에게 제시한 키워드는 분명해 보인다. 일상의 아주 먼 자리에 있는 여러 이야기와 고민들이(예술) 당장의 흰 밥과 좋은 집을 구하는 일과는(과학)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이 둘이 교류하는 것이야 말로, '흰 밥과 빵에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지'와 같은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과 문화와 예술의 끝없이 막연한 고민들은 여전히 굉장히 어렵지만 우리에게 더 나아질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모든 분야는 인간이 얼마나 더 잘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느냐를 고민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권의 잘 편집되고 기획된 단행본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석학이 의견을 교류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이다. 그래서 또 다른 종류의 희망이다. 더 잘 살고, 잘 알기 위한 모든 일들을 다양한 분야 곳곳에서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고 안심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언제나 난관과 몰이해와 실수 속에서도 훌륭한 가능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는 이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다. 이런 주제의식을 책의 한 구절에서 찾아보며 리뷰를 마무리 하도록 한다.

 

 

어떤 젊은 시인이 "저에게 시인의 소질이 있습니까?" 라고 묻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가 했다는 유명한 대답이 있죠.

"문제 자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이 잠긴 방, 전혀 모르는 외국어로 쓰인 책 같은 문제를 말이죠."

예술이란 대부분 이처럼 문제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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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과 동물원 - 리얼리티TV는 동물원인가
올리비에 라작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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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를 보며 그런 감탄을 내뱉을 때가 있다. 스펙터클 하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그럴싸한데! 라고 할 수 있는 말을 스펙터클이라고 표현하면 어쩐지 더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가상현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연기력으로 재현해내는 영화를 두고서, 진짜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관객이 주는 찬사라고 하겠다.

 

「텔레비전과 동물원」의 저자 올리비에 라작이 언급한 '리얼리티 스펙터클'은 이와 조금 다르다. 창작물에서 스펙터클이란, 보통 세상에 없는 것을 세상에 있을 법한 것으로 구현해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리얼리티 스펙터클은 자신들의 결과물이 가상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를들면, <스타 다큐>, <인간 극장>, <1박 2일>과 같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듯한 프로그램들의 상품 전략이다. 이들은 충분히 구성이 가미되어 있으면서도 철저히 진짜라고 속인다. 여기서는 간단히 말해 '연출' 나쁘게 말하면 '조작'인 노력들이 선의의 속임수를 탑재한 것이다.

 

책에서도 다수 언급했지만, 이것은 보통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전략이다. '리얼리티'라는 텔레비전의 키워드는 시청자들에게 결코 익숙하지 않았던 타인의 세계를 전시하면서 그것에 대한 동경, 때로는 질시, 감정이입과 찬사를 화제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SBS <정글의 법칙>이 인기를 낳은 기획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리얼리티 스펙터클을 확연히 강조할 수 있는 오지의 야수성과 야생의 생존기를 의도한 것이 크다. MBC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래, 특집에 드러난 출연자의 어색한 표정들이 가짜라고 믿었다면 어떤 시청자가 그 특집을 이리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속임수가 들킬 때다. 프로그램의 과도한 시청자 기만이 민낯을 드러낼 때,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진짜' 를 원했던 시청자를 실망시킨다. 최근 SBS <정글의 법칙>에서 일어난 일련의 '개뻥 프로그램' 해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과장된 자막을 썼느냐, 실제로 그 오지가 관광 상품은 아니었냐 하는 사실 여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판타지를 해체시켰다는 데 있다. 자막을 '거짓말'로 표현했다거나 관광상품을 오지 개척으로 포장한 것은 시청자의 기대치와 동경 혹은 찬사를 배반하는 지경까지 이르는, 언제든 들킬 수 있는 기만이었다.

 

