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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없다
댄 바커 지음, 공윤조 옮김 / 치우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신은 없다'.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사람이 전직 목사란다. 그런데 이렇게 목사짓을 하다가 내려놓고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소위 '강의석 사건'이라 이름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대광고의 교목실장으로 있었던 류상태씨도 목사직을 내려 놓은 후 이런 종류의 책을 낸 적이 있다. 책 제목이 '당신들의 예수'였던가. 그래도 류상태씨는 소위 '종교심'이라 하는 것을 아직은 버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정통적인 기독교라 하는 종교의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종교의 것들이 혼합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댄 바커는 아예 종교심 자체를 버렸다. 그는 신이 없다고 말한다. 기독교의 신 뿐 아니라 이슬람의 신이나 힌두교의 신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상당히 논리적이라 생각되는 다양한 근거들을 토대로 신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가 신이 없다는 주장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근거들은 오직 '신이 있다는 종교들의 주장을 믿을 분명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지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저자의 논리는 '신이 있고 없고에 대한 증명은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측에 주어진 책임이지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측에 주어진 책임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듣다 보면 신이 있다는 측의 주장에는 많은 헛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지적하는 내용 가운데 일부는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그러나 신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신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니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우선적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모든 종교의 신은 초월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모든 종교의 신들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신이 직접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이상 인간들이 스스로 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신은 자신이 특별히 선택한 인간들에게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그 선택된 인간들을 통해 신은 다른 모든 인간들에게 알려진다. 모든 종교가 이와 같이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각각의 종교에서 신과 세계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들이 대부분 서로 상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상충되는 주장들이 신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각각의 종교에서 숭배하고 있는 신들 가운데 어떤 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열등한 신이 자신을 최고로 위대한 신이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자칭 대리인이라하는 자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존재, 또는 초월적인 존재는 분명히 실재한다는 것이고, 그러한 존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영매(그들의 이름이 선지자든 무당이든)들이 실존한다는 것이며, 그들을 통해서 영적인 존재들의 실재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과거나 현재에 대해 신점치는 무당들에게 물어보라. 무서울 정도로 놀랍게 그들의 현재에 관해 말해 줄 것이다. 이를 보면 귀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귀신이 존재한다면,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역시 거짓이라 할 수 없다.)
내가 기독교를 믿게 된 것은 영적인 존재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에 결정한 일이다. 나는 단전호흡을 하면서 영적인 존재의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무당들이 믿는 허접한 잡신을 믿기 보다는 천지를 창조했다는 큰 신을 믿는 것이 더 낫다 싶어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영적인 체험을 해 보았다. 저자가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들의 대부분을 나 역시 경험해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들은 결코 내가 믿고 있는 것의 기반이 아니다.
내가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선택한 선지자(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무당이라 볼 수도 있겠다)들을 통해 예언한 수많은 사건들이 수백년, 또는 수천년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증거가 무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또한 후대에 조작하거나 삽입해 넣은 것이라 말하겠지만, 그것 역시 증거없는 추론일 뿐이다. 그리고 과거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면서 남아 있는 예언들 역시 성취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기도하는 가운데 경험되는 여러가지 기적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독교의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 또 한가지 이유는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보았던 몇 차례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방배동에 있는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을 때, 10원만 달라며 매일같이 찾아오는 여자분이 있었다. 큰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달라는 대로 드리다가 어느 날인가 이 여자분이 정신병에 걸린 것인지 귀신이 들린 것인지 확인해 보자는 생각으로 이 여자분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부탁해 보았다. 그랬더니 이 여자분이 성경을 읽어 가는데, 소름이 쫙 돋는 일이 벌어졌다. 복음서의 일부를 읽으면서 '예수'라는 글자만 나오면 그 글자만 쏙 빼버리고 건너 뛰어 읽는 것이었다. 그 때 이 여자분이 귀신 들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귀신이 예수라는 이름을 두려워한다는 사실도. 그리고 이것은 결코 내가 경험한 사례의 전부가 아니다.
