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로부터의 자유 - 무엇이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을 조종하는가?
마이클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을 기초부터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는 보기 드문 수작입니다. 전문가에 의해 쓰여진 책이라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예상과 다르지 않게 수준 높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상세하고 논리적인 서술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과거에 읽었던 '범인은 바로 뇌다'라는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완전히 반대의 입장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적지 않았고 그 내용들이 대단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그와 반대되는 주장이 가당키나 한가 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니 그 책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기보다는, 신경과학의 성과를 법 현실에 반영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내용 전개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게 된 내용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자는 먼저 뇌라는 기관이 부위 별로 코드화 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특히 오른쪽 뇌와 왼쪽 뇌의 기능이 완전히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둘을 이어주는 뇌량을 제거했을 때 벌어지는 반응에 대해 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병변으로 인해 좌우의 뇌를 서로 분리해 놓은 환자들의 경우, 우뇌에 물체를 보여주어도 물체의 이름을 표현하지 못했고(좌뇌의 언어중추가 기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물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빛을 감지하면 왼손으로 반응을 보이라고 한 뒤에 우뇌에 빛을 비추면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빛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그의 양쪽 뇌 사이의 정보 전달이 완전히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한쪽 뇌에 주어진 시각, 촉각, 청각, 후각 정보는 그 쪽 뇌에서만 처리되고 반대쪽 뇌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분리 뇌 연구를 통해 좌우 뇌의 기능이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분리 뇌 환자들의 의식은 두 개로 분리되지 않았는가 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저자는 '뇌에는 모든 종류의 국소적 의식 체계가 존재하고 이 체계들이 하나의 무리를 지어 의식이라는 것을 형성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식을 하나로 통합하는 해석기 모듈이 좌뇌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밝혀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통합된 의식은 자아라는 느낌으로 존재하는데, 실제로 이 자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의 기술에 이어 저자는 물리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솔직히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자가 그러한 내용을 통해 결정론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결정론을 따르면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경과학계의 발견들은 온통 결정론적 세계를 가리켜 보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이들이 단호한 결정론자의 입장에 서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카오스 이론, 나비효과, 불확정성 원리와 같은 것들을 통해 사소한 입력의 차이가 얼마나 커다란 결과의 차이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정론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저자는 창발이라는 개념을 끌어와 '의식이란 창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뇌는 결정공식을 따르는 자동 기계지만, 뇌 하나만 떼어 놓고 분석해서는 책임이라는 기능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책임이란 사회적 교류에서 발생하는 삶의 차원에 존재하며, 사회적 교류에는 둘 이상의 두뇌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둘 이상의 뇌가 상호작용할 때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고, 그와 함께 새로운 규칙도 생겨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같은 새로운 규칙을 얻은 두 가지 특성이 바로 책임과 자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뇌 자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뇌는 정신을 낳고 정신은 뇌를 움직이는 상호작용이 벌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 하였습니다. '사회 집단은 개인의 행동을 조정하고, 개인의 행동은 사회 집단의 진화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행동은 그저 결정론적이고 외부와 격리된 두뇌가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며, 사회 집단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또한 이러한 과정에 거울신경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타고난 도덕적 성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근친상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인류 공통의 경향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습니다(이것은 동성애에 대한 대다수의 거부감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한 정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타고난 도덕적 성향이 뇌 전역에 구석 구석 퍼져 있는 도덕 회로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동일한 도덕 가치의 연결망과 체계를 공유하며 유사한 사안에 대해 대개 비슷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뇌의 병변으로 인해 이러한 도덕적 성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이제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자유와 책임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등장하게 됩니다. '뇌에 병변을 지닌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는가, 뇌에 있는가'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뇌에는 정상적인 지능을 방해하는 병변, 손상, 충격 또는 신경전달물질 장애 같은 것이 발생할 수 있고, 그 결과 뇌의 능력이 약해져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것이 범죄가 아니라고 해명하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뇌 영상을 법정에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신경과학자들의 입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신경과학이 현재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 가지 법적 영역은 책임, 증거, 처분 판정 중의 희생자와 범죄자에 대한 정의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책임의 문제에 있어서 검사 결과 비정상적인 뇌를 가진 것으로 판명된 사람이 행동도 비정상적이라거나 비정상적인 뇌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 있지만, 저자는 책임은 뇌에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책임은 사회계약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해자가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계획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의 행동이 공개된 장소에서 금지된 일임을 이해하고 있었고, 인적이 드문 장소가 나타날 때까지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러한 범죄자들에 대해 뇌에 문제가 있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추정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실제 사례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한 사건에 대해 저자가 비판한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정신분열증 환자도 규칙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런데 법은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잘못된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의 잘못된 추정은 좌측 전두엽 병변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좌측 전두엽 병변이 폭력적 행동에 대한 에측 변수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전두엽 병변을 가진 경우,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있고 본인은 물로 가족과 친구도 그들의 변화된 행동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폭력 횟수는 겨우 3%에서 11~13% 정도 증가할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증거의 문제에 있어서 저자는 뇌 영상, 거짓말 탐지, 독심술 및 목격자 진술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매우 간단하게 설명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처벌에 있어서의 정의 문제에서는 세가지 종류의 정의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응징적 정의, 실리적 정의, 회복적 정의가 그것인데, 연구의 결과 97%의 사람들이 응징적 정의의 관점과 관련된 정보를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실리적 정의보다는 응징적 정의가 인간의 본성적인 성향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범죄의 강도에 따라 그 입장이 달라진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중범죄의 경우에는 응징적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경범죄의 경우에는 회복적 정의(갱생)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응징적 정의가 인간의 본성적인 성향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입장에 대해 철학자 자넷 래드클리프 리처드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응보주의자로서의 정서가 인간의 특성을 구성하는 깊고 중요한 측면임을 인지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이것이 진실에 이르는 길이라고 떠들지 않고도 그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처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는 점 또한 언급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저자가 이른 결론은 '자유와 책임은 나의 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며, 범죄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섬세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내 '뇌'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어떻게 지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뇌의 문제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뇌의 문제를 해결하기까지는 격리시켜야 마땅하지만, 뇌의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놓아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뇌의 문제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 뇌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완전한 격리를 판결한다면, 뇌의 문제를 핑계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뇌의 문제를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실리적 정의의 잣대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신경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이러한 판결에 있어서도 더 섬세한 분별의 기준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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