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당신을 위한 로마서 1 팀 켈러, 로마서
팀 켈러 지음, 김건우 옮김 / 두란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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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삶은 완벽하지 않다. 다만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한 말씀을 붙잡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분투와 기쁨, 실패를 맛보는 것이다. 믿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그때, 우리가 "의롭다고 여겨"질 것을 아는 것이다(170-171쪽).. 우리는 곤고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곤고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가 당신을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자(278쪽). -

 

곤고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 복음을 경험하라.

 

지금까지 팀 켈러 목사님의 책을 여러 권 읽어 보았는데, 그  때마다 많은 깨달음과 교훈을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읽어 보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로마서에 대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꽤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자로서 팀 켈러 목사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본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일이 수월하게 되도록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도 그 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인간의 죄성에 대한 분석에서 그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숭배해야만 한다. 우리 존재는 창조주께 경배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분을 거부하면 다른 무엇인가를 숭배하게 되어 있다.. 우리에겐 상상력과 마음을 사로잡아 심연의 갈망들을 쉬게 하고 심연의 공포들을 가라앉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살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히 좋게 창조하셨으므로 피조물 안에는 온갖 좋은 것들이 있다. 따라서 그 속에서 감탄할 만한 것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피조물에게 지나친 애정, 곧 하나님만이 받으실 만하고 요구할 수 있는 궁극적인 애정을 쏟는 것이다. 바울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신으로 만들기를 즐거워한다(49-50쪽)."

 

이러한 저자의 설명은 우리의 죄가 바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부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부하면 죄 짓는 것은 필연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죄는 피조물을 신으로 만들어 하나님 대신 섬기는 것으로 자신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결국 죄를 제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분 안에서 감탄할 만한 것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이러한 결론에 스스로 이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장점 가운데 또 한 가지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태도입니다. 저자는 바울 사도가 로마서 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성애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하지만 다른 서신들에서 바울은 우상숭배의 다른 행위들도 언급하고 있다..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도덕적인 삶을 통해 축복과 구원을 얻으려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통치자와 구원자를 두는 것으로 탐심과 동성애만큼이나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동성애가 죄이긴 하지만 '가장 나쁜' 죄는 아니다. 성적인 부도덕함은 모두 죄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두 가지 개연성이 있다. 하나는 동성애자들을 환영하는 것으로 현대 문화에 우호적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교회들은 26-27절처럼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경시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자유주의적인' 접근이다. 또 하나는 이와 반대되는 입장이다. 그들은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의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이용한다. 이들은 동성애를 아주 중요한 죄로 여긴다. 이들은 결코 동성애자들을 사랑하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웃의 간음한 힌두교 신자나 친구들과는 잘 지낼 수 있다 해도 동성애자들과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보수주의적인' 접근이다. 둘 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아니다. 바울은 동성애가 말 그대로 부끄럽고 과도한 욕망이라고 명시하였다. 하지만 바울이 우리에게 훨씬 더 익숙한 질투나 험담, 배신과 같은 다른 많은 죄들을 곧바로 열거하는 것을 기억하라(58-60쪽)."

 

이러한 저자의 설명은 일종의 양비론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정확한 이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우리나라보다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뉴욕이라고 하는 미국의 대도시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분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장점 가운데 또 한 가지는 본문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 깊고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바울 사도가 로마서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할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할례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것은 언약을 깨뜨리는 것에 대한 처벌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고대에는 계약을 맺을 때 서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언약을 깨뜨릴 경우 받게 될 저주를 연기하였다.. 할례는 매우 친밀하고 개인적이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포피를 자르는 행위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나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네가 언약을 깨뜨릴 경우 완전히 단절되리라는 것을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표시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 언약이 깨지면 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생명으로부터, 나로부터 단절된다. 너는 정말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언약을 지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도대체 누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할례가 의미하는 단절은 이미 일어났다. 바울은 골로새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았으니..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 바울은 그들이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할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모든 것으로부터 끊어지셨다.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그분으로부터 단절되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졌다. 그분은 참으로 할례되었다. 언약을 깨뜨린 자가 받는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그분 안에서 우리도 할례를 받았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일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할례를 주신다(103-104쪽)."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십자가가 할례의 언약을 어긴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의미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전에 책에서 읽어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처럼 마음에 깊이 와서 박힌 것은 처음입니다. 할례라는 언약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하고 보니 십자가의 의미 또한 더 분명하게 이해가 되더군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복음이 가르치는 바가 율법주의나 자유주의가 가르치는 것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도 크게 와 닿았습니다.

