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탐하다 - 그럼 신은 누가 만들었냐고 묻는 당신에게
에드거 앤드류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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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강력한 도전 앞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타종교의 도전이나 무신론자들의 공격이 특히 위협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타종교의 도전 앞에서 두 차례의 위기를 경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경험했던 도전은 정신세계사에서 출간된 '성서 속의 붓다'라는 책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붓다의 가르침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청년기에 인도에 가서 붓다의 가르침을 배웠고 다시 유다로 돌아와 자신이 배운 것을 전파함으로써 기독교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제 신앙에 얼마나 큰 혼란을 가져다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 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불교의 짝퉁에 지나지 않는 허접한 종교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가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인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기독교가 1세기부터 3세기까지 큰 부흥을 경험했으며, 그 시기에 존폐의 위협을 느꼈던 불교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 기독교와 유사한 교리가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지, 결코 기독교가 불교의 가르침을 본 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흔들렸던 제 믿음도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경험했던 도전은 여호와의 증인 전도사로부터 받았던 도전이었습니다. 그 전도사는 헬라어 원어성경(네슬 알랜드 27판) 요한복음 1장 1절(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하나님이 소문자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고 그저 신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하더군요. 


훗날 신학대학원의 신약학 교수님을 통해 헬라어 성경의 초기 사본들은 모두 다 대문자로 기록되어 있었고 이것을 후대에 자유주의 성향의 신학자들이 취합해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소문자로 옮겨 놓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도사의 주장으로 인해 크게 흔들렸었던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저는 기독교의 진리가 참으로 진리이며, 기독교의 진리는 어떠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반드시 진리로 드러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들과 맞서 싸우는 가운데 타종교의 도전에 대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또 그에 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을 무기로 삼아 도전해 오는 무신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맞서야 할 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주장을 가지고 기독교 교리를 공격하고 있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저 그들의 주된 무기가 진화론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 '신은 없다(댄 바커)'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성경 내용에 대한 비판'이라던가 '기독교의 도덕적, 윤리적 과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있었는데, '과학적인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전직 목사'라는 사람이 어설프게 과학적인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지만, 저 역시도 잘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대응해 볼 만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토론에 어느 정도는 끼어볼 만한 지식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양자역학'이나 '초끈이론'과 같은 내용들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무슨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에 서서 말하고 있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그러한 이해에 기초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우주의 시작과 생물의 시작에 대한 선언'이 참으로 진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분명히 정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과학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을 구분해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주는 관계에 있다고 보는 시각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만을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는 태도는, 그 부분을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해 질 때까지만 신앙의 영역에 맡겨 두고 과학적 설명이 가능해지면 다시 빼앗아 오겠다는 태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앙의 영역은 과학의 영역과 구분해서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오히려 과학의 영역을 모두 포함하면서도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초과학적 영역에 속한 것임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정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유신진화론이 결코 성경적인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소진화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지만, 대진화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에 의한 대진화'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자는 유신진화론을 창발적 진화론, 표준유신진화론, 변종유신진화론(지적설계론)으로 구분해서 각각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설명을 통해서 C.S.루이스가 표준유신진화론을 주장했으며 그 뒤를 프랜시스 콜린스가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영적인 기적은 인정하지만 물리적 기적은 인정하지 않는 비성경적인 태도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적설계론에 있어서 지적설계자의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종교의 신을 앉혀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이론을 성경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과학적인 도전을 주로 다루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많이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저자가 과학자인 동시에 목회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무신론자들과의 끊임없는 논쟁을 통해, 그리고 교인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 온 오랜 경험을 통해 쌓인 내공이 있었기 때문에 이 어려운 주제를 그렇게 쉽게 풀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속 시원하다는 느낌과 통쾌하다는 느낌도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저자가 리차드 도킨스를 비롯해 다양한 무신론자들을 상대하면서 벼리어 온 예리한 지성으로 그들의 주장이 보여주는 헛점들을 정확하게 짚어내어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저자는 이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를 터무니 없이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데, 무신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지금까지 기독교에 대해 보여 온 무례한 태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조롱은 약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로서는 이 책을 통해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쓸만한 무기를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을 가지고 무신론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일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섬기는 성도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는 데에 유용한 자료가 되리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전보다 더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창조와 종말에 대해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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