저자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지만 나로서는 '신은 존재한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저자에 대해 별로 신뢰가 가질 않았다. 저자가 자신의 역회심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보면, 저자가 한쪽 극단(극단적인 종말론에 사로잡혀 지내던 열광적 은사주의자)에서 다른 한쪽 극단(무신론자)으로 옮겨간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임박한 종말을 준비한답시고 신학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동안 신학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전도만 하던 사람이 뒤늦게 무신론자들의 책으로 머리를 가득 채운 다음에 기독교를 버리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성경에 대한 지식은 신학대학을 나오지 않은 일반신도들보다 더 깊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둘째로 저자가 무신론을 전파하는 전도사가 된 동기가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그는 목사로 재직하는 동안 음악적 재능을 이용해 많은 기독교 음반 제작에 참여해 왔는데, 저자는 그 때의 생활을 후회하면서 자신의 수고에 비례하는 경제적 대우를 받지 못했음을 안타까와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과거에 그렇게 낭비한 시간에 대한 보상을 지금의 활동을 통해 받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역회심 이후에 그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기도 하고, 또 이전의 아내와 이혼하고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 총수의 딸과 재혼을 했다. 그리고 현재 그 단체에서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그리고 무수한 강연과 집필을 통해 엄청난 강의료와 인세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목사로 재직하는 동안 그리 별 볼일 없는 사역자(저자는 기독교 음반 제작에 참여하거나 순회 설교자로 활동했을 뿐 담임목회자로 사역했던 적도 없고 부교역자로 사역할 동안에도 한 곳에 오래 재직하지 못하고 수시로 교회를 옮겨 다녔다. 사역했던 교회의 교단도 각각 달랐다. 정통 교단에 소속된 교회에서는 이런 부류의 교역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로 활동했었다는 것과 비교할 때, 공개적인 역회심 이후의 그는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다.
셋째로 자신의 과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님에도 얄팍한 과학적 지식을 근거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태도가 마땅치 않다. 솔직히 2부에서 말하고 있는 다양한 과학과 철학에 바탕을 둔 주장들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말장난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신앙을 지성의 파산이라고 단언하고 있었으며, 성숙한 사람은 휴머니즘의 상대주의로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전혀 동의가 되지 않았다. 저자는 영은 힘이 전혀 없으며, 힘 있는 영적 존재는 있을 수 없다(204쪽)고 말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동의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저자의 신념일 뿐 사람들에게 제시할 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넷째로 저자가 성경에 관해 말하고 있는 내용은 그저 악의적인 추론에만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성경의 불일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들은 이미 기독교 학자들에 의해 대부분 해결된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안식일에 나무하다 돌에 맞아 죽은 사람에 대해 그저 가족들을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 나뭇가지 몇 개를 줍다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설명하는 데에서는 코웃음이 나왔다. 나무를 한다는 것과 나뭇가지를 줍는 것을 같은 것이라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무를 해서 내다 팔려고 했는지, 가족들을 따뜻하게 해 주려 했는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근거없는 추론을 의지해서 자신의 논리를 펴는 저자의 태도 때문에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웠다.
그리고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만약 하나님에게 이성이 필요하다면, 그는 신이 아니다(260쪽)." 그렇다면 하나님이 신이라면 이성이 필요치 않다는 것인가? (정, 역, 이, 대우에서 정이 옳으면, 대우도 반드시 옳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어떻게 이렇게 말이 안 되는 결론을 뽑아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263쪽에서 언급한 '강간에 대한 성경의 명령'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는 강간에 대한 명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훗날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리라는 예언적인 내용이 있기는 하다.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악감이 이렇게 성경에 대해 거짓말을 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또한 기독교인들을 '상명하달식의 정신파탄자들'이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괴물', 또는 '불량배'라 부르기까지 한다. 또 바울 사도를 '예수의 가장 중요한 치어리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히틀러를 '진실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악의적인 묘사가 이 책에는 수시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사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저자를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책이 성숙한 무신론자의 너그러움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솔직히 리처드 도킨스의 추천사를 보면서 저자가 참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예의바른 태도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가는 동안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악의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을 보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예의 바르고 좋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그저 기독교에 악감을 가지고 있는 안티크리스천일 뿐이었다. 서평단을 통해 출판사에서 서평을 의뢰받은 책인데다가 출판사 편집장님께서 이 책에 대해 보여 주신 애정을 생각할 때 가급적이면 좋은 평을 해 주고자 했지만, 글 속에 나타난 저자의 태도는 결코 기독교인인 나의 호의를 얻을 수 있을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차마 별 하나를 줄 수는 없었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종교가 있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저녁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방법을 찾고 있는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나눌만한 것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 역시 분명하다. 저자는 그저 자신의 독자들이 자신과 같은 안티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하지 못하는 기독교인이 읽기에는 위험한 책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시험에 든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한 번 쯤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그리고 만약 이 책을 읽으면서 신앙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목회자라면 차라리 목회를 그만 두기 바란다. 그것이 당신이나 교회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