 율법주의

 복음 

 자유주의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스스로 자신의 의를 믿는다.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받는다. 

 완전한 의가 필요없다.

 물질은 악하고 우리는 타락했다. 육체의 즐거움을 의심하거나 멀리한다(금욕주의).

 물질은 선하지만 우리는 타락했다. - 육체의즐거움은 선하지만 지혜롭게 선용해야 한다.

 물질은 선하고 우리는 타락하지 않았다. - 육체의 욕망을 채운다.

 죄는 개인에게만 영향을 끼친다. - 개인전도만 한다.

 죄는 개인과 사회 구조 모두에 영향을 끼친다. - 개인전도와 사회참여 모두 한다.

 인간의 죄의 깊이에 대해 단순하게 여긴다. - 사회참여만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순간 변할 수도 있다.

 사람은 변하지만 즉각적인 개선은 없다.

사람은 변할 필요가 없다. 

 죄와 맞닥뜨린다. - 그것을 없앤다.

 죄를 통과한다. - 그리스도 안에서 쉰다.

 죄로부터 달아난다. - 문제없다고 스스로 확신한다.

 죄를 회개한다.

 죄와 자신의 의를 회개한다.

 죄와 자신의 의 모두 회개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복음의 바른 의미는 물론 바른 균형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서 7장 7-13절의 내용을 바울 사도의 회심 이전의 모습으로 보고 설명한 것이나, 로마서 7장 14절 이하의 내용을 바울 사도의 회심 이후의 모습으로 보고 설명한 것은 굉장히 설득력 있고 또한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바울 사도가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통해 율법의 의미를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이 살아 있는 줄 알았다가, 그 계명의 의미를 깨닫고 나서 자신이 죽은 자임을 깨달았다는 설명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①로마서 7장 7-13절까지의 동사는 과거지제였으나 14절부터는 현재시제로 바뀐다는 사실, ②14절부터 화자와 죄 사이의 관계가 바뀐다는 사실, ③ 불신자는 속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할 수 없다는 사실, ④ 불신자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한 것과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만큼 죄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14절 이하에 기록된 내용이 바울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현재의 자기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는 것 역이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자는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믿음'과 '순종'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순종'을 '행위'와 같은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여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이 같다면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순종을 자랑할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의 진짜 장본인은 순종을 행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154쪽)."

 

그런데 저자의 이 설명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믿음과 순종이 같다면 순종을 자랑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믿음도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믿음의 원칙은 자랑하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144쪽)"다'고 분명히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이 같다고 해도 둘 다 자랑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저자가 순종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복음의 요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이에 대해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 곧 믿음에서 흘러나오는 순종으로 사는 것이다(26쪽)."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바울 사도가 믿음과 순종을 완전히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157-179쪽).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다음의 구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에서 '복음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복음을 믿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우리가 전한 것'이 '복음'을 의미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가 믿었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통해 우리는 복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기대되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믿음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순종이라는 말을 대신 집어 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믿음과 순종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을 대조할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 순종과 행위를 대조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순종과 행위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문제가 남게 됩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행위'의 대표적인 예로 들어진 것이 '할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바울이 말한 '행위'라는 것이 바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종'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구별됩니다. '순종'은 율법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를 따릅니다. 율법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따릅니다. 하지만 행위는 율법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율법의 요구를 따릅니다. 그래서 순종과 행위가 서로 다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중요한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듯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을 설명하면서, 순종을 믿음의 범주보다는 행위의 범주에 넣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 전체를 놓고 보면 이 편으로 갔다가 저 편으로 갔다가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점에 있어서 저자에게 커다란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로마서에 대한 저의 이해가 이전보다 훨씬 더 깊어졌다는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부록에서 소개하고 있는 로마서 1-7장에 대한 구조분석은 로마서를 설교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자료가 될 듯 싶습니다. 로마서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갰지만, 평균 이상은 되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로마서에 대한 책들을 여러 권 찾아 읽는 가운데 한 번 쯤 눈길을 주어도 될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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