 어쩐지 당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도 제작자 탓만을 돌릴 수는 없는 형편이긴 하다. 시청자는 리얼이 아닌데도 리얼리티를 갖춘 어떤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선호하고 있다. 라플란드 인의 인종 전시를 보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했던 옛 독일인들이나 일반 동물원이 아닌 사파리 동물원에 갔을 때 진정한 야생을 체험한 것과 같은 착각으로 기뻐하는 우리들의 욕망은 텔레비전 앞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가 충분히 설정극인 줄을 알면서도 우리는 가상 부부의 쑥스러운 애정 표현이 진짜이길 기대한다. 오연서와 이장우의 스캔들 대처야 경솔한 행동이었을 지 몰라도, 오연서의 가상 남편 이준을 걱정하고 그 앞에서 오연서가 눈물로 사과하는 장면이 연출되어야 하는 것은 결국 리얼리티 스펙터클에 대한 시청자의 판타지의 공고함을 만족시키기 위한 미디어의 눈물겨운 노력이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MBC <아빠, 어디가>의 활약은 '리얼리티 스펙터클'에 가장 충실한 예능이다. 어린이 출연자들은 성인보다 자기 방어력이나 거짓말 척도가 낮다. 게다가 이들을 통제하는 어른들도 기존의 연출력으로 아이들의 돌발 상황을 제어하기 어렵다. 지아와 후의 러브라인이나, 맏형 민국이가 텐트 앞에서 눈물보가 터진 모습이 연출이라고 생각할 잔인한 시청자는 없다. 우리는 기존 리얼리티에서 해체되거나 실망스러웠던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판타지를 아이들의 순수한 행동을 통해서 만족시킬 수 있게 된다. 아빠 미소 엄마 미소가 절로 나는 프로그램이 주는 만족감이 '순수, 무공해, 동심'이라는 키워드로 표현되는 것도 이것이 가장 '리얼리티 스펙터클' 아니 '리얼리티'에 가깝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다른 매체보다 시청자를 빠르게 흡인하고 만족시키는 이유는 아마 시각 지향적인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현실 세계에서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보듯이, 텔레비전에 드러나는 세계도 현실 세계 날 것의 모습을 그대로 투사한다. HDTV를 넘어 UHD TV가 등장하는 요즘이다. 앞으로 우리가 기대했던 '리얼리티 스펙터클'은 어떤 선의 혹은 악의를 만나, 훌륭한 창작이 되거나 교묘한 속임수가 될 것인가.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장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미디어의 특징이라면, 적어도 그것이 안일한 언론 보도나 연예인의 면죄부를 주기 위한 거짓 아침 프로 보다는, 동심과 가족애를 회복해주는 예능이라면 좋겠다.

 

* 추천하기 전에

사실 읽어 내려가는 스토리텔링의 재미는 없지만 관련 분야의 고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내내 어? 어디서 많이 읽고 들은 내용인데? 싶은 사례가 있을 것. 미디어 및 대중 문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c)forested-islan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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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도 좋은 신간들이 많이 나왔다. 

2월에는 조선시대 관련 책들을 많이 읽어볼 계획이었는데

지난 가을에 얼렁뚱땅 해치웠던 '조선왕조실록'이 벌써 17세기 이후로는 가물가물.

다시 한번 조선왕조실록을 찾아 읽으면서 다른 책들도 독파해볼까 한다!





나무시대


소녀시대 아니죠~ 나무시대죠! 재미있다. 나무와 인간의 연결 고리를 고찰한 책이라니. 풀 내음이 가득한 숲 속 산장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힐링, 힐링 외치지만 그러는 속에서도 우리는 힐링을 돕는 수많은 자연의 혜택들과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다. 빌딩 숲에 놓인 회색 빛의 일상 속에 나무가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물론 인간이 숲을 파괴했다거나, 다양한 식물종을 멸종시켰다는 이야기만 가득하면 곤란하겠지만. 






인간 이력서


인간의 역사는, 지배자의 역사라고 한다. 결국 승리자를 중심으로 쓰여진 역사 속에서 '인간 다움'을 설명 할 수 있는 조건 또한 승리자의 모습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 이력서는, 인간의 발자취를 조명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수많은 인간의 역사를 대변하지 못한 채 승자가 되기 위한 결과론 적인 행적들이 무엇인가 되짚어 보겠다는 결의를 제목에 드러낸다. 인간 이력서, 뒤 따라 가보고 싶다.







일기로 본 조선


조선왕조실록과 크게 다를 게 뭐가 있겠냐마는, '일기'라는 단어가 시선을 확 잡아 끈다. 개인 개인의 일상에 녹아든 조선 시대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김홍도의 풍속화의 그것을 닮았을까, 아니면 우리 사극 드라마의 어느 충신의 고민과도 닮은 것일까. 한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가 녹아 들어있는 일기라는 테마는 언제든지 흥미로운 키워드다.






왕들의 부부싸움


대하 드라마 속 로맨스가 재미있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 그 둘의 사랑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시대의 문제와 맞물려 역사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중의 왕들의 로맨스는 어땠을까? 게다가 그것이 달콤한 만남이 아니라 파멸에 이르는 싸움이라면? 혹은 그것을 넘나드는 화해와 번복의 숱한 사건으로 이어지는 정쟁과도 연관된 것이라면? 부부싸움이라는 키워드로 궁중 역사를 다시 한번 읽어볼 수 있다니 기대된다.






2월은 1년 중 가장 짧은 달이다. 


하지만 그도 독서로 살 찌우면, 

그 달의 일수가 짧은들 유익함이야 다른 달과 비할 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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