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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지옥에 가다
이서규 지음 / 다차원북스 / 2012년 9월
평점 :
목사라는 신분을 가지고 이런 제목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제목이 시선을 끌었는데다가, 책 소개를 보며 과거에 읽었던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된 바람애 관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을 배경으로 일어난 연쇄살인과 산사를 배경으로 일어난 연쇄살인이라니 뭔가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또 '장미의 이름'에서 예상밖의 범인과 살해 동기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 책도 나름대로 인상적인 결론을 보여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 책은 그러한 기대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결론을 보여주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범인이나 범행동기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졌을 때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살해 동기의 애잔함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특히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비극적인 시대 상황(6.25 사변과 불교계의 내분)을 소설의 소재로 끌어 올 생각을 했다는 것에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짜임새 있는 내용 전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도 무난했고,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감도 있었습니다.
다만 옥에 티라 할 만한 것이 주인공인 휘문 스님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도문 스님을 떠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대화의 전개는 전혀 매끄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도문스님에게 던진 질문들은 대체로 두서가 없었고 자연스럽지도 않았는데, 지나치며 물어보듯이 자연스레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심문하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그 질문을 받는 도문 스님은 주인공의 질문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주고 있었습니다. 나를 의심하는 거냐고 화를 냈어야 할 만한 상황에서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한 두 곳 정도 더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만 좀 더 다듬어 준다면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장미의 이름'도 다시 개작해서 재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도 그렇게 해서 완성도를 더 높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절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보니 처음 접하는 불교 용어도 있었지만, 저자의 친절한 설명으로 인해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교의 다양한 교리들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비의 방법과 과정에 대한 설명, 특히 어떤 조건에서 사리가 만들어지는 것지에 대한 설명이 특별히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비구와 대처승들간의 세력 다툼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스님들은 모두 다 독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처라 하여 가족들을 거느린 스님들도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다 크고 나서야 결혼한 스님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의 내용을 보니 원효 대사 이후로 대처의 풍습이 계속 전해져 왔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일제 치하에서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사실은 정치적인 강압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만) 더 확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잘 아는 만해 한용운도 대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장로인 이승만 대통령이 대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절에서 몰아내려 했고, 그러한 가운데 결국 비구와 대처가 서로 다투던 끝에 다른 종단으로 나뉘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처승들의 종파가 태고종이라고 하더군요.)
책을 덮으면서 '장미의 이름'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처럼, 이 소설 역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류의 흐름을 타고 우리와 비슷한 비극을 겪은 베트남을 비롯한 여러 동남아 국가들(특히 불교국가들)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훌륭한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