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아침. 아주 간소하게 차례를 마치고 곧바로 친정으로 향했다. 2시간 30분 조금 안되는 길이었다. 극심한 도로정체를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구간별 정체가 가끔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속도만 조금줄었지 가다서다 할 정도는 아니었다. 라디오 음악과 차창에 스치는 풍경과 몇개의 터널과 기타등등을 헤아리며 달리는 동안 남편이 불쑥 하는 말. 트럭이 한 대도 안보인다. 트럭은 우리밖에 없어. 우하하. 나의 웃음소리. 우히힉. 아이들 웃음소리.

사실 이번에 친정 나들이는 애초에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갑자기 가게 되었다. 그것도 명절당일날 찾아뵙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엄마가 차려주신 점심을 먹고 몇시간 같이 있지도 못하고 곧바로 일어서야만 했지만 아무도 서운해 할 일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저녁 전에 평창에 도착해서 어머니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으니까. 시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엄마가 차려주신 음식보다 더 잘 먹었다. 남편은 장모님이 차려주신 점심을 더 맛있게 먹었고 나는 시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을 더 맛있게 먹었다. 둘이 짠 것도 아니데 어라? 호흡이 척척 맞네. 2인1조 도둑이 여기에 있었구나.(뻥카도 이런 뻥카는 없다는 걸 알지만 이렇게 쓰고싶은 걸 어떡해)
다음날 아침을 먹고 어머니가 챙겨주신 음식과 이런저런 것들을 차에 싣고 내려오는 길. 따사로운 햇빛과 길가에 핀 꽃들.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집에 도착. 다행히 쉬지 않고 무사한 남은 밥을 다시 데워 가벼운 점심으로 때우고, 피곤했지만 피곤하지 않다는 게 신기해서 밭으로 갔다. 주말 태풍소식도 있고 해서 비오기 전에 사과를 좀 따야 할것 같았다. 비 때문에 당도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안될거 같아서. 열몇짝을 따고 나니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른 서둘러 갈무리를 하고서 집으로 왔다.

아직도 비가 비린다. 비가 좀 그치면 밭에 가볼까 하는데. 비가 안그쳐도 밭에는 가야 할 일이 있긴 하다. 내일 해도 되는 일이긴 하지만 요즘은 유독 쫓기는 마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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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7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6-09-17 15:19   좋아요 3 | URL
일하다가 만나는 동물 중에 깜놀하는일이 더 많지만 요 청개구리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나게 되면 천우신조구나 하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사진 찍으려고 한답니다^^이번 연휴는 저에겐 좀 특별케이스여서 여기저기 일이 많았네요. 오후엔 밭에 가야지 했는데 남편이 내일 가자고 하네요. 비도 계속 오고있구요. 넘어진김에 쉬어간다고 말씀대로 오늘은 집에서 쉬어야겠어요. 편안한 오후 보내시길요^^

hnine 2016-09-17 15: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산소 가는 길에 보니까 벼가 조금씩 색깔이 변해가더라고요. 저 농사를 지으신 분들은 힘 드셨던 만큼 저렇게 익어가는 벼를 볼때 얼마나 보람있으실까 생각했어요. 컨디션님 페이퍼를 읽으니 다 수확해서 제 갈길로 보내질때까지 마음을 푹 놓지 못하실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과 이렇게 다 키워서 혹시 잠깐 때를 놓쳐 당도가 떨어지거나 태풍의 영향을 받거나, 조마조마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요.
차례 모시고, 양가 다녀오시고, 다음날 사과 수확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홍로도 맛있지만 홍장군도 저는 좋아하는데 (제가 워낙 사과없인 못사는 사람이라 사과라면 다 좋아해요) 너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 같아요.

컨디션 2016-09-17 15:28   좋아요 1 | URL
저도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면서 이제는 아 아름다운 풍경이야 마냥 감탄만 하게 되지는 않아요. 비록 저도 농사를 안다고 할순없지만 이렇게 어느새 나이 먹어가면서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게 되나봅니다. 사과는, 또는 과수원 농사는, 예전엔 막연히 참 이쁘게(우아하게) 농사하는 것중에 하나겠구나 했엇는데 닥쳐서 해보니 전~혀 아니라는 거, 허상 속에 살면서 잘 몰랐다는 거, 여실히 느끼게 됩니당. hnine님 사과 엄첨좋아하시는데, 홍장군이 잠깐 나왔다 어느새 쏙 들어가버린다는 것도 알고계신데, 제가 좀 (시간)여유가 되면 보내드리고도 싶은데. 아,이런 얘긴 비댓으로 해야하나요^^

2016-09-18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9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6-09-19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연휴 좋은 시간 되셨군요..물론..사진이 있어서 더 ^^.

컨디션 2016-09-20 07:13   좋아요 1 | URL
저야 뭐 사진이래봤자 아, 이건 남겨야해. 수준입지요.^^ 게다가 사진 올리는 재미(?)로 알라딘 페이퍼를 이어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