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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길 룰라
리차드 본 지음, 박원복 옮김 / 글로연 / 2012년 6월
평점 :
사실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었고 거의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축구와 삼바 축제, 커피 등으로 유명한 나라라는 것 밖에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중에 다른 나라들은 모두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시작된 나라인데 반해, 브라질만이 포루투갈의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구아수 폭포가 그 나라에 있었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브라질이 포루투갈의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 보았던 미션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는데, 그러고 보니 그 영화에 나온 폭포가 이구아수 폭포였더군요. 게다가 과라니족을 몰살시킨 군대도 포루투갈 군대였구요. 미션의 배경이 브라질의 국경지대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분명하게 알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우리나라와 같이 군부독재로 인해 신음하던 나라였다는 사실은 정말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오는 가운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룰라라는 인물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왠지 촌티가 나는 것 같아서 관심이 가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지식채널e에 소개된 룰라 대통령에 관한 내용을 보고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에 관한 다른 책을 찾아보기 전에 이 책이 눈에 뜨인 관계로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전형적인 전기, 또는 평전의 방식을 그대로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룰라 대통령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해서 첫 번째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하고 재선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표지를 보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4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라 다섯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겠다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홉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룰라 대통령과 관련된 거의 모든 내용을 정말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룰라 대통령의 가족사와 개인사, 그리고 노조 활동과 정치 활동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브라질의 역사 및 국내 정치 상황과 국제적인 역학 관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측면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브라질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식견이 부족함 없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 책에서는 지식채널e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룰라 대통령의 측근들이 저지른 부패 스캔들에 대한 내용까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관련된 스캔들도 그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려고 했던 그의 마음 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졌고, 브라질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 부지런함 만큼은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룰라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세 번이나 대선에 실패했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졌었는데, 차라리 그것이 그에게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또한 정치적인 기량을 더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국민들을 위한 정책들을 좀 더 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룰라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대통령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나라의 여러 대통령들이 보여주었던 다양한 장점들이 룰라 대톨령 한 사람에게 다 모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정희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습니다. 대화를 통해 국민들과 소통하고 다른 정당과 연합해서 일할 줄 아는 유연성, 브라질에 굶는 사람이 절대 없게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추진력이 굉장히 돋보였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대통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현재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정말 "국민들을 위해 이런 일 만큼은 반드시 해 내겠다"라는 분명한 목표와 신념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을 덮으며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재선 이후의 행보가 이 책의 내용 중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이 쓰여진 것이 2008년인데 반해, 두 번째 임기가 끝난 것이 2010년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지만, 이미 그 임기가 모두 끝난 지금 첫 번째 임기만을 다루고 있는 책을 굳이 번역해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임기를 다룬 후속작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 책은 반쪽 짜리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후속작이 반드시 나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퇴임 시에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지지율이 재선 당시의 지지율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을 보면 그가 두 번째 임기에 이루어낸 업적이 첫 번째 임기에 이루었던 업적보다 훨씬 대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룰라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때에 브라질에서 과연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저자의 입을 통해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