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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 개정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신은 위대하지 않다.'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이다. 솔직히 개신교 성직자인 나로서는 반감을 가져야 마땅한 제목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어 보고자 했던 이유는 '이 책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기에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이 책을 침이 마르게 극찬한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저자의 매력에 푹 빠져 들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는 물론이고 유대교, 이슬람, 몰몬교 등의 다양한 종교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과 그 깊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러한 종교들의 기원과 각각의 종교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성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각각의 종교들과 관련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들에 대한 설명들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지금까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이슬람과 몰몬교의 기원에 관해 상당히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설명들 가운데 유대교의 할례 방식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유대인들이 저자가 말하는 방식으로 할례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역겨운 방식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궁금하면 한 번 찾아보시도록.)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다양한 지식을 접하고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저자의 주장에 대해 별 다른 반감이 들지 않았다. 다양한 종교들이 저질러 온 다양한 죄악들과, 각 종교들의 신뢰하기 어려운 주장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들을 공정한 시각과 잣대를 가지고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책제목이 '신은 위대하지 않다'임에도 불구하고, 신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내용들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거부감이 덜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신'보다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싶었던 것 같아 보였다.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악한 일들이 저자가 이 책에서 주로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저자의 지적들은 상당히 타당해 보였다. 물론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들 중에는 저자가 오해하고 있고, 또 충분히 반박해 줄 수도 있는 내용들도 있었지만, 기독교가 저질러 온 잘못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어 보였다. 잘못한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니까.
여하튼 이 책의 핵심은 '종교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또한 자신들의 주장과는 달리 세상에 수많은 해를 끼쳐왔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는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며, 신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을 섬기는 인간들의 불완전함은 신의 부재에 대한 증거로서 충분하지 않다. 종교가 무지의 시대에 과학적 발견을 억압했었다는 사실 역시 종교가 거짓이라는 증거로서 충분하지 않다. 그저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악한 일을 저질렀을 뿐이고,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무지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위대하지 않은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의 잘못은 인간의 잘못일 뿐,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그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신을 섬기며 선을 행하는 자도 있고, 신을 섬기며 악을 행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신을 섬기는 자들의 행위를 근거로 신의 존재여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물론 신을 섬긴다는 자들의 행위를 통해 어떤 종교가 세상에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종교인가를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한 내용을 보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이 세상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이 책을 통해 내가 다다른 결론은 '신은 없다'가 아니라 '신을 섬기는 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1장에서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을 '구도자'라고 부른다면서, '그 사실에 짜증이 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저자의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 때문이 아니라 '인간' 때문에 기독교를 버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그에게 진정한 '기독교인다움'을 보여주었다면, 그가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개신교 무신론'을 신봉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내가 보기에도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가 세상에 보여주었던 모습은 아주 글러먹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비난은 참으로 타당하다. 그리고 그가 그런 비난을 퍼붓는 데에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크다. 그렇다고 저자의 주장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나귀의 말이라도 바른 말이라면 반드시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 종교다. 따라서 바른 소리라면 누구의 말이더라도 반드시 귀기울여 들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비난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마땅하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는 지금까지 다른 종교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왔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라면, 기독교는 결코 진리를 좇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반성을 불러 일으켜 준 책이기에 이 책의 출간이 한편으론 감사하다. 기독교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나쁜 책이라고 단순하게 평할 수 없는 이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